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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재판으로 본 한국 현대사'

한승헌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이른바 시국사건에는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일쑤다. 수사 뿐 아니라 재판에서도 그러하다. 그러기에 공정성이 의심을 받고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다보면, 사법절차는 자칫 불의를 감싸는 포장작업으로 전락한다. 나아가서 그것은 역사의 흐름에서 착시(錯視)와 편견을 유발하는 인자가 된다. 시국사건의 재판은 역사의 복판을 가르며 그 공정 여하에 따라 역사를 바로잡기도 하고 그르치기도 한다. 잘못된 재판은 한 시대의 불의를 바로잡기보다는 은연중 그것을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하는데. 이 땅의 사법도 그 점에서는 떳떳할 수가 없다.

이번에 나온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에서 이미 역사의 한 부분이 된 중요 시국사건의 재판을 재론한 것도 가려진 사법의 이면과 민낯을 통하여 역사의 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일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오랫동안 시국사건을 변호하는 가운데, 사법부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경험했다. 특히 사법 흔들기의 외풍과 영합적 내풍에 멍드는 사법의 현장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그러면서 떠오른 것이 변호사는 법정 안팎의 변호활동 외에 증언자, 기록자로서의 소임을 다함으로써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또 국민적 망각을 방지하는 '다시보기'를 깔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고 또 '정치재판의 현장', '분단시대의 법정',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전 7권) 등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번 신간에서는 해방 후의 '여운형 암살사건'(1947)에서부터 참여정부 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2004)까지 17건의 사건에 대한 재판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의 이른바 '과거사' 재판에서 사법부 스스로가 여러 중요사건들에 대해서 재심 무죄로 결론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을 끌었다.

여기서 간파되는 하나의 흐름인즉, 우리 사법부의 냉혈동물적 체질이다. 냉혈동물은 그 어감과는 달리 언제나 몸이 찬 것이 아니고 외계의 기온 변화에 따라 체온이 오르내리는 체질을 갖고 있다. 정치의 기류에 따라 자신의 모순을 들어내며 성향과 결론이 달라지는 재판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기구한 맥락에서 사법부가 남긴 아쉬움을 되돌아보면서 이번 나의 졸저가 올바른 역사와 올바른 사법을 지향하는 입문서라도 되었으면 망외(望外)의 보람이 되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