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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5) 이승만대통령 편지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1875-1965) 대통령은 젊어서부터 박사라는 칭호가 항상 따라다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 박사라는 별명 아닌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 사실 이 박사는 1910년에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박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 불리게 되었는데, 당시 나이 36세면 그리 빠른 것은 아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편지는 1940년 2월 2일에 이 박사가 미국 워싱톤에서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선생께 보낸 것이다.

1998년에 나온 '이승만문서'에 1939년 이승만에 대한 김구 선생의 답장이 있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답장에 대한 답서일 것이다. 이때는 1937년 중일전쟁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 등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어 세계정세가 매우 불안하고, 임정은 상해에서 흩어져 떠돌다가 겨우 중경에 자리를 잡으려는 때다. 아울러 임정도 재정지원은 하와이, 미국본토, 멕시코 등의 한인들의 도움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해 있었다.

이 때 이승만은 미국에서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장 직함으로 임정을 음으로 양으로 도울 때다. 하여 이 편지에서 보면 이승만은 양성적으로는 미 육해군을 움직여 군사적으로 돕고, 음성적으로는 미 정부의 재정적 도움과 군수물자를 지원받으려는 정치적 공작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이나 중국에 한인들이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시위나 공공건물의 파괴, 군인들의 습격이나 항전 등 방해공작을 통해 한인의 우월성을 보여주면 소용되는 물품을 보내 준다는 내용, 조선, 일본, 중국, 러시아의 각 수도나 중요한 항구에 한 두 사람이라도 상주하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일이 발생하면 서로 상응하자는 뜻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이렇게 쓰여 있다.

'名義上 合同이니 統一이니하는 空談으로 心力을 虛費치 마시고 何等團體와 何等主意로나 各各 自由로 하게하고 다만 此 一事에만 協同하면 足할 거심니다' … '至今에 우리가 그 軍艦 軍隊 等에 關한 密報를 得할만한 聯絡을 得하면 財政上 費用도 엇을 거심니다'(편지 원문 대로 표기)

이로 보아 짐작하듯 임정을 비롯하여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한인들의 각자 행동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임정에서 수집한 정보나 항전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을 미국정부에 보여 준다면 미국정부를 움직여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아 내는 역할을 이승만이 맡아서 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 동안 정치적 노선 때문에 이승만과 김구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렸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님을 이 편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이 신탁통치를 논의할 때 그 반대를 위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란 단체가 조직되었는데 이때도 총재에 이승만, 부총재에 김구를 한 것으로 보아 두 분은 거국적인 일에는 항상 동지적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한 통의 편지는 당시 그 어떤 사료보다도 정확한 미국과 임정, 이승만과 김구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