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해외법조

개정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 중재규칙의 주요 내용과 의미

유지연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2016년 8월 1일자로 개정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중재규칙이 시행이 되었다. 2013년 5판 개정에 이어 이번이 6판 개정이다. 최근 발표된 SIAC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새로 접수된 사건 수 기준으로 한국기업이 인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제계약 체결 시 분쟁해결조항에 싱가포르 중재를 선택한 한국기업들이 이미 많다는 것이고,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시장 진출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정 SIAC 중재규칙의 내용과 의미를 검토해 보는 것은 이미 SIAC 중재를 계약서에서 선택한 기업들에게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개정 SIAC 중재규칙의 주요 내용

가. 다수계약과 청구의 병합 (규칙 제6조 및 제8조)
오늘날 국제계약이 복잡 다단화됨에 따라 하나의 프로젝트에 다수의 당사자가 여러 개의 계약서를 체결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특히 해외건설프로젝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다수계약과 관련된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각 국제중재기관들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중재규칙을 개정 보완해 왔고, SIAC 중재규칙 개정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구의 병합 규정은 개정 전 SIAC 중재규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번에 새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SIAC가 지금까지 청구의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실무상으로는 자주 인정되고 있었다. 즉, 개정 전에도 중재판정부가 청구 병합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고, 중재판정부 성립 전에 병합요청이 있을 때는 SIAC가 병합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에 되도록 같은 중재인이 선임되도록 하여 차후에 중재인이 병합결정을 내리기 용이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하였었다.

이번 개정 규칙은 병합 요건을 구체화하고, 중재판정부 성립 이전에라도 SIAC의 결정에 의하여 병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즉, 분쟁이 두 개 이상의 계약서에 기하여 발생한 경우 다수계약의 당사자는 중재 개시단계에서 SIAC에 (i) 중재조항이 포함된 각 계약서마다 한 개씩의 별개의 중재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동시에 규칙 제8조에 따른 병합 신청서를 제출하거나, (ii) 혹은 모든 중재조항을 통틀어 하나의 통합된 중재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복수의 중재절차를 개시하고 규칙 제8조에 따른 병합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간주된다. 규칙 제8조에 따른 병합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 즉, (i) 모든 당사자들이 병합에 동의하였거나, (ii) 모두 같은 중재조항에 기초한 청구이거나, (iii) 중재조항 간 모순이 없음을 전제로 (a) 동일한 법적 관계이거나 (b) 주계약과 부수적인 계약으로 구성된 계약서로부터 분쟁이 발생되거나 (c) 동일한 거래나 연속적인 거래와 관련하여 발생된 분쟁이어야 한다.

특히 위 (iii) 요건과 관련하여 중재조항들이 모순 없이 양립 가능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재지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중재조항 간에 모순이 있어서 중재절차를 병합할 수 없을 것이다. 중재판정부가 구성된 후에 중재판정부에게 병합신청을 할 때도 위 요건에 부합하여야 하는데 이때는 병합될 사건들 사이에 같은 중재판정부가 구성되었는지 혹은 아직 중재판정부가 구성되지 않았는지가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나. 당사자 추가 및 참가 (규칙 제7조)
당사자 추가는 중재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진행 중인 사건에 추가되는 것으로, 다수당사자 간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청구의 병합, 당사자 추가는 쉽게 말하자면 서로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같은 중재판정부에 의한 판단을 받도록 하여 모순된 판정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그 취지다.

