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15)어음수표법

장재형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전자어음 사용의 강제, 대체결제제도의 확충 등에 따른 어음·수표 사용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완전유가증권으로서의 어음·수표의 기본 법리는 여전히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회사가 단기자금 조달을 위해 사채보다 선호하는 기업어음(CP)은 자본시장육성법상 채무증권으로 규율을 받는데, 그 본질은 융통어음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2010년에 선고된 어음·수표 판례도 백지어음, 상환증권성, 소구권의 보전, 부정수표 등 어음·수표자체의 법리뿐만 아니라 소멸시효, 기존채무와의 관련, 손해배상, 강제집행 등 다른 분야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

Ⅰ. 어 음

1. 미보충 백지어음의 어음금청구의 소의 시효중단 효력(대법원 2010. 5.20. 선고 2009다48312 전원합의체 판결)

가. 사실관계

원고가 지급지 및 지급을 받을 자 부분이 각 백지로 된 약속어음을 소지하고 있다가 그 지급기일로부터 3 년이 경과한 후에야 위 각 백지 부분을 보충하여 발행인인 피고에게 지급제시한 것이나, 원고가 위 약속어음의 소멸시효기간 완성 전에 이미 그 어음금 청구의 소를 제기한 사안.

나. 판결요지

만기는 기재되어 있으나 지급지, 지급을 받을 자 등 어음요건이 백지인 약속어음의 소지인이 그 백지 부분을 보충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음금을 청구하는 것은 어음상의 청구권에 관하여 잠자는 자가 아님을 객관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소멸시효는 중단된다. 이 경우 백지보충권은 별개 독립하여 시효 소멸하지 않고 어음상 청구권이 존속하는 한 행사할 수 있다.

다. 분 석

1) 백지어음 일반
백지어음이란 어음행위자가 후일 어음소지인으로 하여금 어음요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충시킬 의사로서 일부러 기재하지 않고 어음용지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 어음행위를 한 미완성의 어음으로서 어음요건 중 일부를 백지로 하여 어음행위를 한 경우 백지어음으로 추정한다(대법원 1976. 3. 9. 선고 75다984 판결). 백지어음에 의한 지급제시는 적법하지 않아 배서인등에 대한 소구권도 발생하지 않고(동 1992.10.27. 선고 91다24724 판결), 발행인에 대하여 지체책임도 물을 수 없다(동 1992. 3.10. 91다28313 판결). 어음금 청구 소송의 경우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백지 보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변제기가 도래하지 않아 기각될 수밖에 없고(동 1994. 9. 9. 선고 94다12098, 94다12104 판결), 소송의 경우 법원은 당사자에게 백지어음인지 여부, 보충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석명을 구하여 변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동 1993.12.7. 선고 93다25165 판결). 백지 미보충이라는 이유로 패소한 어음소지인(원고)이 패소판결 확정 후에 백지를 보충하여 다시 어음금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전소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되지 않는다(동 2008.11.27. 선고 2008다59230 판결).
한편 백지보충권 남용의 경우 발행인은 소지인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어음을 취득하지 않은 한 이를 대항하지 못하고(어음법 제10조, 제77조 제2항) 그 주장·입증 책임은 발행인이 진다(동 1999.2.9. 선고 98다37736 판결).

