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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2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④ 민법(하)

김재형 교수(서울대 법대)

Ⅶ. 채권양도의 통지와 하자담보추급권의 제척기간 준수

1. 대판(전) 2012. 3. 22, 2010다28840는 채권양도 통지가 하자담보추급권의 제척기간 준수사유가 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채권양도의 통지는 그 양도인이 채권이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채무자에게 알리는 것에 그치는 행위이므로, 그것만으로 제척기간의 준수에 필요한 권리의 재판외 행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한다. "따라서 집합건물인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스스로 하자담보추급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짐을 전제로 하여 직접 아파트의 분양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그 소송 계속 중에 정당한 권리자인 구분소유자들로부터 그 손해배상채권을 양도받고 분양자에게 그 통지가 마쳐진 후 그에 따라 소를 변경한 경우에는, 그 채권양도통지에 채권양도의 사실을 알리는 것 외에 그 이행을 청구하는 뜻이 별도로 덧붙여지거나 그 밖에 구분소유자들이 재판외에서 그 권리를 행사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손해배상청구권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위와 같이 소를 변경한 시점에 비로소 행사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아파트의 구분소유자들이 이 사건 아파트에 관한 하자담보추급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을 단순히 원고에게 양도하고 이를 피고에게 통지하였다는 것만으로는 그 채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채권양도통지에 이행청구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재판 외에서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관하여 심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반대의견은 "제척기간의 준수사유가 되는 행위의 태양은 그 성질상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보다는 넓게 새겨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즉 제척기간의 대상인 권리가 채권인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하여 직접 이행청구를 하는 경우뿐 아니라 채권의 다른 권능을 행사하는 등으로 그 채권 내지 청구권을 행사·실현하려는 행위를 하거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객관적 행위 태양이 존재하면 제척기간을 준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다"고 한다.
2. 채권양도 통지만으로 제척기간 준수에 필요한 '권리의 재판 외 행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종전에 채권양도의 통지를 한 때에 소멸시효가 중단된다고 본 판결도 있으나(대판 2009. 2. 26, 2007다83908), 양수금채권을 청구한 때에 소멸시효가 중단되거나 제척기간에서 말하는 권리행사가 있다고 인정한 판결들이 많았다(대판 2008. 12. 11, 2008다12439 등).
먼저 제척기간의 준수사유가 되는 행위의 태양을 그 성질상 소멸시효의 중단사유보다 넓게 새겨야 하는지 문제된다. 그러나 제척기간의 준수사유는 일반적으로 권리행사인데, 이를 소멸시효 중단사유보다 넓게 해석해야 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제척기간의 목적은 권리관계를 조속하게 확정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소멸시효 중단사유 중에는 채무의 승인(제168조 제3호)과 같이 제척기간 준수사유인 권리의 행사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권리의 행사와 관련해서는 소멸시효 중단사유보다 좀 더 엄격하게 제척기간 준수사유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척기간 준수사유인 권리의 행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제된다. 소멸시효의 중단사유인 이행의 청구가 권리의 행사에 해당하는데, 권리자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채무자에게 알리는 것은 이행을 청구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채권자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이행할 것을 청구하여야 비로소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판결에서 채권양도의 통지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 문제된다. 반대의견은 채권양도의 통지는 채무자에 대하여 권리의 존재와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채권양도의 통지는 채권자가 채권을 양도하고 채무자 또는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추기 위한 요건이다. 따라서 채권양도의 통지는 채권의 귀속에 관한 것이지 채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를 동산이나 부동산에 대한 물권의 양도와 비교해보면, 물권을 양도하고 등기나 점유를 이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채권양도의 통지는 채권의 귀속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채무자에게 통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을 행사하는 것과 중첩되는 측면이 있다. 이 지점에서 반대의견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채권자가 채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으려면 채권양도의 통지 이외에(또는 그 안에) 이행을 청구하려는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채권양도의 경우에는 양도인이 채권양도의 통지를 한 후 양수인이 그 이행을 청구하여야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고 단순히 양도인이 채권양도의 통지를 했다는 것만으로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3. 그런데 이 사건에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하자담보추급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짐을 전제로 분양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그 소송 계속 중 구분소유자들에게서 손해배상청구권을 양도받고 양도통지가 이루어진 후 양수금청구로 소를 변경하였다. 이러한 경우에 채권양도의 통지에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사정이 나타나 있고 조만간 이행을 청구할 것이라는 것을 채무자가 알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견은 채권양도의 통지에 이행청구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채권양도의 통지에 시효중단을 위한 최고의 효력이나 제척기간 준수의 효력이 있다고 하려면 그 통지에 이행청구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심리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당사자들은 이 판결의 결론에 따라 채권양도의 통지를 하고 제척기간이나 소멸시효기간을 준수하기 위한 권리행사를 하게 될 것이다.
반대의견은 이 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중시한 반면, 다수의견은 법적 안정성을 중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멸시효기간이나 제척기간의 준수여부는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채권양도 통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게 결론을 내린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있을 것이다.

