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8) 형법 총칙

이용식 교수(서울대 로스쿨)

1. 대향범에 있어 형법총칙 공범규정의 적용 여부에 관한 사례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2도4842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2011. 6. 29. 피고인은 "피고인이 공소 외 1과 공모하여 2005. 2. 3. 공소외 2에게, 체비지를 싸게 매입할 수 있도록 부천시청 체비지 담당공무원 공소외 3에게 전달해 달라며 6,000만 원을 교부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공소제기되었다. 한편 공소 외 1과 공소 외 2 및 공소외 3에 대하여는 2006. 1. 10. 각각 제3자 뇌물교부죄, 제3자 뇌물취득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로 공소가 제기되어, 2007. 4. 20. 서울고등법원에서 공소외 1에게는 징역 1년, 공소외 2에게는 징역 1년 6월, 공소외 3에게는 징역 3년의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으며, 공소외 1에 대한 유죄판결은 2007. 4. 27. 상고기간 경과로, 공소외 2와 공소외 3에 대한 유죄판결은 2007. 7. 27. 이들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각각 확정되었다. 제3자 뇌물교부죄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검사는 피고인과 공소외 2, 3은 필요적 공범관계에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공범의 1인에 대한 전항의 시효정지는 다른 공범자에게 대하여 효력이 미치고 당해 사건의 재판이 확정된 때로부터 진행한다)에 따라 공소외 2, 3에 대한 공소제기시로부터 유죄판결 확정일 까지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을 제3자 뇌물교부죄로 공소제기하였다.

1심은 피고인에게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하였음을 전제로 유죄를 선고하였다. 2심은 공소외 1에 대한 기소 및 판결의 확정에 의하여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다고 보더라도 5년이 경과하였으며, 공소외 2, 3에 대한 기소 및 판결의 확정에 의하여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므로, 피고인에게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여 면소판결(형사소송법 제326조 제3호)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이 적용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상고기각)
뇌물공여죄와 뇌물수수죄 사이와 같은 이른바 대향범 관계에 있는 자는 강학상으로는 필요적 공범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서로 대향된 행위의 존재를 필요로 할 뿐 각자 자신의 구성요건을 실현하고 별도의 형벌규정에 따라 처벌되는 것이어서, 2인 이상이 가공하여 공동의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공범관계에 있는 자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대향범 관계에 있는 자 사이에서는 각자 상대방의 범행에 대하여 형법 총칙의 공범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보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에서 말하는 '공범'에는 뇌물공여죄와 뇌물수수죄 사이와 같은 대향범 관계에 있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3) 판례평석
위 대법원 판결은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의 공범을 해석할 때 형법총칙상 '공범' 규정이 적용됨을 전제로, 강학상의 필요적 공범(notwendige Teilnahme) 중 하나인 대향범(Begegnungsdelikt)은 형법 총칙에서 말하는 '공범'이 아니기 때문에, 가사 대향범 관계에 있는 필요적 공범 중 1인에 대하여 공소제기되어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결론은 누차 반복되어 온 편면적 대향범에 대한 형법총칙 공범규정 배제에서 추론할 수 있다(대법원 2014. 1. 16. 선고 2013도6969 판결 등). 대향범을 강학상 필요적 공범이라 부르더라도 이는 진정한 의미의 공범이 아니며, 따라서 형법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상의 공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편면적 대향범에 한하여 적용될 수도 있는 논리이다. 쌍방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는 대향범의 경우 그들 내부관계에서 형법총칙 공범규정의 적용이 배제되는 이유는 형법 각칙에 이미 그들에 관한 처벌규정이 있어서 형법총칙 공범규정 적용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 규정이 공범 사이의 처벌의 형평에 관한 규정임을 고려할 때 동일한 사실관계에 관련되어 있는 관여자들 사이의 처벌은 형평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형법총칙에서의 임의적 공범보다 오히려 쌍방 모두 처벌되는 필요적 공범에 있어서 불법의 연대는 보다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필요적 공범은 구성요건실현을 위하여 다수인의 관여가 전제되어 있으므로, 대향범에 있어서 상대방의 존재가 전제되지 아니할 경우에는 범죄의 성립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대향범 관계에 있는 내부자들이 아니라 편면적 대향범에 관한 형법총칙 공범규정 적용 배제를 너무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2항에서의 '공범'에서 강학상 필요적 공범으로 일컬어지는 범죄형태, 특히 관여자 쌍방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는 대향범을 배제하는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2. 실행의 착수에 관한 사례(필로폰 매매행위) (대법원 2015. 3. 20. 선고 2014도16920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피고인은 2011. 2. 중순경 부산, 경남 일원에서, 지인으로부터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구입대금으로 200만원을 지급받았으나 필로폰을 구하지 못하여 이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필로폰을 매수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공소사실(마약류 매매 미수)로 공소제기되었다.

