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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6) 민법(하)

김재형 교수(서울대 법대)

Ⅵ. 위약벌의 효력

1. 쟁점과 판결 요지

대판 2015.12.10. 2014다14511에서 146억 원의 위약벌(이 사건 합의에 따른 위약벌인 30억 원과 이 사건 주식매매 등 계약에 따른 위약벌인 116억 원)이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인지 문제되었다.

원심은 위 위약벌이 공서양속에 반할 정도로 과도하게 무거운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A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업자 사이의 의견 충돌로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동업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당시 B와 피고 C 사이에 불신이 심하여 이 사건 합의 등의 이행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원ㆍ피고들이 동등한 지위에서 그들 사이의 동업관계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청산할 목적으로 위약벌 약정을 하고, 양도인 측인 원고들의 계약 위반 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판단하더라도, 이 사건 위약벌 약정은 그 의무의 강제에 의하여 얻어지는 원고들의 이익에 비하여 약정된 벌이 과도하게 무거워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

원고들은 이 사건 합의 등에 따라 피고들에게 주식과 채권을 양도하는 대가로 피고들로부터 58억 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 위약벌 146억 원은 위 대가의 3배 가까이 되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원고들은 피고들로부터 이 사건 위약벌과 별도로 피고들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의 전부를 배상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 등을 들어 위약벌 약정이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 위약벌의 무효 인정

(1) 위약벌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손해배상의 예정액과는 달리 제103조에서 정한 공서양속 규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대법원은 위약벌에는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을 인정한 제398조 제2항이 유추 적용되지 않고, 위약벌을 부과함으로써 얻는 채권자의 이익에 비하여 위약벌이 과도하게 무거울 때에는 그 일부 또는 전부가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로 된다고 한다(대판·2010.12.23.?2010다56654, 대판 2013. 12. 26. 2013다63257). 그러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위약벌 약정의 무효를 인정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2) 이 판결은 위약벌에 관한 기존의 판례를 따르고 있으나, 공간된 대법원 판결 중에서는 최초로 위약벌 약정에 대하여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위약벌에 대하여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일부 무효를 인정하는 것은 제398조 제2항에 따라 감액을 인정하는 것과는 논리적으로 다른 것임이 분명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유사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판례는 위약벌을 정한 경우에 ‘그 의무의 강제에 의하여 얻어지는 채권자의 이익에 비하여 약정된 벌이 과도하게 무거울 때’에는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무효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의미상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요건인 ‘부당히 과다한 경우’와 큰 차이가 없다. 위약벌과 손해배상액의 예정 사이에는 감액을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구별되고 감액인지 일부 무효인지에서 다르지만, 실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런데도 손해배상 예정액은 쉽게 감액하는 반면 위약벌은 일부 무효조차 거의 인정하지 않는 실무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위약벌에 대해서도 제398조를 유추적용해야 한다는 견해에 찬성하지만(김재형, 민법론 Ⅴ, 269면), 이 판결은 위약벌에 대하여 공서양속 위반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위약벌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유사하게 실질적인 사법적 통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와 무관하게 과도한 위약벌 약정을 함으로써 계약당사자들 사이에서 형평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Ⅶ. 계약금계약과 해제권유보조항

1. 쟁점과 판결 요지
매매계약에서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매도인이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약정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가?

대판 2015.4.23. 2014다231378은 부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약정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 쟁점과 관련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원고는 2013. 3. 25. 피고로부터 건물을 매매대금 11억 원에 매수하기로 하는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1억 1000만 원 중 1000만 원은 계약 당일에 지급하고, 나머지 1억 원은 다음 날인 2013. 3. 26. 피고의 은행계좌로 송금하기로 약정하였다. 이 사건 매매계약에서는 ‘매수인이 잔금을 지불하기 전까지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한 당일 피고의 은행계좌로 계약금 중 1,000만 원을 송금하였다.

