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취재수첩

[취재수첩] 신뢰는 객관성으로부터


일하던 렌터카 업체에서 상무로 승진한 뒤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40대 가장의 유족들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1, 2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그가 평소 대표의 질책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우울증 치료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호소한 점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업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 않았고, 렌터카 업무 종사자들이 겪는 통상의 업무라 스트레스가 자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며 산재(産災)로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 판단이 제각각이다. 법리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같거나 비슷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업무 스트레스가 자살로 이어졌는지를 평가하는 상당인과관계를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할 것인지 여부가 전적으로 재판부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각 재판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만한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다는 말이다.

판사들마다 나름의 직업적 양심과 소신을 갖고 판단하겠지만, 유족들 입장에서는 같은 사실관계를 갖고 판단이 달라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관련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얻기 힘들다.

따라서 당사자나 국민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업무 스트레스와 자살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권고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중앙심리부검센터나 병원에서 '심리부검'을 통해 업무상 스트레스가 자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수치화한 뒤 이를 법원이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지를 논의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사회가, 경제가 더 팍팍해질수록 업무 스트레스는 심화될 것이고 직장인들의 안타까운 자살도 늘 공산이 크다. 관련 사건이 법원으로 오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기준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