Ⅷ. 공동수급체의 법적 성격과 그 채권의 귀속형태

1.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의 법적 성격이 무엇인지, 공동수급체의 구성원들이 도급인에 대하여 출자지분 비율에 따라 공사대금채권을 직접 취득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판(전) 2012. 5. 17, 2009다105406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판결은 먼저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의 법적 성질을 종래의 판례와 마찬가지로 민법상의 조합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수급체가 공사를 시행함으로 인하여 도급인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원칙적으로 공동수급체의 구성원에게 합유적으로 귀속된다고 한다. 그 결과 위 채권에 관해서는 조합채권에 관한 법리가 적용된다.
그런데 공사도급계약에서 공동수급체의 구성원 각자에게 그 지분비율에 따라 채권을 귀속시키는 것이 허용되는지 문제된다. 이 판결은 공사도급계약의 내용으로 '공사도급계약과 관련하여 도급인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이 공동수급체의 구성원 각자에게 그 지분비율에 따라 구분하여 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 예로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와 도급인이 공사도급계약에서 발생한 채권과 관련하여 공동수급체가 아닌 개별 구성원으로 하여금 그 지분비율에 따라 직접 도급인에 대하여 권리를 취득하게 하는 약정을 하는 경우를 든다. 그리고 위와 같은 약정은 명시적으로는 물론 묵시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사건 공동수급체의 구성원들은 적어도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는 각 지분비율에 따라 각자에게 구분하여 귀속하는 공사대금채권을 취득하였다는 점에서 대법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그 이유에 관해서는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으로 나누어지는데, 이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는다.
2.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는 2인 이상이 서로 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므로, 민법상 조합에 해당한다. 조합의 법적 성격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우리 민법은 조합을 계약의 일종으로 규율하고 있다. 조합계약에도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그 구성원들은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조합계약의 내용을 정할 수 있다[민법주해(16)·33면 김재형 집필]. 따라서 조합에 관한 민법규정은 대부분 임의규정으로서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의사표시가 있으면 그 의사표시가 민법 규정에 우선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공동이행방식의 공동수급체를 조합계약으로 보면서 공사도급계약에서 공동수급체의 구성원 각자 그 지분비율에 따라 채권의 귀속을 정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본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위와 같은 약정을 넓게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공동수급체와 도급인 사이에서 공동수급체의 개별 구성원으로 하여금 공사대금채권에 관하여 그 출자지분의 비율에 따라 직접 도급인에 대하여 권리를 취득하게 하는 묵시적인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Ⅸ. 금융실명제 하에서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관계

