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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61) 자하의 석죽도(石竹圖)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자하 신위의 대나무 그림은 조선 전기의 탄은 이정, 숙종조의 수운 유덕장과 함께 조선시대 가장 대나무를 잘 그리는 화가로 이름이 났다.

이 세분은 모두 전문화가가 아니고 선비화가다. 하여 더 추앙을 받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 세 사람은 그림의 품격이 현저하게 드러나질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감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이것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섬세한 면은 탄은이 뛰어나고 다양하고 굳센 면은 수운이 낳고, 가장 부드럽고 여린 대는 자하의 대다. 성격도 그림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수운은 모르지만 탄은과 자하는 글씨도 잘 썼다. 또 시도 잘 했으니, 어떤 이는 조선에서 한 사람의 시인을 꼽을 때 자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하는 당시 젊은 시절부터 시, 서, 화에 모두 능해 삼절이라 일컬어 졌던 천재의 한 사람이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석죽도(石竹圖)는 언제 구입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앞면에 "신자하첩(申紫霞帖)"이라 제목이 쓰여 있는 한 첩으로, 대나무 그림이 앞뒤로 붙어있고 중간에 9면의 글씨가 쓰여 있다. 글씨의 한 편은 처남에게 예전에 보냈던 시를 아들에게 써준 것이고, 또 한편은 1816년 곡산부사로 있을 때 곡산관아에 있던 객관 기문(記文)을 고증한 글이다. 그림의 앞면은 석죽도고 뒷면은 설죽도(雪竹圖)이다.

이 석죽도는 노숙한 필치의 그림이 아니고 자하가 젊은 시절, 아마도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 하단의 바위나 태점이 어설프고 대마디나 농묵도 그리 능숙하질 못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떨어지는 그림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작가든지 제일 좋은 작품만 보기에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이 조금만 어설퍼도 이상하게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작품이 그렇다.

여기 관지가 홍전(홍田)이다. 도장은 문○당(文○堂·가운데 글씨는 희미해 보이지 않음)이다. 둘 다 생소하여 처음 이 그림을 볼 때는 자하의 아드님인 소하 신명준(小霞 申命準: 1803-1842)이나 애춘 신명연(靄春 申命衍: 1808-1886)의 그림일 거라 여겼다. 자하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 앞의 제첨(題簽)에도 "신자하첩"이라 한 밑에 작은 글자로 '부애춘화(附靄春畵)'라 씌어 있어 더더욱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다. 이첩의 구 소장자가 쓴 것인데 이 소장자도 홍전이란 사람이 애춘이라 여기고 그림도 자하라면 이렇게 어설프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 사람은 여러 가지 호를 쓰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홍전이 애춘이라 여긴 것 같다. 그런데 왜 한번이라도 홍전이 자하의 젊은 시절 호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우연히 자하 시문집인 '경수당고(警修堂藁)'을 보다가 홍전이 자하 젊은 때의 호라는 것을 알았다.

자하가 여귀풀이라는 풀을 두고 지은 시의 뒤에 이런 주석이 붙어있다. '내 나이 열일곱 여덟에 독서하던 곳에 여귀풀 몇 이랑을 심었다. 하여 문미(門楣), 이름을 홍전이라 했다(僕年十七八, 於讀書處, 種數홍數畝, 榜曰홍田).' 또 친구인 담정 김려(담庭 金려: 1766-1822)의 담정유고에도 ' 홍전자 신위는 근래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다(홍田子申緯, 近來善書者)' 라는 기록이 있다. 골동에 미친 사람은 가끔 이런 행운도 있다지만 홍전이 자하라는 것을 아는 그 순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짜릿한 맛, 이 맛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미술이 가지는 최고의 행복이다.

※ 한시를 일부 한글로 표기한 것은 현행 컴퓨터 상에 사용하지 않는 한자이므로 부득이하게 한글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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