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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도진기 부장판사 (서울북부지법)

언제부턴가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았다. 비리로 얼룩진 재판, 아니면 반대로 정의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법률가 같은 양극단의 모습이 주로 그려지는데, 어느 쪽도 법정의 리얼리티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야 극화 특유의 과장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더 불만스러운 건, 법정극에 기대하는 논리 싸움, 기발한 발상이 실종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억울하게 혐의를 받고, 재판은 내내 기울어져간다. 변호사가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결론을 뒤집을까. 손에 땀을 쥐고 보지만, 실망스럽게도 대부분의 결말이 비슷하다. 마지막에 판세를 뒤집을 누군가가 법정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격정적인 증언으로 주인공은 구제되고 악인은 최후를 맞이한다. Deus ex machina. '기계장치 신'이 아니라 증인이 그 역할을 하는 게 다를 뿐이다. 하지만 단지 증인을 법정에 세워 재판을 뒤집을 거면 주인공이 변호사일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이런 클리쉐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하정우 주연의 영화 <의뢰인>은 뛰어난 법정물이다). 이런저런 불만이 겹치던 차에 직접 법정물을 시도해 보았다. 물론 본령은 어디까지나 추리소설이다. 다만 무대를 법정으로 옮겼다.

이 작품은 어쩌면 '범죄'가 아니라 '후회'에 관한 이야기다. 주요 인물들은 '진지한 80년대'의 세례를 받은 89학번이다. 그 시절엔 지금은 낯선 두 종류의 정서가 있었다. 광장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운동권 정서'가 지배했다. 골방 한구석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외인구단 정서'도 있었다. 앞의 이야기는 누군가 많이 했기에, 난 후자 쪽을 전하고 싶었다. 외면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 안에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감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출간 후의 좋은 반응을 보면 뒤쪽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실패에 가깝다고도 느낀다. 이 작품에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층은 '486세대, 남성'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쓰는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몰입했다. 악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직간접으로 경험한 인물을 모델로 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각별하고, 애착이 간다.

초고를 쓴 지 거의 3년 만에야 이 작품이 나왔다. 출간이 늦었던 건 주로 내 본업에 뒤따르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TV 안보고 사람만 덜 만나도 글 쓸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봤자 '본업을 등한시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어렵다. 판사이면서 소설가인 독일의 베른하르트 슐링크도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성공하니 해결되더라"고 했다. 나야 물론 그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와 비교할 처지가 못 되니, 일 안하고 이거만 하냐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해가며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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