1. 대판 2012. 2. 23, 2011다86720(공 2012, 515)에서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이라 한다) 시행 이후 금융기관이 출연자에게 예금을 지급한 경우에 예금명의자가 출연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다루고 있다. 대법원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예금주 명의의 신탁이 이루어진 다음 출연자가 사망함에 따라 금융기관이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 중 전부 또는 일부에게 예금채권을 유효하게 변제하였다면, 그 변제된 예금은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명의신탁약정상 예금명의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에게 귀속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 예금명의자는 예금을 수령한 공동상속인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대로 예금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명의신탁관계는 반드시 신탁자와 수탁자 간의 명시적 계약에 의하여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묵시적 합의에 의하여서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고 판결하였다.
이 사건에서 원심판결은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인용하면서 그 근거로 투자신탁계약의 당사자가 원고들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원심판결이 이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한 부분은 대판(전) 2009. 3. 19, 2008다45828에서 금융실명법에 의하여 예금명의자에 대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그의 명의로 예금계약이 이루어진 사안에서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 사이에서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출연자 등을 예금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선언한 법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투자신탁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있다. 예금주 명의의 신탁이 이루어진 다음 출연자가 사망함에 따라 금융기관이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 중 전부 또는 일부에게 예금채권을 유효하게 변제하였다면, 그 변제된 예금은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명의신탁약정상 예금명의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에게 귀속되었다고 한다.
2. 이 판결에서 예금채권이 유효하게 변제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금융기관이 출연자에게 예금채권을 유효하게 변제하는 경우는 예금주가 출연자인 경우도 있고, 출연자가 예금주는 아니지만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기관이 예금주에게 변제한 예금이 출연자와 예금명의자의 명의신탁약정상 예금명의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에게 귀속되었다고 판단한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 사건에서 예금명의자가 이 사건 예금의 존재를 알았는지 여부, 나아가 출연자와 예금명의자 사이에 명의신탁약정이 있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데도, 대법원은 출연자와 예금명의자 사이에 묵시적으로나마 명의신탁약정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편 출연자와 예금명의자 사이에 명의신탁약정을 인정하는 것은 예금명의자와 금융기관 사이에서는 그 예금이 예금명의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금이 예금명의자와 금융기관 사이에서는 예금명의자에게 귀속하고 있고 출연자와 예금명의자 사이에서는 출연자의 공동상속인들에게 귀속된다는 이른바 예금의 상대적 귀속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예금은 예금명의자에게 귀속하고 있고, 출연자 또는 그 상속인은 예금명의자에게 계약관계나 그 밖의 법률관계에서 나오는 권리만을 보유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세 경우로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출연자가 예금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출연자에게 예금을 반환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예금명의자가 예금주라면 금융기관은 예금명의자에게 예금을 반환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금융기관이 출연자에게 예금을 반환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유효한 변제가 아니기 때문에, 예금명의자는 여전히 금융기관을 상대로 예금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셋째, 금융기관이 출연자에게 예금을 반환한 것이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가 되는 경우에는 금융기관의 예금반환채무는 소멸한다. 이 경우 예금명의자와 출연자 사이의 법률관계는 그들 사이의 내부관계에 기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이 판결에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 사이에 명의신탁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약정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그들 사이에 명의신탁약정이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예금명의자에 대한 관계에서 출연자에게 예금이 귀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Ⅹ.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

1. 불법행위책임에서 어떠한 경우에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할 것인지 문제된 판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대판 2012. 4. 26, 2010다8709에서는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 특히 방조에 관하여 매우 상세하게 판단하고 있다.
민법 제760조 제3항은 교사자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본다고 규정하여 교사자나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자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방조라 함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작위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작위의무 있는 자가 그것을 방지하여야 할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로 인하여 불법행위자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도 포함한다(대판 2007. 6. 14, 2005다32999).
2. 작위의무가 발생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문제된다. 방조에 관해서는 형법에서 많이 다루어졌는데, 이 판결은 기본적으로 형법상의 방조에 관한 법리를 따르고 있다. 민법상 불법행위는 형법과 달리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므로 원칙적으로 과실을 고의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민법의 해석으로서는 불법행위의 방조는 과실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대판 1998. 12. 23, 98다31264). 그러나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이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법적인 작위의무가 인정된다는 점은 형법과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이 판결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의 작위의무의 내용과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인정되는 경우로는 첫째, 혈연적인 결합관계나 계약관계 등으로 인한 특별한 신뢰관계가 존재하여 상대방의 법익을 보호하고 그에 대한 침해를 방지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둘째,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요인을 지배·관리하고 있거나 타인의 행위를 관리·감독할 지위에 있어 개별적·구체적 사정 하에서 그 위험요인이나 타인의 행위로 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이 판결은 작위의무를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작위의무의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부작위에 의한 불법행위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이 판결은 작위의무의 판단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ⅩⅠ.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