2) 미보충 백지어음의 청구와 시효 중단 여부
종전에 이와 관련하여 전면 부정한 대법원 1962.12.20. 선고 62다680 판결과 수취인 또는 확정일출급어음의 발행일 등 어음상의 권리의무의 내용과 관계없는 사항의 경우에는 인정한 동 1962. 1.31. 61다110,111 판결이 상반되게 병존하고 있었는데, 본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이를 확실히 하여 위 62다680 판결을 변경하였다.
판결의 논지는 약속어음 발행인에 대한 어음상 청구권은 만기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만기가 기재된 백지어음은 일반적인 조건부 권리와는 달리 미완성어음인 상태에서도 소멸시효가 진행되므로 이에 대응하여 어음소지인은 미보충 상태에서 발행인을 상대로 시효진행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또한 언제라도 보충하기만 하면 어음이 완성되어 완전한 어음상 청구권으로 성립하며, 미보충 상태의 어음금청구라도 발행인이 채무 승인·지급하여 어음 법률관계를 소멸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백지 미보충 상태로 어음금을 청구하더라도, 이는 완성될 어음에 기한 청구와 동일한 경제적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로서 어음상 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보충 약속어음을 재판상 청구한 경우 더 이상 발행인을 소멸시효로 보호할 필요성이 감소되었으므로 이를 어음상 청구권에 관한 객관적 권리행사로 인정하고, 또한 소멸시효의 중단을 위한 재판상 청구에는 권리행사의 요건을 완비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완성어음의 재판상 청구의 경우 소멸시효 중단에 어음의 지급 제시나 소지를 요구하지 않으며(같은 취지 日最判 1964. 11. 24. 민집 18권 9호 1952면), 채권양도 통지 전의 채권양수인의 채무자에 대한 재판상 청구에도 조건미성취권리의 처분 등에 관한 민법 제149조의 규정을 준용하여 소멸시효 중단을 인정한 판례(동 2004. 4.28. 선고 2004다3673,380 판결, 동 2005.11.10. 선고 2005다41818 판결)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타당한 결론이라 하겠다.

3) 어음상의 권리 행사와 백지보충권의 시효 중단
백지어음·수표의 보충권의 법적 성질이 무엇인가에 관하여는 형성권설, 대리권설, 수권설 내지 법적지위설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형성권설이 우리나라의 통설이다.
보충권의 행사기간은 보충권수여 계약에서 보충의 시기를 한정한 때에는 그 기한 내에 이를 행사하여야 하는데, 보충권 행사의 시기에 관하여 약정이 없는 때에는 어음의 경우 먼저 만기의 기재가 있으면 어음법에 따라 각 소정 기한 내에 보충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기가 백지인 때에는(발행일 백지인 일람출급어음이나 수표의 경우도 동일) 만기에 의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보충권이 시효로 소멸하기 전에 이를 보충하여야 하므로 이 경우 보충권의 시효기간과 그 기산점이 중요하다. 판례는 만기백지어음 보충권의 소멸시효기간은 그 원인관계에 따라 백지보충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로부터 3년(기산점은 대법원 1997. 5. 28. 선고 96다25050 판결 ; 시효기간은 동 2002. 2. 22. 선고 2001다71507 판결), 발행일 백지수표 보충권의 소멸시효기간은 6개월(동 2001. 10. 23. 선고 99다 64018 판결)로 보고 있다.
따라서 만기 이외의 요건이 백지인 경우에 있어서 백지보충권은 어음상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므로 어음상의 권리와 독자적으로 소멸시효를 논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어음상의 권리가 시효중단된 경우에는 백지보충권에도 시효중단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것이다.
한편 이와는 구별하여야 하는 것으로 백지보충의 효력 발생 시기의 문제가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백지어음 행위시설(소급설)과 보충시설(불소급설)이 대립하고 있으나 판례는 불소급설의 입장으로 보인다(동 1965.8.31 선고 65다1217 판결).

2. 기존채무를 위한 어음의 교부와 채무자의 동시이행항변, 어음 소지인의 소구권 보전의무 해태(대법원 2010.7.29. 선고 2009다69692 판결)

가. 사실관계

피고는 원고에게 원고가 피고 운영의 A 연구소에 투자하였던 돈을 반환하기로 약정하고, 이에 피고가 위 약정금채무와 관련하여 발행인 B 석유(주), 제1배서인 재단법인 C 직업전문학교로 된 약속어음에 제2배서인으로 배서하여 이를 원고에게 교부하였는데, 그 뒤 원고가 위 어음을 제때에 지급 제시하였으나 지급거절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어음시효완성 후에 피고를 상대로 약정금채무의 지급을 청구한 사안.

나. 판결요지

[1] 기존채무의 지급을 위하여 교부된 어음상 권리가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여 채무자에게 이중지급의 위험이 없고 채무자가 다른 어음상 채무자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는 경우에는 채권자의 원인채권 행사에 대하여 어음상환의 동시이행항변을 할 수 없다.

