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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최익구 변호사의 홍·유릉과 덕수궁 답사기

황제 양식 갖춘 홍릉, 기우는 대한제국 세우기 의지 묻어나

늘 승전고만 울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일까.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이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욱일승천 하던 기세가 가뭇없이 소멸하는 무상함은 옛 원한을 눅인다. 남양주의 홍유릉은 대한제국의 황실 가족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고종의 자녀 중 3남(순종, 영친왕, 의친왕), 1녀(덕혜옹주)만이 성인으로 성장했는데 이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홍릉(洪陵)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으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황제릉의 양식을 갖췄다. 홍릉은 중국의 황릉을 참조하는 동시에 조선의 전통적 왕릉 체제를 계승하여 새로운 형식의 황릉을 고안하였기 때문에 여느 조선왕릉의 제사용 건물인 정자각이 없고 일자형 침전이 있다. 침전은 임금의 숙소라는 뜻으로 중국은 황제가 죽어서도 나라를 통치할 지하 궁전이라 믿었다고 하니 그 집념이 끔찍하다. 홍살문과 침전 사이에 삼단으로 구성된 참도 좌우에는 문석인, 무석인을 배치했으며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등의 석물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열하여 있다.

유릉(裕陵)은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합장릉이다. 유릉의 참도 석인과 석물의 배치가 홍릉의 것과 유사하되 상대적으로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유릉의 돌조각이 좀 더 맵시 좋은 까닭은 일제가 유릉을 조영하면서 조선이나 중국의 문화보다 일본의 문화가 앞서 있음을 선전하며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유포했다는 견해가 있다. 홍릉을 통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세우기 위한 안간힘을 엿보고 유릉을 통해 일제 침탈의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합장릉인 유릉 참도(사진 위)와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의 중화전(사진 아래)의 모습.

 

자주와 자강을 도모할 혜안이 없었던 임금과 제국주의 침략 세력과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말하기는 찜찜하다. 더 나아가 아예 일제의 식민통치를 두둔하는 듯한 일각의 주장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일제의 폭압적 통치는 눈감은 채 통계적 수치를 통해 식민통치의 경제적 효용을 따지려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무모할뿐더러 윤리적으로도 박절하기 때문이다.

영원(英園)은 영친왕과 영친왕비의 합장묘로 황릉의 형식을 버리고 전통적 조선왕릉으로 조성하였다. 인근에는 2016년 9월 1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임시 개방되는 덕혜옹주묘, 의친왕묘가 있어 둘러볼 수 있다. 최근 상영했던 영화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 없는 대한제국 황실에게도 연민의 시선을 보낼 때 역사에서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를 곱씹는다. 억울한 죽음이 무수한데 몇몇 위정자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건 일견 사치스럽다. 기록된 치욕보다 더 많은 수모가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고통까지 반추체험하기에 우리는 너무 약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관념화된 추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 곳에서는 애틋함이 배어나오지를 않는다. 인(仁)의 확산이 하나의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동심원 구조라고 볼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가엾어 보일 때 순서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발길을 옮겨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을 찾았다. 나는 조선 최후의 궁궐 정전, 막둥이 중화전을 편애한다. 중화전은 창건 당시에는 중층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에 중건되면서 재정난 때문에 단층으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국의 정전으로서 단층은 멋쩍었는지 지붕을 크게 올렸다고 하는데 그 궁여지책마저 살갑다. 고운 금빛으로 기운차게 쓰인 중화전 편액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영원 인근에 있는 덕혜옹주의 묘. 비석 옆에 서 있는 사람이 필자인 최익구(33·변호사 시험 2회) 법무법인 유스트 변호사. 

중화전 답도에는 궁궐 정전 가운데 유일하게 봉황이 아닌 용이 새겨져 있다. 제국의 격식을 드높이기 위해 애를 썼던 게다. 용을 새긴 답도는 중화전과 환구단에서만 볼 수 있는데 만세 대신 천세를 외쳤던 조선에서는 파격이었다. 중화전 천장에는 살찐 황룡이 노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현문 안쪽에도 용이 그려져 있고 수막새에서도 용이 노닌다. 조지훈 선생은 '봉황수'에서 용 대신 봉황을 틀어 올린 조국을 안쓰러워했지만 막상 쌍룡을 만났는데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졌다. 용이 가리키는 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중화전에 인접한 석조전은 이름 그대로 돌로 만든 전각이다. 돌집을 짓는다는 의미는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중화전과 석조전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장면에서 전통과 근대의 조화는 어떻게 이뤄나가야 할지를 궁리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는 석조전 내 대한제국 역사관은 1910년 준공되어 실제로는 황궁의 정전 역할을 하지는 못했던 석조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홍유릉과 덕수궁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조심스러운 견줌을 하는 곳이며, 내 자신이 주인이 되겠다는 매운 의지를 벼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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