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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박상흠 변호사(부산회)

아빠가 변했다. 10세 소녀 스카웃에게 아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정의의 사도였다. 흑인차별이 극렬했던 앨라배마 주 메이콤 군. 그곳에서 핀치는 흑인 노예 톰을 무죄로 이끌기 위해 생명의 위협도 무릅썼다. 메이콤 주민들의 냉소, 인종차별자가 겨눈 총구위협, 그 어느 것도 핀치의 신념을 막지 못했다. 그가 메이콤 법정에서 다투고자 했던 것은 유·무죄가 아닌 미국사회에 만연한 인종편견과 불평등이었다. 핀치는 아빠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어린 딸에게 말했다. "인간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란다." 스카웃이 마을주민들 다수가 아빠를 반대한다고 묻자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인간의 양심이란다"라고 답한다. 흑인 톰은 백인 여성 뮤리엘을 강간했다는 사실로 재판에 회부된다. 뮤리엘은 오른쪽 눈을 맞아 붉게 멍들었다. 핀치 변호사는 뮤리엘의 아버지 유얼에게 종이위에 이름을 쓸 것을 요청했다. 그는 왼손잡이. 법정에서 일어선 톰은 왼손이 30센티미터 짧았다. 뮤리엘을 때린 것은 톰이 아닌 유얼이었다. 그녀는 톰에게 누명을 씌웠다.

세월이 흘러 26세의 뉴욕커리어 우먼이 된 스카웃.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 메이콤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서재에 꽂힌 책이 눈의 띄었다. '흑사병' 책 내용은 니그로들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사건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 스카웃을 딸처럼 돌보던 흑인 유모 캘퍼니아. 그녀의 손자 프랭크가 새벽길에 운전하다 백인 힐리 영감을 치어 죽였다. 스카웃은 그가 과실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받을까봐 두렵다. 아빠는 자신이 변호를 맡겠단다. 그런데 아빠가 변호하는 목적은 그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흑인변호사단이 니그로 배심원들을 세우고, 재판부에게 압력을 행사할 것을 막기 위해서다. 스카웃이 보기에 아빠는 정말 변했다.

스카웃은 아빠에게 묻는다. 왜 변했냐고. 딸의 질문에 핀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비문명인들인 니그로를 문명세계로 인도하고 자유를 보장한 것만으로 충분하단다. 남부의 모든 니그로들이 완전한 시민의 평등권을 가지게 되면, 수적 열세에 있는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권력을 다 뺏겨버리고 만다."

아빠의 변절인가. 어쩌면 흑인을 앵무새에 비유한 핀치는 원래 백인 우월주의자 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핀치의 이중적인 행동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14년 전 톰을 위해 적극적으로 증인신문을 했던 핀치. 그러나 이제 그는 프랭크에게 자백을 권유한다. 예전에 핀치는 다수결의 원칙을 양심의 문제에 적용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면 백인은 흑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경고한다.

파수꾼을 읽으며 최근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일부변호사들의 탈선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탈선은 핀치변호사가 보여준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세월의 변화 속에 정의감이 녹슬어 버린 아빠의 변신이 딸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주었는지 소설을 읽은 이들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파수꾼은 어두운 그늘로 사회가 뒤덮이지 않도록 항상 깨어 경종을 울릴 파수꾼의 역할이 법조인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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