피고는, 원고가 계약금을 전부 지급하기 전까지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구속력이 약하므로 피고는 계약금 일부로서 지급받은 1,000만 원의 배액을 상환하면 얼마든지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결은 매도인이 계약금의 일부로서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는 것으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두 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첫째,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한다. 둘째, 교부받은 금원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로이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

2. 해제권유보조항과 민법 제565조의 관계
이 사건 계약서에서 ‘매수인이 잔금을 지불하기 전까지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위 약정의 문언에 따라 매도인은 계약금을 실제로 교부받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위 계약조항에서 계약금의 지급여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판단이 해약금에 관한 제565조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문제된다. 제565조 제1항은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서 계약금의 교부가 요건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위 규정에 따라 매매계약을 해제하려면 계약금을 교부하고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것은 당사자들의 계약서에 규정된 해제권유보조항에 따른 해제이고, 제565조의 규정에 따른 해제가 아니다.

3. 계약금계약이 요물계약인지 여부
이 판결은 대판 2008.3.13. 2007다73611을 인용하여 “계약금계약은 금전 기타 유가물의 교부를 요건으로 하므로 단지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약정만 한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금으로서의 효력, 즉 위 민법 규정에 의해 계약해제를 할 수 있는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고,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해약금의 성격을 갖는 계약금계약을 요물계약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계약금계약을 일률적으로 요물계약이라고 보아야 할 근거가 없다. 제565조가 적용되지 않는 계약금계약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금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당사자가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정한 경우에 계약금의 교부와 무관하게 위약금 약정으로서 효력이 생긴다. 당사자가 계약금을 포기하고 해제할 수 있다는 해제권유보조항을 둔 경우에는 그 조항이 정한대로 해제권이 생길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제565조와는 무관하게 당사자의 약정내용에 따라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사자들이 계약서에 있는 해제권유보약정에 따른 해제를 주장하는 경우에 민법의 위 규정에 따른 해석론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Ⅷ.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와 채권자취소소송의 상대방

1. 쟁점과 판결 요지
대판(전) 2015.5.21. 2012다952는 매우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A 소유인 부동산에 관하여 사해행위인 매매예약에 기하여 수익자 앞으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를 마쳤다. 그 후 전득자 앞으로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를 마치고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까지 마쳤다. 이러한 경우에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사해행위인 매매예약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사해행위인 매매예약에 기한 가등기를 한 후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와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까지 마쳤는데,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여 매매예약을 취소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것이다.

원심은 위 부동산에 관하여 수익자로부터 전득자에게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가 되었고 수익자가 본등기 명의인도 아니므로 수익자가 사해행위취소 채권자에 대하여 가액배상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2. 사해행위로 가등기를 설정받은 수익자가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를 한 후에도 채권자취소소송의 상대방이 되는지 여부
채무자 소유 부동산에 관한 매매예약에 기하여 소유권이전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한 가등기를 마친 경우에, 사해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를 마치면, 가등기에 의하여 보전되는 권리를 침해하는 중간등기는 모두 실효되어 직권말소되거나 그 저촉되는 범위에서 후순위가 된다. 따라서 가등기가 되어 있는 부동산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에서 실질적으로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채권자는 매매예약을 취소하고 수익자인 가등기권자는 원상회복으로 가등기를 말소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사해행위인 매매예약에 기하여 수익자 앞으로 가등기를 마친 후 전득자 앞으로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를 한 경우에도 수익자로서의 지위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전득자가 위 가등기에 기한 본등기까지 마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채권자는 매매예약에 관한 수익자를 상대로 매매예약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고, 수익자 명의의 가등기말소의무의 이행이 불가능하더라도 위 가등기 및 본등기에 의하여 발생한 공동담보 부족에 관하여 원상회복의무로서 수익자에게 가액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던 대판 2005.3.24. 2004다70079(미공간)를 변경하였다.

