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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꽃꽂이 즐기는 이수민 판사

싱그런 꽃향기에 취하고… '화사한 변신'의 작품에 취하고…

저는 꽃을 참 좋아하는데, 연애시절부터 남편은 꽃에 돈 쓰는 게 제일 아깝다는 사람입니다. 결혼하고 첫 생일에 남편에게 '어쩜 와이프 생일에 꽃 한 송이 안 사오느냐'고 불평을 했더니, 남편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다음날 진짜로 장미꽃 한 송이를 달랑 들고 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는 '내 생일에는 인터넷으로 5만원 넘는 꽃바구니를 배달시켜줘'라고 합니다.

그렇게 근근이 1년에 한 번씩 꽃바구니를 받으며 지내오던 중, 작년 초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하는 꽃꽂이 강좌를 알게 되었습니다. 미로 같은 법정 복도를 한참 걸었더니 조그만 골방 같은 사무실 문이 나오고,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통하는 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꽃향기가 새어나와 복도 앞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지요. 소질과 적성은 별개인지라 그닥 잘 하지는 못했지만, 1년 동안 월요일마다 싱그러운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꽃꽂이 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완성된 작품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평안해지던지요.

어느새 1년이 지나가고, 저는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발령받게 되었습니다. 수도권 소재 법원을 지망하고 판교로 이사까지 한지라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법원 분위기에 금세 동화되어 즐겁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월에 법원장님 오찬이 있었는데, 법원장님께서 그 자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자랑거리를 말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무얼 이야기할까 하다가 꽃꽂이 이야기를 하고, 꽃꽂이 동호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법관 및 직원들의 동호회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지원하는 법원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꽃꽂이 동호회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꽃꽂이 선생님께서 회원 10명만 되면 출강해주시겠다고 하신 적이 있어서, '설마 이 큰 법원에서 회원 10명을 못 모으겠어? 꽃이야 다들 좋아하잖아.'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더랬습니다.

이수민(40·사법연수원 32기) 서울서부지법 판사가 꽃꽂이 강습시간에 작품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 이판사는 "바쁜 근무시간에도 꽃꽂이 강습을 받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렐 정도로 꽃꽂이가 좋다"고 밝혔다.

그런데 막상 회원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른 법원에 출강을 많이 하시는지라 목요일 밖에 시간이 안되시는데, 목요일에 재판 있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재판 있으신 분, 재판 전날이신 분, 꽃가루 알레르기 있으신 분, 조상 대대로 꽃 싫어하시는 분 등등... 그래도 한번 뽑은 칼 무라도 썰겠다는 강한 의지로, 식사 제공, 회비 감면, 소개팅 주선 등 온갖 사탕발림과 공약을 내걸며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며칠째, 이 정도면 내가 어딜 가서 정수기를 팔더라도 굶어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드디어 최소 인원 열 명이 모집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거의 다단계처럼 되어 이미 가입하신 판사님들이 다른 판사님들을 물고 늘어지는 아름다운 광경도 연출되었지요. 그렇게 결성된 서부지방법원 꽃꽂이회는 지금까지 네 번째 꽃꽂이 수업이 있었고요(한 달에 두 번씩 수업이 있습니다). 다섯 명의 회원이 더 늘어나 열다섯 명이나 되어, 이제 몇 명 탈퇴해도 유지가 됩니다(물론 조직을 배반하고 탈퇴하는 자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바쁜 업무 중에도 꽃꽂이 수업날이 다가오면 설렙니다. 수업시간에 네가 못했네 내가 못했네 입씨름하는 것도(사실 다들 못합니다) 즐겁고요,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거나 누구 선물할 사람 없나 곰곰이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지요.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말까지 취미생활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향기로운 꽃들로 집안을 가꾸는 기쁨은 더 없는 즐거움입니다. 아이들과 남편도 그윽한 꽃향기가 가득한 집안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라 꽃을 다듬는 손길이 한층 가벼워졌음을 느낍니다.

바쁜 일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는 데 도움도 돼 기분도 가뿐합니다. 인생이란 진주 목걸이와 같다고 합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거나 행복한 순간이 진주처럼 줄에 꿰어지는 것이라고요. 이곳 서부지방법원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꽃향기를 맡으며 보냈던 이 1년의 시간들이, 제게는 아주 행복한 진주알로 꿰어질 것 같습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