[2] 채권자가 약속어음을 적법하게 지급제시하였으나 그 후 어음상 권리의 보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소멸시효 완성된 경우, 어음을 반환받은 채무자가 손해배상채권으로써 상계하기 위해서는 어음상 의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무자력이 되고 원인채무자도 현재 무자력이어서 어느 것으로부터도 만족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또한 어음소지인이 어음 지급기일 당시 장차 어음상 의무자와 원인채무자가 무자력하게 될 것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다. 분 석

1) 어음·수표관계가 원인관계에 미치는 영향
채무자가 기존 채무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어음이나 수표를 교부하는 경우 당사자의 의사와 목적은 기존채무의 '지급을 위하여'(zahlungshalber), '기존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sicherungshalber), '지급을 갈음하여'(an Zahlungs statt)의 3가지 경우이다. 그 구별 실익은 兩채권의 병존여부, 이행청구시 행사의 순서와 이행지체시기로서(어음·수표를 먼저 행사하여야 하는 지 여부와 이에 따라 이행지체에 이르게 된다), 어음수수 당사자간에 아무런 특약이 없으면 '지급을 위하여' 또는 '기존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어음이 수수되었다고 추정되고 어느 경우에나 兩채권이 병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구별 기준은 판례와 통설에 의하면 제3자가 발행한 어음을 배서·교부하는 경우에는 전자로 추정되고, 채무자가 직접 어음을 발행하여 채권자에게 교부하는 경우에는 후자로 추정한다.
기존채무의 지급을 위하여 어음을 교부하는 경우 兩채무는 병존하고, 어느 한 채무를 이행함으로써 양자가 함께 소멸하며, 어음채무가 시효로 소멸하더라도 원인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1976.11.23. 선고 76다1391 판결). 채권자가 어음을 양도하여 얻은 대가가 상실될 염려가 없게 되었을 때 기존채권은 소멸한다. 兩채권의 행사 순서는 당사자간의 특약이 없으면 어음상의 권리를 먼저 행사하여야 하고, 이로써 만족을 얻지 못할 때에 비로소 기존채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동 1995.10.13. 선고 93다12213 판결). 따라서 채권자가 원인채권을 먼저 행사하는 때에는 채무자는 어음채권의 선행사를 요구하면서 변제를 거절할 수 있고, 어음의 지급제시가 없는 한 채무자는 원인채무에 대한 이행지체가 되지 않고 채권자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기존채무의 담보를 위하여 어음을 교부하는 경우 兩채무가 병존하므로 채권자는 兩채권 중 어느 것이나 먼저 행사할 수 있다(동 1999.6.11. 선고 99다16378 판결). 그러나 기존채권을 먼저 행사하는 경우에는 어음을 반환하여야 한다(동 1992.12.22. 선고 92다8712 판결). 기존채권의 소멸은 어음채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동 1996.11.8. 선고 95다25060 판결). 다만 어음이 유통되어 제3자가 이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기존채무의 소멸은 인적항변사유가 될 뿐이다(동 1996.6.11. 선고 95다16378 판결). 반대로 어음·수표채권의 소멸은 기존 채권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함이 원칙이다.

2) 원인채권 행사시 어음의 반환 요부
어음의 상환증권성에 관한 어음법 제39조의 규정은 어디까지나 어음의 지급인이 어음상 권리자에게 어음금을 지급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고, 지급을 위한 경우이든 지급을 담보하기 위한 경우이든 기존원인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 대하여 채무자가 어음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지, 요구할 수 있다면 기존원인채권의 이행과 어음의 반환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여부가 문제이다. 이론적으로 반환불요설, 어음·수표상 권리행사필요설, 반환필요설(동시이행항변설)이 있으나, 동시이행항변설이 통설이고, 판례도 동 1985.11.26. 선고 85다카848 판결에서 어음의 반환과 기존채무의 이행이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고 판시하여 지급거절권의 성격을 명백히 하였으며, 동 1993.11.9. 선고 93다11203,11210 판결에서는 더 나아가 어음반환과의 동시이행항변권의 인정근거는 채무자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원인채무의 이행으로 인한 이중지급의 위험을 면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고, 서로 민법 제536조에 정하는 쌍무계약상의 채권채무관계나 그와 유사한 대가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니어서 쌍무계약에서 말하는 동시이행항변권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명백히 하였으며 본 판결도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동시이행이 부인되는 사례로서는 이른바 기한후배서가 이루어진 경우, 어음채권이 시효소멸한 경우, 어음이 상실된 경우, 채무자가 이미 어음금을 지급하는 등으로 어음을 회수하고 있는 경우 등이 있다.