3. 가등기 이전의 부기등기가 채권취소소송에 미치는 영향
가등기에 기한 권리를 부기등기로 이전하고 그 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한 경우에 말소청구소송에서 최종 명의인만이 피고적격이 있다(대판 1967.6.13. 67다482, 대판 2000.4.11. 2000다5640). 이러한 판례가 채권자취소소송의 상대방을 정하는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문제된다. 사해행위에 기하여 가등기가 전전 이전되어 최종 명의인 앞으로 본등기가 이루어진 경우에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가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는 없고 가등기 및 본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려면 전득자인 최종명의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채권자는 수익자를 상대로 원물 자체의 반환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가액반환을 청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Ⅸ. 금전채권의 질권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

1. 쟁점과 판결 요지
대판 2015.5.29. 2012다92258은 채권질권과 관련하여 부당이득의 삼각관계라는 어려운 쟁점을 다루고 있다.

피고 회사는 그 소유의 윤전기 2대와 기타 기계류 및 인쇄공장 건물에 관하여 원고와 화재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 회사는 대출금채권자인 피고 은행에 기존 담보에 추가하여 위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청구권에 관하여 채권최고액 15억 원인 질권을 설정해 주었고, 원고는 이를 승낙하였다. 피고 회사의 인쇄공장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여 위 윤전기 등 기계류와 인쇄공장 건물이 소훼되었다. 원고는 화재보험금을 17억4000여만 원으로 결정하고, 그중 채권최고액 상당인 15억 원을 질권자인 피고 은행에, 나머지 2억4000여만 원을 피보험자인 피고 회사에 지급하였다. 피고 은행은 위 15억 원 중 피담보채권액 상당인 10억7500만 원은 피고 회사에 대한 대출금채권의 변제에 충당하고 나머지 4억2500만 원은 곧바로 피고 회사에 반환하였다.

원심은 원고의 피고 은행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전부 배척하였고, 대법원도 이를 지지하였다.

2. 채권질권의 행사와 부당이득
이 사건에서 금전채권의 질권자인 피고 은행이 자기채권의 범위 내에서 제3채무자인 원고에게 직접청구권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경우 제3채무자인 원고가 질권자인 피고 은행에 위 범위 내에서 금전을 지급하면 그 지급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제3채무자인 원고가 질권설정자인 피고 회사에 지급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질권설정자인 피고 회사가 질권자인 피고 은행에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질권설정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과 질권자의 질권설정자에 대한 채권이 소멸하는 이중의 효과가 발생한다.

이때 입질채권, 즉 질권설정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채권의 발생원인인 계약관계에 무효 등의 흠이 있어 입질채권이 부존재하는 경우, 제3채무자가 질권자를 상대로 직접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이 판결은 이를 부정한다. 이는 이른바 단축급부 사안, 즉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계약 상대방의 지시 등으로 계약 상대방과 또 다른 계약관계에 있는 제3자에게 직접 급부한 사안에서 제3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부정한 것(대판 2003.12.26. 2001다46730)과 동일한 맥락이다.

3. 제3채무자의 질권자에 대한 초과 지급과 부당이득반환의 의무자
이 판결은 여기에서 나아가 질권자가 제3채무자로부터 자기채권을 초과하여 금전을 지급받은 경우, 제3채무자가 질권자를 상대로 초과 지급 부분에 관하여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있고, 다만 질권자가 초과 지급 부분을 질권설정자에게 그대로 반환한 경우에는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질권자가 자기채권의 범위에서 제3채무자에게 직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므로 이를 초과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외로서 질권자가 초과 지급 부분을 질권설정자에게 그대로 반환한 경우에 제3채무자의 질권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문제된다. 질권자가 자기채권을 초과하여 금전을 지급받은 순간에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볼 수 있고, 그 직후 질권자가 초과부분을 질권설정자에게 반환하더라도 이것이 제3채무자와 질권자 사이의 부당이득의 성립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판결은 이러한 경우에 질권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이유는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질권자가 초과 지급부분을 질권설정자에게 지급하는 것에 대하여 제3채무자가 지시 또는 동의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질권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가 부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위와 같은 지시 또는 동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질권자는 여전히 제3채무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질 수 있을 것이다.