1심과 2심은 모두 유죄로 인정하였고, 피고인은 위와 같이 필로폰 매수를 위하여 단지 구입대금을 교부받았음에 불과한 행위는 필로폰 매매의 미수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상고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파기환송)
필로폰을 매수하려는 자에게서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을 지급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필로폰을 소지 또는 입수한 상태에 있었거나 그것이 가능하였다는 등 매매행위에 근접?밀착한 상태에서 대금을 지급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금 명목으로 돈을 지급받은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필로폰 매매행위의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3) 판례평석
미수범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 고의와 객관적 구성요건으로서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언제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볼 것인가이다. 실행의 착수에 관하여는 구성요건에 규정된 행위를 실행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객관설, 주관설, 주관적 객관설로 나뉜다. 성립범위를 너무 좁히는 객관설이나 너무 넓히는 주관설을 택하는 견해는 별로 없고, 대부분은 구성요건의 실현행위를 행위자의 개별적 행위계획에 따라 판단하는, 주관적 객관설의 입장에 있다. 즉 범죄 의사가 비약적으로 발현되어 구성요건 실현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 다시 말해 반드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개시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자의 범죄계획에 따를 경우 본질적인 중간행위 없이도 구성요건 실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행위는 실행의 착수로 본다. 가령, 절도의 경우 주거에 침입하여 절취할 재물을 물색하거나 그 재물에 접근할 때를 실행의 착수로 본다. 민법상 매매계약은 요물계약이 아니기 때문에(민법 제563조는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목적물을 매도인이 소유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즉 당사자 사이의 의사의 합치에 의하여 매매계약은 성립한다. 이러한 민법적 이론구성에 따른다면, 피고인이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금원을 교부받았을 경우 매매계약은 성립하였고, 피고인은 이미 기수에 이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매매계약의 성립만으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구성요건 실현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0조 제1항 제2호는 "향정신성의약품을 매매"한 자를 처벌대상으로 규정하여 매매의 목적물을 특정하고 있다. 구성요건 실현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되기 위하여는 향정신성의약품인 필로폰이라는 물건 자체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도 민사적 법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요물성을 요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안에서 피고인이 필로폰을 미리 입수한 상태였다거나 필로폰 판매 상선을 이미 확보한 상태여서 본질적인 중간행위 없이도 구입자금만 있으면 필로폰의 입수가 바로 가능한 상태였을 경우 구성요건 실현에 근접?밀접한 상태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고 필로폰의 입수를 위하여 필로폰 판매 상선의 확보라는 본질적인 중간행위가 필요한 상태였다면 그렇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안에서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필로폰 판매 상선이 구체적으로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구입자금을 받았으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 필로폰 판매 상선이 실제로는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것인지, 인정하더라도 이를 불능미수로 볼 것인지 불능범으로 볼 것인지 문제될 수 있다. 그리고 필로폰 판매 상선이 구체적으로 확보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확보된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즉 필로폰 판매를 하는 상선들을 알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매입이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에도 실행의 착수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문제될 수 있다.


3. 법익의 제한적 기능('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상해'의 포섭범위)에 관한 사례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4도13345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피고인은 2013. 3. 20. 23:10경 서울 송파구 신천동 소재 도로에서, 피해자가 운전하는 승용차의 뒷좌석에 타고 가다가, 신호대기로 정차하게 되자, '운전 똑바로 해'라고 화를 내면서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2회 때리고 목을 졸라 약 14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가함으로써,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여 상해에 이르게 하였다는 공소사실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라 함) 제5조의10 제2항 위반죄로 공소제기되었다.

1심은 유죄를 선고하였다.

