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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4) 을지문덕전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필자가 존경하는 인물이 많지만 그 중에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코 단재 신채호(丹齋申采浩: 1880~1936) 선생이다. 아마도 필자가 지금 한학이나 역사나 고미술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단재선생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라는 몇 편의 논문을 모아놓은 얇은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이 책의 내용이 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후 선생의 일생과 학문하는 자세, 또 그 살아 움직이는 듯 하는 문장의 맛을 본 이후에는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나 근대인물 중에는 따라갈 자가 없지 않은가 한다. 그리하여 선생의 글이란 글은 거의 찾아 읽었고, 선생에 관한 일화가 하나라도 있으면 스크랩해 놓았으며, 또 그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의 글을 찾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다. 선생의 글은 누가 무어라 해도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가 가장 대표적인 글이지만 젊어서 쓴 소설이나 논설, 수필도 너무나 좋다. 그리고 대중적인 선생의 특장은 위인전기에 있다.

그 중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 '이순신전(李舜臣傳)'이 가장 많이 읽힌 책이다. 힘없는 나라의 비통 속에서 이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삼국시대에는 을지문덕 장군, 고려시대에는 최영 장군, 조선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민정신을 쉬운 글로 써서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읽는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엔 사료를 찾거나 보기가 쉽지 않을 시기인데 이렇게 간결하게 쓰면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까? 이는 단재 선생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을지문덕전은 국한문판(1908년 5월)과 한글판(1908년 7월) 두 종류가 있다. 내용은 같으나 한문에 약한 일반 서민과 아녀자 층을 상대로 그들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다시 쉽게 쓴 책이 한글판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을지문덕은 국한문판으로(원 제목은 大東四千載 第一偉人 乙支文德), 한글판에는 없는 변영만(卞榮晩), 이기찬(李基燦), 안창호(安昌浩) 세 분의 서문이 있다. 그리고 저자의 범례가 있고 서론, 결론을 합쳐 총 17장에 본문 79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재 선생은 관련 사료를 최대한 반영하여 역사적 사실을 연설문처럼 울분에 찬 어조로 썼다.

"所以로 乙支文德主義는 敵이 大하야도 我必進하며 敵이 强하야도 我必進하며 敵이 예하던지 勇하던지 我必進하야 一步을 退함에 其汗이 背에 沾하며 一毫을 讓함에 其血이 공에 沸하야 此로 自身를 勵하며 此로 同僚를 鼓하며 此로 全國民을 作興하야 其生을 朝鮮으로 以하며 其死를 朝鮮으로 以하며 其一息一飽을 朝鮮으로 以한 結果에 女眞部落이 皆是我의 植民地로 作하고 支那天子를 幾乎我手로 生擒케 되얏스니 嗚呼라 土地의 大로 其國이 大함이 아니며 兵民의 衆으로 其國이 强함이 아니라 惟自强自大者가 有하면 其國이 强大하나니 賢哉라 乙支文德主義여"('제5장 을지문덕의 雄略'의 끝부분 중에서 인용)

"일국의 민족은 그 나라 영웅이 피를 흘려서 보호한 것이다",  "지나간 영웅을 기록하여 장래의 영웅을 부르노라"했던 단재 선생의 글을 오늘 날 다시 한 번 되새겨 읽어 봄이 어떨지.

※ 한시를 일부 한글로 표기한 것은 현행 컴퓨터 상에 사용하지 않는 한자이므로 부득이하게 한글로 표기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