Ⅹ. 저작인격권과 민법상 인격권의 관계

1. 쟁점과 판결 요지
대판 2015.8.27. 2012다204587에서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과 민법상 인격권의 관계가 문제되었다.
원고는 2006. 3.경 피고(대한민국)로부터 의뢰받아 2007. 5.경 도라산역사 내 벽면 및 기둥들에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하여 14점의 벽화를 제작·설치하였다. 이 벽화는 반복·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도라산역 내에 ‘첩부벽화’의 형태로 설치되어 벽체에서 분리하기도 쉽지 않은 미술저작물이다. 그런데 피고는 작품 설치일로부터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2010. 2. 3. 벽화의 교체를 추진하는 계획안을 세워 같은 해 5. 6. 이 사건 벽화를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벽화에 물을 뿌려 원래의 규격보다 작게 자르고 벽체에서 분리하는 방법으로 철거 작업을 함으로써 같은 달 18일 그 철거가 완료되고 벽화가 크게 손상되었다. 대법원은 피고의 원고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저작자의 인격권에 관한 판단부분이다. 원심은 이 사건 벽화 폐기행위에 대하여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지 않았지만 이와 별도로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의 침해는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피고는 상고이유에서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평가된 행위는 당연히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로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배척하였다.

2. 민법에 의한 저작자의 인격 보호
저작권법은 공표권(제11조), 성명표시권(제12조), 동일성유지권(제13조) 등의 저작인격권에 관한 개별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위와 같은 규정으로 이 사건 저작물 폐기 행위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이 판결은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가 위와 같은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저작물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서 폐기 행위로 인하여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위와 같은 동일성유지권 침해의 성립 여부와는 별개로 저작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라고 한다.

저작권법에서 정한 저작인격권에 관한 규정들이 있다고 해서 민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인격권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저작물의 단순한 변경을 넘어서 폐기 행위로 저작자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민법 또는 국가배상법에 의한 배상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판결은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일반대중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얻는 등 예술작품의 종류와 성격 등에 따라서는 저작자로서도 자신의 예술작품이 공공장소에 전시·보존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익은 저작권법에서 정하고 있는 저작권 개념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러한 이익을 보호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런데도 이 판결은 예술작품의 전시 또는 보존에 관한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저작자의 이익 또는 권리가 인격권을 매개로 하여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저작물 폐기의 위법성 판단
이 판결은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법령 위반’ 즉 위법성에 관하여 “국가 소속 공무원의 해당 저작물의 폐기 행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고 저작자로서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 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로서 위법하다”고 한다. 이러한 판단을 할 때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이용의 목적 및 형태, 저작물 설치 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정도, 국가가 이를 선정하여 설치하게 된 경위, 폐기의 이유와 폐기 결정에 이른 과정 및 폐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피고가 벽화를 영구보존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설치 후 단기간에 철거할 경우에는 적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피고가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원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 사건 벽화를 철거 후 소각한데다가 그 후의 조치도 부적절했다는 점에서 위법성을 긍정할 수 있다.

ⅩⅠ. 맺음말

지난해에 나온 판결들을 개관하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대법원이 주요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양한 논증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법언, 국민의 법의식, 비교법적 자료, 대법원판결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는 대법원판결의 실질적인 형성과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형사 성공보수약정의 효력에 관한 판결에서는 법률의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데도 과감하게 그 무효를 선언함으로써 대법원이 판결을 통하여 정책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른바 사법적극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에 나온 대법원의 몇몇 주요 판결과도 일맥상통한다. 대법원 판결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할지라도 이러한 판결이 사법의 모습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사법소극주의가 항상 고수해야 할 원칙이 아닌 것처럼 사법적극주의가 무조건 옳은 방향인 것도 아니다. 결국 어떤 사건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실존의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

셋째, 민법 안에서 규정들 사이의 관계가 문제되거나, 민법과 다른 법률의 관계가 문제되는 국면에서 주요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가령 행정법규와 사법적 청구권의 관계, 채무불이행책임과 매도인의 담보책임의 관계, 민법상 인격권과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의 관계가 문제된 판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 사이에 있는 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항상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사고가 움트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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