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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이 필요하다

김현 변호사(대한변협 변호사연수원장)

이른바 폭스바겐 배기가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 그리고 3M 항균필터 사태는 공통점이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았고, 제대로 된 사후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른바 영미법계의 제도라고 외면되어 온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적으로 무분별하게 재산 또는 신체상의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가해자에게 손해 원금과 이자만이 아니라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로 포함시켜서 배상하는 제도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중국은 '소비자권익보호법'과 '식품안전법', '권리침해책임법' 등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형법과 민법 체계가 엄격히 분리돼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전보적 손해배상제도(실손해배상제도)'가 자리잡아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원칙은 '불법행위자의 이득이 손해를 배상하고도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폭스바겐과 옥시, 3M 등의 대기업들은 흠결 있는 제조품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입은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제대로 복구되기 어려운 실정이며, 형사적 처벌은 물론 민사적 손해배상도 제대로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면 같은 사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에서는 폭스바겐 등이 자발적으로 리콜과 손해배상을 실시한 바 있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제20대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6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입법 발의한 데 이어 7월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집단소송법을 발의했다. 필자가 상임대표로 재임 중인 현직 변호사 1000명과 교수 200명이 참가하여 5월에 결성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약칭 징손모)'도 박영선 의원의 위 법안 발의에 동참해 힘을 보탠바 있다. 이후 다른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이 계속 언론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법안 발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제19대 국회에서도 일반 제조물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지만 관련 정부 부처와 산업계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정식으로 의결되어 입법되어야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될 수 있다.

지난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6월 당시 법사위, 정무위, 미방위, 안행위, 산업위, 환노위에 계류된 징벌적 손해배상관련 법안이 33건이고, 그 중 처리된 법안은 고작 8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게다가 통과된 8건의 법안마저도 '하도급법', '기간제법', '신용정보법' 등 특정 법위반에 한정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는 결국 지난 19대 국회가 기업 등 산업계의 반대에 부딪쳐 온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산업계의 우려에도 일리는 있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과잉 처벌이나 일부 소비자들의 소송 남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박영선 의원이 발의하고 징손모에서 지원한 이번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은 책임의 한도를 손해액의 3배 수준으로 정하는 등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에서 제정된 법안이다. 이 정도의 법안조차 통과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소비자 피해사건에서 국민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제20대 국회는 지난 19대 국회와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언론, 그리고 법조계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야만 할 것이다. 기업의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이 반드시 필요한 때이다. 국민과 법조계가 함께 상황을 주시했으면 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