3) 어음 소지인의 소구권보존의무와 해태
어음을 소지한 채권자는 반드시 만기에 지급제시를 하여 소구권보전절차를 취하여야 한다(동 1995.10.13. 선고 93다12213 판결; 그 근거로서 '형평의 관념'을 든다). 이 의무를 위반하여 소구권이 보전되지 아니한 경우(어음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때에도 마찬가지) 약속어음의 주채무자인 발행인, 소구의무자인 배서인 등에 대한 어음상 권리나 원인채무자(발행인 또는 배서인과 동일인일 수도 있고 어음상 의무자 아닌 제3자일 수도 있다)에 대한 자신의 원인채권을 행사하여 자기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아직 손해는 발생하지 아니한다(동 1996.11.8. 선고 95다25060 판결). 그러나 어음상 의무자와 원인채무자가 무자력이어서 어음을 반환 받더라도 손해를 입는 경우에는 이는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어음소지인이 어음 지급기일 당시 장차 어음상 의무자와 원인채무자의 자력이 악화될 것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그 배상채권으로 상계할 수 있다(동1996.11.8. 선고 95다25060 판결).
학설은 이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독일, 일본의 학설과 같이 이 경우 채권자지체 중의 이행불능으로 보아 어음채권자는 소구권보전의무불이행으로 원인채권을 상실하되 이득상환청구권을 가진다는 주장이 있으나, 우리 판례에 의하면 원인관계에 있는 채권의 '지급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음이 발행된 경우에는 어음채권이 시효로 인하여 소멸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고(동 1993.10.22. 선고 93다26991 판결), 또 이득상환청구권이 발생하려면 모든 어음상 또는 민법상의 채무자에 대하여 각 권리가 소멸되었음을 요한다고 하므로(동 1970.3.10. 선고 69다1370 판결) 원인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이득상환청구권이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기존채무의 지급에 갈음하여 이루어진 어음의 교부(대법원 2010.12.23. 선고 2010다44019 판결)

가. 사실관계

소외 1(당초 원고의 대표이사)이 원고 회사의 경영권 및 주식 양도대금 중 45억 원의 수령조로 소외 2(원고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로부터 동인 경영의 다른 회사 발행의 45억 원 상당의 약속어음을 교부받는 한편, 피고 회사(나중에 소외 1이 대표이사로 취임)로 하여금 원고로부터 식품 제조 공장을 매수하게 하면서 그 매매대금 중 계약금 및 중도금 45억 원의 지급조로 위 약속어음을 도로 원고 회사에게 교부하고 바로 그 공장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받은 사안.

나. 판결요지

어음상의 주채무자가 원인관계상의 채무자와 동일하지 아니한 때에는 제3자인 어음상의 주채무자에 의한 지급이 예정되어 있어'지급을 위하여' 교부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급에 갈음하여'교부된 것으로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추정은 깨진다.

다. 분 석

일반적으로 기존 채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수표가 아니고 제3자가 발행한 어음을 교부하는 경우'지급을 위한'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제3자방 어음 교부의 경우에도 사실관계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지급에 갈음'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지로써'지급을 위한'것으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판결로서 위 사안을 상세히 뜯어보면 그 구체적 타당성에 있어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이다.
당사자의 특약에 의하여 '지급을 갈음하여' 어음이 수수된 경우 기존채권은 소멸하고, 특약이 없는 한 기존채권을 위하여 설정된 담보권·보증 등은 그 효력을 잃게 되며, 채권자는 어음에 의하지 않고는 그 권리 행사가 불가능하다. 그 이론구성에 관하여 종래 경개설, 대물변제설, 절충설의 대립이 있었으나 대물변제설이 타당하다.

4. 소멸시효완성 어음채권의 강제집행과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대법원 2010.5.13. 선고 2010다6345 판결)

가. 사실관계

원인채권인 약정금 채권의 변제기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소가 제기되어 일응 소 제기 전에 이미 시효 경과로 소멸하였으나, 피고와 소외인이 위 약정금채권의 담보조로 원고에게 약속어음 공정증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었고, 원고는 위 어음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도과한 뒤에 위 약속어음 공정증서 정본에 기하여 피고와 소외인의 유체동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하여 그 매각대금을 교부받아 일부변제 받은 사안.