2심은 특가법상 위 법조항의 보호법익을 고려하여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여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의 해석은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에 대한 폭행·협박의 행사로 인하여 교통사고 등 교통안전 및 시민의 안전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사람의 상해라는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 한정하여야 한다고 보아, 위 사례에서는 '교통사고 등 교통안전 및 시민의 안전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형법상의 상해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을 뿐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특가법 위반죄는 (이유)무죄, 상해죄는 유죄로 인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가 특가법 위반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파기환송)
특가법 제5조의10 제1항, 제2항은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운전자나 승객 또는 보행자 등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교통질서를 확립하고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특가법이 2007. 1. 3. 법률 제8169호로 개정되면서 신설된 것이다. 법 해석의 법리에 따라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기초를 두고 입법 취지와 목적, 보호법익 등을 함께 고려하여 살펴보면, 특가법 제5조의10의 죄는 제1항, 제2항 모두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행이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아 이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추상적 위험범에 해당하고, 그 중 제2항은 제1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상해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에 이르게 한 경우 제1항에 정한 형보다 중한 형으로 처벌하는 결과적 가중범 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운전자나 승객 또는 보행자 등을 상해나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면 이로써 특가법 제5조의10 제2항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3) 판례평석
위 대법원 판결은 특가법상 운전자 상해죄에 대하여 '추상적 위험범'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여,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할 경우 범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위 사안에서는 2가지가 문제된다. 먼저 정차 중인 차량을 '운행 중'인 것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 다음으로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25호는 "'정차'란 운전자가 5분을 초과하지 아니하고 차를 정지시키는 것으로서 주차 외의 정지 상태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운행'에 관하여는 별다른 개념정의 규정이 없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2조 제2호는 "'운행'이란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 여부와 관계없이 자동차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차'는 '운행'과 어떠한 관계인가? '운행'과 '운전'의 관계에 관하여 대법원은 "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1999. 2. 5. 법률 제5793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2호는 '운행'이라 함은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 여부에 관계없이 자동차를 당해 장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는바, 여기에서 자동차를 당해 장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한다는 것은 자동차의 용도에 따라 그 구조상 설비되어 있는 각종의 장치를 각각의 장치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자동차가 반드시 주행 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주행의 전후단계로서 주?정차 상태에서 문을 열고 닫는 등 각종 부수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므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의 '운행'은 도로교통법상의 '운전'보다 넓은 개념이지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대법원 1999. 11. 12. 선고 98다30834 판결 참조), '운행'의 개념을 넓게 보고 있다. 따라서 정차 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행 내지 주행의 전후단계에 해당한다면 일반적으로 운행이라고 볼 수 있다. 위 사안에서는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위하여 정차한 것으로, 신호가 바뀌면 다시 주행을 하려는 주행의 직전단계에 해당하므로 '운행'의 개념에 포섭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문제는 과연 피고인이 운전자를 폭행한 것 때문에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발생되었고, 그로 인하여 범죄가 성립한다고 볼 것인가이다. 특가법상 위 법조항의 보호법익은 운전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것 외에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오로지 운전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대하여만 침해행위가 있다고 평가되고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침해의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가사 구성요건상으로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침해'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 범죄는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호법익은 구성요건의 성립범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가령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1도13299 판결 참조). 다만 보호법익 침해의 위험이 구체적?현실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추상적이어도 족한가에 대하여 2심과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 하였다. 위 법조항상의 보호법익 침해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할 때 그 위험의 정도는 일반적?추상적인 것으로 족하다고 본 대법원의 입장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전제로 보면, 위 사안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신호대기 중인 교차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통질서와 시민의 안전 등 공공의 안전에 대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위와 같은 가능성이 없는 장소(가령 외부와는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행위자 개인의 주택 내 도로에서 오로지 운전자와 행위자만이 있고 다른 자동차나 보행자가 없는 경우)에서 그와 같은 행동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인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부작위범에 관한 사례(세월호 사건)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5도6809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관련 부분만 기재)
항해 중이던 선박의 선장 피고인 甲, 1등 항해사 피고인 乙, 2등 항해사 피고인 丙이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멈춘 후 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인 승객 등이 안내방송 등을 믿고 대피하지 않은 채 선내에 대기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고 퇴선하였다. 이로 인해 배에 남아있던 피해자들 대부분은 익사하고 일부는 해경 등에 의해 구조되었다. 피고인들은 살인 및 살인미수의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었다.