개정 전 SIAC규칙과 비교해 볼 때 이번 개정규칙에서는 중재절차의 당사자가 아닌 자도 당사자 참가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중재판정부 성립 전에라도 SIAC에 당사자 추가신청을 할 수 있도록 신청 범위를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중재절차의 당사자나 당사자가 아닌 자는 (i) 추가 당사자가 중재합의에 구속됨이 명백한 경우이거나 (ii) 추가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가 당사자 추가에 동의한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당사자를 추가하여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개정 전에는 추가신청 요건을 '중재합의의 당사자'가 서면동의를 하는 경우로 국한하였으나, 개정규칙에서는 중재합의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중재합의에 구속될 것이 일응 명백한 경우에까지 신청 요건을 확장하였다. 예컨대, 중재합의 당사자의 모회사가 당사자 참가신청을 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중재합의에 구속됨이 명백한 경우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중재합의에 적용되는 준거법에 따를 것이다. 둘째, 더 나아가 모든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중재합의에 구속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셋째, 추가 및 참가된 당사자는 중재인을 지명하거나 중재판정부 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두어, 이미 선임된 중재인에 대한 기피신청이나 차후 강제집행 단계에서 중재인 선임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항변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다. 신속절차 신청 요건 완화 (규칙 제5조)
중재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SIAC중재규칙은 일정요건 하에 중재인이 선임된 후 6개월 이내에 중재판정문을 받을 수 있는 신속절차를 마련하고 있는데, 개정규칙에서는 신속절차 신청을 위한 청구금액의 상한을 싱가포르 달러 기준 500만불에서 600만불로 상향조정 함으로써 더 많은 사건들이 신속절차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규칙 제5조에 따라 신속절차로 진행하기로 결정된 경우에는 중재조항에 3인 중재로 하기로 규정된 경우라도 중재조항에 기재된 중재인 숫자와 상관없이 1인 중재인이 선임됨을 명백히 하였다. 중재조항에 3인 중재인으로 기재된 사건이 신속절차에 따라 1인 중재인에 의해 진행된 후 내려진 중재판정문에 대해 제기된 취소 소송에서 싱가포르 법원은 (i) 신속절차 등 중재절차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고 (ii) 3인 중재인 대신 1인 중재인에 의해 진행된 것도 SIAC 규정을 선택한 당사자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하여 중재판정문 취소의 소를 기각하였다. (AQZ v ARA [2015] SGHC 49 판결) 따라서, 계약서 작성 시 만일 당사자들이 신속절차를 원하지 않거나 SIAC규정에 적시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속절차를 적용하고자 할 때는 그 내용을 중재합의문에 명백히 적시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라. 긴급중재절차의 간소화 (규칙 제30조, 별표 1)
개정 중재규칙은 긴급중재인이 선정된 때로부터 14일 이내에 긴급중재인 결정이 나오도록 규정하여 긴급중재절차의 타임라인을 명확히 하였다. 별표 1에 긴급중재인 비용을 위한 예납금을 고정된 금액으로 납입하도록 개정하면서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긴급중재인 선정에 걸리는 시간도 기존의 1영업일에서 1일로 간소화하였다.

마. 중재지 규정의 탈 지역화 (규칙 제21조)
계약서의 중재조항에 중재지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 전에는 중재인이 달리 정하지 않는 이상 싱가포르가 중재지가 되도록 하는 디폴트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개정규칙에는 싱가포르를 중재지로 하는 부분을 삭제하여 당사자가 합의로 정하든지 아니면 중재인이 최종 결정하도록 하였다. 한편, 긴급중재 사건에 있어서는 개정 규칙에서 당사자 간 합의가 없는 경우 여전히 싱가포르를 중재지로 하는 디폴트 규정을 두었다.

■ 마치며

이번 개정 SIAC중재규칙은 현재 국제중재에서 어떤 부분들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지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다수당사자, 다수계약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병합, 당사자추가라는 방식으로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는 현재 해외 건설에 관여하고 있는 한국 건설회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둘째,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여 중재절차 진행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신속절차 및 긴급중재절차 규정을 개정하였다. 셋째, 당사자 자치를 존중하여 중재지 선정에 대한 당사자 합의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이든, 사업이 어디에서 진행이 되든 분쟁해결조항은 중립적인 곳에 두고 싶어 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심리이고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는 국제분쟁해결지로 자주 선택되는 곳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계약을 체결할 때 어떠한 내용의 분쟁해결조항을 넣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분쟁은 예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알아야 예방도 할 수 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