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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인쇄술 논쟁

김웅 대외연수과장 (법무연수원)

구교에서 5월은 성모의 달이다. 성모는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령으로 잉태한다는 내용의 수태고지를 받는다. 수태고지를 그린 그림들을 보면 대개 마리아의 한쪽 손에 책이 들려 있다. 600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2천만 원가량 되는 고가품으로 지금으로 치면 에르메스 버킨백 정도 되는 귀물이다. 마구간에서 해산을 해야 했던 목수의 아내가 들고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다. 책값이 비쌌던 것은 필경사라고 하는 전문적인 장인들이 직접 베끼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책표지를 만드는 가죽장인, 삽화를 그리는 화가, 금은세공사, 대장장이까지 동원되었다. 따라서 책은 귀족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권력과 지식의 상징이자 장벽이었다. 그러나 1440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개발한 후 책값은 7만 원대로 떨어졌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올리브나 포도를 착즙하는 방식으로 찍어대는 책을 보고 인간의 영혼과 수고가 깃들지 않은 기계의 낙인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기계가 찍어대는 책을 보면 영혼이 타락하여 불손과 배교를 낳고 결국 큰 재앙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악담은 적중해서 그 후 독일농민전쟁, 슈말칼덴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 전쟁, 위그노 전쟁, 아일랜드 전쟁 등이 터졌다. 그러나 전쟁과 함께 신분제와 전제정은 궁극적으로 쇠퇴했다. 기계의 낙인이라는 인쇄술은 자유와 공정을 낳았고 특권이라는 구체제의 심장을 저격했다.

알파고의 다음 목표는 임요한이 아니라 법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판결과 변론은 민주주의와 헌법에 반한다는 주장부터 자의적인 휴리스틱보다는 공평과 예측가능성을 원한다는 옹호론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인쇄술 논쟁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알파고를 응원하는 것 같다. 사실 신호등을 따른다고 기계에 복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쇄술을 개발한 구텐베르크마저 동업자의 소송으로 망했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만만찮은 싸움이 될 것 같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