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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그래도 소통은 필요하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최근 법조계를 흔든 일련의 사건들 이후 법원과 검찰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법원은 민사소송규칙과 형사소송규칙을 개정하여 당사자나 대리인 또는 소송관계인이 기일이나 심문 또는 공판기일 외에서 구술, 전화, 문자전송 등으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진술하거나, 신체구속, 공소사실 또는 양형에 관하여 법률상·사실상 주장을 하는 등 법령이나 재판장의 지휘에 어긋나는 절차와 방식으로 소송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검찰 역시 검사실과 사전에 면담일시를 정한 후 방문하고, 방문시 출입증 발급후 지정 검사실에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며, 변론 시 이를 변론관리대장에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사건 변론에 대한 업무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이와 같은 대책을 보면서 어쩌면 이미 당연히 지켜졌어야 할 사항들이 대책이라는 모습으로 나올 수밖에 없음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법원과 검찰이 최근 일련의 일들을 소위 '전관예우'의 문제로만 이해하고, 전관과 현관의 연결통로를 차단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 아닌 우려를 하게도 된다. '몰래변론'은 금지되어야 하고, 정당한 변론이 아닌 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운 '부당 거래'는 배격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正) : 부정(不正)'의 관계에서 '부정'을 누른다고 곧 '정'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규제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으며 규제에 못지 않게 조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몰래변론을 제한하기 위하여 변론의 장(場)을 위축시킨다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제한을 피해가는 편법변론이 난무하여 결국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될 것이다. 재판과 수사에 있어 변론, 곧 변호인과의 소통, 피의자 및 피고인과의 소통은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필연적 요청이다.

그러기에 몰래변론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만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정당한 변론을 보장하고 활성화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법현실에서 이와 같은 변론 내지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건들에 쫒겨 법원도 검찰도 절대적 시간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민사재판에서 구두변론은 아직은 이상(理想)이며 서면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서면조차 이제는 양적 제한을 받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법관은 사건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채 검사와 변호인의 공방을 지켜보기만 하고 결국에는 기록으로 재판을 한다. 법관이 바뀌게 되면 그나마 있던 법정 공방의 잔상(殘像)조차 모두 사라진다. 사건수사에 바쁜 검사를 상대로 검사실에 앉아 구두변론을 하고 오기에는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공개적인 소통의 장(場)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뒷거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법원과 검찰은 몰래변론의 제한과 함께 법정과 검사실에서 충분한 변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동시에 강구하여야 하며, 충분히 이야기하고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소통하고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이지 어둠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