1. 개인정보의 유출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민사상 구제수단으로는 금지청구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을 들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하여 인격권에 기한 금지청구권이 쉽게 인정될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것인지 문제된다.
대판 2012. 12. 26, 2011다59834, 59858, 59841에서는 지에스칼텍스 주식회사가 고객에 관한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유출함으로써 관리업체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대법원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그 피용자가 해당 개인정보의 정보주체의 의사에 반하여 유출한 경우, 그로 인하여 그 정보주체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① 유출된 개인정보의 종류와 성격이 무엇인지 ② 개인정보의 유출로 정보주체를 식별할 가능성이 발생하였는지 ③ 제3자가 유출된 개인정보를 열람하였는지 또는 제3자의 열람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제3자의 열람 가능성이 있었거나 앞으로 그 열람 가능성이 있는지 ④ 유출된 개인정보가 어느 범위까지 확산되었는지 ⑤ 개인정보의 유출로 추가적인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발생하였는지 ⑥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가 개인정보를 관리해온 실태와 개인정보가 유출된 구체적인 경위는 어떠한지 ⑦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피해의 발생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가 취하여졌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 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원문자는 필자가 편의상 부가한 것임)라고 판결하였다.
2. 이 판결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가 수집한 개인정보를 그 피용자가 해당 개인정보의 정보주체의 의사에 반하여 유출한 경우, 그로 인하여 그 정보주체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7개의 고려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제시된 요소를 보면, 가해자의 과실에 관한 사항도 있고,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의 발생이나 손해액에 관한 사항도 있다.
위 고려요소를 중심으로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의 발생을 긍정할 수 있는 요소로는 ① 유출된 정보가 개인정보로서 주민등록번호와 같이 함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정보에 해당한다는 점 ② 이와 같은 개인정보로 정보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점 ③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가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하고 그 피용자가 개인정보를 유출한 점 ④ 기자나 피디 등 언론관계자에게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데, 제3자에게 개인정보가 유출되었고 제3자가 열람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반하여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의 발생을 부정할 수 있는 요소로는 ① 앞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를 열람할 가능성이 없어진 점 ② 개인정보가 언론관계자 등 한정된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유출되었을 뿐이고 널리 확산되지 않은 점 ③ 개인정보의 유출로 추가적인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발생하지 않은 점 ④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피해의 발생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 점을 들 수 있다.
3. 대법원 판결이 인용하고 있는 원심판결은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 사건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하여 원고들에게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어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위자료로 배상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읽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만으로는 정신적 손해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 손해가 경미하여 배상할 만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개인정보가 한정된 범위에서 유출된 경우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손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이 찍힌 것만으로도 정신적 손해를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았는데도 국가기관이 그 직무범위를 벗어나 비밀리에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수집, 관리한 것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대판 1998.7.24, 96다42789).
이번 지에스칼텍스 사건에서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정보가 이메일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 자체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숫자에 성별, 출생지 등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미국에서 통용되는 사회보장번호에 비하여 훨씬 민감한 정보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유통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매우 관대한 편이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법 등 관련 법령의 시행 이후에 다행스럽게도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억제 또는 금지하려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데, 이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에 관한 일반관념과 이에 대한 법적 대응도 차차 바뀌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 개인정보가 유출된 후에 피고 등이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를 막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였고, 이와 같은 조치로 인하여 이 사건 개인정보의 유출이 확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의 경우에 손해억지의무 또는 손해경감의무를 인정하고 이를 이행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감면할 수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이 문제를 과실상계의 문제로 해결하고 있으나, 민법을 개정하여 이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사건과 같은 경우에도 손해 자체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손해억지의무 또는 손해경감의무를 이행하였다고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감면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민법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쉽게 인정하고 있는데다가 위자료의 산정단계에서도 법원의 폭넓은 재량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의 유출에 대해서 정신적 손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정합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손해배상법에서 손해억지의무 또는 손해경감의무를 인정하는 방법이 손해의 발생여부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대법원 판결은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면서 고려요소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법을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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