1심은 피고인들 모두에 대하여, 승객 등이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있었지만 이를 용인하였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고의를 인정할 수 없어, 살인 및 살인미수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2심은 피고인 甲에 대하여 살인 및 살인미수의 유죄를,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하여는 1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검사는 피고인 乙, 丙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 甲과 함께 살인 및 살인미수의 공동정범의 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로 상고하였고, 피고인 甲은 자신에게 살인 및 살인미수가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로 상고하였다.

(2) 대법원 판결요지 (상고기각)
피고인 乙, 丙은 간부 선원이기는 하나 나머지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선박침몰과 같은 비상상황 발생 시 각자 비상임무를 수행할 현장에 투입되어 선장의 퇴선명령이나 퇴선을 위한 유보갑판으로의 대피명령 등에 대비하다가 선장의 실행지휘에 따라 승객들의 이동과 탈출을 도와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임무의 내용이나 중요도가 선장의 지휘 내용이나 구체적인 현장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퇴선유도 등과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에 의해서도 비교적 쉽게 대체 가능하고, 따라서 승객 등의 퇴선을 위한 선장의 아무런 지휘?명령이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 乙, 丙이 단순히 비상임무 현장에 미리 가서 추가 지시에 대비하지 아니한 채 선장과 함께 조타실에 있었다거나 혹은 기관부 선원들과 함께 3층 선실 복도에서 대기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선장과 마찬가지로 선내 대기 중인 승객 등의 사망 결과나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를 계획적으로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 사태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 乙, 丙이 간부 선원들로서 선장을 보좌하여 승객 등을 구조하여야 할 지위에 있음에도 별다른 구조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사태를 방관하여 결과적으로 선내 대기 중이던 승객 등이 탈출에 실패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은 있으나, 그러한 부작위를 작위에 의한 살인의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고, 또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로 피고인 甲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에 공모 가담하였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피고인 乙, 丙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다.
(피고인 甲에 대하여는 살인죄를 인정한 원심을 정당하다고 보았다)

(3) 판례평석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선장이나 선원 등의 작위의무에 관하여, "선장은 승객 등 선박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총책임자로서 선박공동체가 위험에 직면할 경우 그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거나 구조세력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의 태양, 구조세력의 지원 가능성과 규모,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구조계획을 신속히 수립하고 선장의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적절히 행사하여 선박공동체 전원의 안전이 종국적으로 확보될 때까지 적극적·지속적으로 구조조치를 취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 또한 (중략) 모든 승무원은 선박 위험 시 서로 협력하여 조난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을 적극적으로 구조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선박침몰 등과 같은 조난사고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선박의 운항을 지배하고 있는 선장이나 갑판 또는 선내에서 구체적인 구조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선원들은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통해 보호능력이 없는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의 사망 결과를 방지하여야 할 작위의무가 있으므로, 법익침해의 태양과 정도 등에 따라 요구되는 개별적?구체적인 구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음에도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를 그대로 방관하여 사망의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지고,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될 경우에는 작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판단하였다. 즉, 선장의 경우에는 포괄적인 구조의무가 있으나, 선장이 아닌 선원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구조행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작위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장은 선원과 달리 구체적인 구조행위가 필요한 상황에 맞닥뜨린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작위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으로, 선장인 피고인 甲은 위 판결요지에 나타난 것과 같이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자신만 퇴선하였기 때문에 이미 작위의무가 발생한 상황에서 부작위로 나아갔다면 살인행위와 동가치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 乙, 丙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구조행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퇴선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작위의무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들의 부작위를 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동등한 가치(등가성)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는 반론도 가능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사안에서 피고인 甲에게 살인의 고의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정할 수 있겠는지 문제된다. 택일적 의사결정(선박에 남게 하는가, 아니면 선박에서 내리게 하는가)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였는데 그것이 사망의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만으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인정에도 규범적 평가가 개재될 수밖에 없으므로, 가령 경영판단이라는 이유로 배임죄의 고의가 모든 경우에 부정될 수 없는 것과 유사하게, 택일적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는 상황 및 그에 이르게 된 경위, 그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가지는 지위와 결과발생 방지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등에 따라서, 사안에 따라 고의의 인정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