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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조

한국변호사의 미국 디스커버리 (Discovery) 체험담

김원근 해외통신원 (사법연수원 22기·미국 버지니아 메릴랜드 변호사)


우리나라 변호사들이 외국 특히 미국의 사법제도 중 가장 익숙하지 않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 증거법과 디스커버리(Discovery) 관련이다. 그 중 증거법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제법 있어서 조금 적응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는 적응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디스커버리가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디스커버리는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최근 디스커버리,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등에서 보듯이 이론과 실무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배울 점이 많다. 이 글에서는 한국식으로 훈련 받은 필자가 미국식 디스커버리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 혹은 어려움을 겪은 경우들을 적어본다. 디스커버리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다. 국제 중재재판 등 국제사법제도에서도 미국식의 디스커버리가 약간 완화되어 증거조사에 적용되고 이후 최종 재판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1) 디스커버리 과정에서는 양 당사자 간에만 서류와 정보교환이 되고 법원에는 제출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소장제출단계부터 준비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는데 미국은 최종 재판에서 증거를 제출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일단 소명자료(Exhibit)를 제출하고 증거능력 부여에 관한 심리, 즉 전문증거, 진정성립 여부를 가리는 단계를 거쳐야 소명자료가 증거로 인정된다. 따라서 소장에 첨부되어 법원에 들어가는 자료는 모두 소명자료에 불과하고 최종재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한국식에 익숙했던 나는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서류를 증거랍시고 법원에 제출하는 촌극을 벌인 기억이 있다. 그것도 상대방 변호사가 정중하게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조언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뭔가를 제출하여야 될 것 같은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증거가 될 만한 서류들을 일단은 보관하고 있다가 최종 재판 때 증거로 사용하기 위하여 제출하거나, 혹은 중간에 법정 외 증인신문 (Deposition) 에서(특히 상대방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이 경우 최종재판이 아니므로 증거라고 하지 않고 소명자료라고만 한다) 사용한다.

(2)정보 혹은 문서 보호 명령(Protective Order)

근래 유명한 영화제에서 최고 영화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보스턴 지역의 가톨릭 신부들의 성문제(sexual abuse)와 관련된 폭로를 줄거리로 한 영화}를 보면 법원기록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법원기록에 나온 서류나 정보들은 제3자에게 공개되기 쉽다. 그래서 재판과정에서 비즈니스 혹은 사생활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 법원에 '정보 혹은 문서 보호 명령'(Protective Order)을 신청해서 제3자가 그 정보를 보지 못하도록 서류를 밀봉(seal)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실무상으로 이런 정보 혹은 문서 보호명령을 한 번도 신청해본 경험이 없었던 나는 이와 관련한 실수를 하게 되고, 상당한 수준의 경고편지까지 받게 된 경험이 있다. 연방소송법에 관련된 소송절차에서 상대방에게 비즈니스에 관련된 회계정보를 보호하려고 정보 혹은 문서 보호명령을 받았는데 내가 관련된 위 문서보호 명령을 위반하여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었다(전자소송방식이라서 전자소송시스템에 내가 자료를 올리는 방식인데, 상대방이 얻은 문서보호명령의 대상인 정보가 들어있는 문서를 내가 전자소송시스템에 올렸다). 이를 보고 상대방이 나에게 경고편지를 보내왔고, 내가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같은 현상이 다시 한번 내 실수로 발생한 것이다. 두 번이나 정보를 법원에 제출하게 됨에 따라 판사실로부터 "어떻게 된 거냐"는 전화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으로부터 손해배상소송(법원의 결정위반으로)을 제기하겠다는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많이 무서웠다. 지금은 내 의뢰인에게 보호받아야 할 정보가 있는지를 항상 먼저 따져보고 의뢰인에게 사전에 이런 정보 혹은 문서 보호명령이 필요한지 미리 체크한다. 미국의 전자소송 시스템에서는 protective order가 있는 경우 문서가 공개되지 않도록 서류를 밀봉할 수 있는 섹션을 별도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고, 정보 혹은 문서 보호명령이 있는 경우에는 이런 섹션에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3) 다툼 없는 사실과 문서의 진정성립 인정여부 신청 (Request for Admission)

디스커버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다툼 없는 사실과 문서의 진정성립 인정여부신청(Request for Admission)을 하는 게 있는데, 이는 주로 서증의 진정성립 여부 혹은 다툼 있는 사실을 상대방과 다툼이 없도록 본 재판 이전에 미리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련한 변호사들은 다툼이 있을 만한 사실을 몰래 끼워 넣는 '함정 디스커버리'를 한다. 다른 디스커버리에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이의 제기하지 않고 답변도 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서 답변을 강제하는 절차를 거쳐 법원에서 이행강제금을 매기게 되지만, 다툼 없는 사실과 문서의 진정성립 인정여부 신청에서는 질문내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다시 말하면 정해진 답변기간 내에 답신을 하거나 이의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본재판에 제출하게 될 서증을 진정성립이라고 인정해버린 결과가 되거나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다툼 없는 사실로 인정되게 된다. 이런 제도에 익숙하지 않는 경우 답변 기한을 놓치게 되면 아주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4)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 의무(Attorney-client privilege) 변호사의 작업관련 비밀 보호(Attorney work product doctrine) 그리고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거부권(5th Amendment Privilege)

디스커버리 방어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 의무(attorney-client privilege)이다. 소송 당사자는 변호사의 업무관련 비밀보호(attorney work product doctrine) 그리고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 거부권(5th amendment privilege)을 행사해서 서류 제출을 거부하거나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 특히,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 거부권의 경우, 형사사건뿐만 아니라 민사사건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서 많이 놀란 적이 있다. 또한 기업이 소송의 일방 당사자가 된 경우에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의무 혹은 변호사의 업무관련 비밀보호가 항상 이슈가 된다. 그래서 미국의 사내변호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평상시에도 회사의 법률문서를 잘 정리해서 소송이 발생할 경우,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의무 행사여부와 관련한 정리를 미리 해놓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 의무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광범위하게 인정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도 사내 혹은 사외 변호사에게 항상 법률문제를 검토하게 한다. 변호사가 검토하는 그 순간,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비밀보호 유지의무(attorney client privilege)에 의하여 정보 혹은 문서가 보호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5) 법정 외 증인신문 (Deposition)

법정 외 증인신문은 디스커버리에서 가장 중요한 공격방법이다. 이때 중요한 서증들이 거의 다 나오게 되는데, 법정 외 증인신문을 하면서 실제 최종재판에서 질문할 내용들을 대부분 질문하기 때문이다. 또 최종재판에서 제출할 서증도 이때 모두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종재판에서 증거사용이 거부될 수 있다. 필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은 증인신문방식 관련인데, 유도신문을 하거나 전문증거로 분류될 수 있는 서증이 나오게 되면 이의를 하게 되는데 판사가 없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라서 그에 관한 판단을 받으려면 법원에 전화를 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던 점이다.

(6) 기한을 놓친 경우

디스커버리에서 답변기한을 놓친 경우 처음에는 법원에서 이행강제금(civil penalty)을 매기는데, 그게 두세 번 반복될 경우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의제자백 판결을 받게 될 수 있어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필자는 상대방의 문서제출명령(Production of Documents)에 대한 답변기한을 넘겼다가 400불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한 경험이 있다. 또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다른 한 사건에서는 상대방의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답변기한을 두 번이나 넘겨서 의제자백 대상이 된 상황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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