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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어려움

전응준 변호사 (법무법인 유미)

외국어로 된 신개념을 우리말로 옮길 때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해당 외국어에 대응하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 없거나 아직 우리가 그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경우 번역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bank라는 단어를 보자. 은행제도를 수입하려 했던 일본은 처음에 이를 회사라고 번역했다. 그러다가 이것이 company와 혼동되자 비로소 은행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은(銀)은 돈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행(行)은 큰 상점을 의미한다고 한다. 돈을 다루는 큰 상점, 그것이 은행이다. individual, society는 어떤가. 동양에서는 본래 개인, 사회라는 개념이 없었다. 번역 이전에 개념 자체의 이해가 어려웠을 것이다.

유리수(有理數)의 예도 흥미롭다. 유리수의 영문은 rational number이다. 모든 사물을 정수 또는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던 피타고라스 학파는 유리수를 라티오(ratio)라고 이해했다. 라티오는 라틴어로 비율(비례), 이성 등의 뜻을 가진다. 수학적인 의미로 보면 유리수는 비례로 읽혀야 하지만 정수를 신봉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입장에서는 유리수를 합리적인 존재로 보아야 했던 모양이다. 이에 따라 무리수(無理數)는 irrational인 것으로 처리되었다. 무리수를 부정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오해가 깃든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뜻을 알 수 없는 번역도 있다. 양주동 선생의 '몇 어찌'라는 글을 보면 기하(幾何)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한문이라면 무불통지(無不通知)인 분이 '몇 어찌'라는 뜻을 가진 幾何라는 용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하학을 의미하는 geometry가 중국에서 음역되어 '지허'(幾何의 중국음)로 불리고 이를 한자어로 받아들인 것이 우리말 기하다. 그는 처음에는 기하의 뜻에 골몰하다가 나중에는 기하학이 가진 과학적 학풍에 감탄하여 신학문을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한다. 개념과 관계없는 번역이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깊은 이해에 다가갈 수 있었던, 개화기 당시의 역설적인 광경이다. 어려운 번역도 결국 이해하려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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