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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김영란법 이후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는 28일 시행된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과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하여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찬반양론이 뜨거웠지만 우리 국민은 다소 부작용을 감내하더라도 부정청탁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동창회도 못나가는 것이냐?", "기자들이 취재를 어떻게 하냐?" 등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들이 사회와 교류하지 않게 되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판결, 규제 등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 한때는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판사'라는 말이 법원에 대한 비판의 키워드였으니 이런 걱정도 괜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 달부터 대법원규칙의 개정으로 변호사가 재판 기일 외에 판사에게 구술, 전화, 문자전송 등으로 사건을 설명하는 것을 금지하는 강력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오히려 고립된 판사가 세상물정 모르고 재판할까봐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만하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같이 한 지인들과 모임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아와 사람 수로 나누어 갹출하여 계산한다. 독일에서는 늘 있는 광경이다. 판사들의 회식자리도 각자 자신이 시킨 안주와 술값만 낸다. 심지어는 부장판사가 재판부에 실무수습 중인 시보와 식사를 해도 각자 계산한다. 이런 문화가 우리에게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곧 적응하여 더 편해질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이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밥을 사는 것 등을 금지할 때도 초기에는 '밥도 안사고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 많았지만 깨끗한 선거가 자리 잡게 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를 장밋빛으로 기대해 보는 상상도 즐겁다. 다른 사람에게 식사대접을 하면 배불리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각자 계산하니 필요한 것만 시켜먹게 되어 과식하지 않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밥값을 내주는 사람 아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술자리와 회식자리가 줄어들면 그 시간에 독서를 하든가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할 수 있다. 회식자리에 안가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문제아'로 찍히거나 '다양한 인맥'을 구축하지 못하고 소외될까봐 걱정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국민들도 대학병원에 가거나 재판을 받거나 할 때 '마당발 인맥'이나 그 업계를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병실을 알아보거나 변호사를 찾을 필요가 없어지니 편해질 수 있다. 정해진 순서와 규칙에서 정한 것보다 이익을 보기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그 인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밤새 술잔을 기울일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국민들은 인맥에 의존하여 판·검사를 잘 아는 변호사를 찾지 않고, 그 분야에 실력이 좋은 변호사를 찾을 것이다. 변호사들도 판·검사와 밥 먹는 것보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실력을 키워야 사건수임을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영란법 이후 우리나라가 부패지수 하위 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즐거운 꿈을 꿔본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