나. 판결요지

[1] 시효 소멸된 어음채권을 청구채권으로 채무자 재산을 압류하더라도 그 원인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된다고 볼 수 없다.

[2] 이미 소멸시효 완성된 어음채권을 원인으로 채무자의 유체동산에 강제집행하여 그 매각대금이 채권자에게 교부되어 채무 일부변제에 충당될 때까지 채무자가 아무런 이의를 진술하지 아니하였다면, 채무자가 강제집행 절차의 진행을 알지 못하였다는 등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음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때부터 그 원인채권의 소멸시효 기간도 다시 진행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유체동산 매각대금이 교부되어 일부변제가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다. 분 석

어음채권과 원인채권의 관계에 대하여 종래 기존채무의 담보를 위하여 어음을 교부하는 경우 양 채무가 병존하고 채권자는 어음상의 권리와 기존채권 중 어느 것이나 먼저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원인채권에 기하여 청구를 한 것만으로는 어음채권 그 자체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어음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지 못하나(대법원 1994.12.2. 선고 93다59922 판결), 채권자가 어음채권에 기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등 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원인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효력이 있다(동 1999.6.11. 선고 99다16378 판결). 그러나 이미 어음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는 채권이 소멸되고 시효중단을 인정할 여지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 경우 어음채권 내지는 원인채권을 실현하기 위한 적법한 권리행사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원인채권에 관한 시효 중단 여부가 어음채권의 권리 실현에 영향을 주지 못하여 어떠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다(동 2007.9.20. 선고 2006다68902 판결).
한편 소멸시효 완성 후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유체동산 강제집행을 통한 매각대금 교부수령에 따른 일부 변제의 경우 채무자는 채무 전체를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사안은 위 강제집행된 유체동산에 대해 피고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강제집행 당시 자신은 친척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때라 자신의 물건이 없어 집행관이 유체동산을 압류하지 못하였고, 그 후 집행관이 압류하고 경매절차를 진행한 것은 다른 채무자인 소외인의 유체동산이라고 주장한 것을 원심이 배척하였으나 상고심에서 원고의 증명책임에 따른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한 사례이다.

Ⅱ. 형 사

1. 수표위조 및 위조수표행사(서울중앙지방법원 2010.5.11. 선고 2010고단259 판결)

가. 사실관계

피고인들은 공소외인의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내기 위하여 피고인 1이 피고인 2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가장하고 공소외인으로부터 보증을 받아 두기로 공모하였는데, 피고인 1이 위 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자 사전에 피고인 2에게 수표를 복사하여 주는 것처럼 하겠다고 말한 뒤 컬러복사기를 이용하여 위 돈 상당의 자기앞수표 여러 장을 위조하고, 그 뒤 공소외인이 보는 앞에서 위 위조한 수표들을 피고인 2에게 교부한 사안.

나. 판결요지

위조유가증권의 교부자와 피교부자가 서로 유가증권위조를 공모하였거나 위조유가증권을 타에 행사하여 그 이익을 나누어 가질 것을 공모한 공범의 관계에 있다면, 그들 사이의 위조유가증권 교부행위는 그들 이외의 자에게 행사함으로써 범죄를 실현하기 위한 전 단계의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서 위조유가증권은 아직 범인들의 수중에 있다고 볼 것이지 행사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 분 석

위조유가증권행사죄에서 행사란 위조한 유가증권을 진정하게 성립한 진실한 내용의 유가증권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그 유가증권을 유통에 놓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위조통화행사죄의 행사의 의미와 다르다.
한편 위 법조의 처벌목적은 유가증권의 유통질서를 보호하고자 함에 있는 만큼 단순히 문서의 신용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위조 공·사문서행사죄의 경우와는 달리 교부자가 위조유가증권임을 알고 있는 자에게 교부하였더라도 피교부자가 이를 유통시킬 것임을 인식하고 교부하였다면, 그 교부행위 그 자체가 유가증권의 유통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어 처벌의 이유와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대법원 1983.6.14. 선고 81도2492 판결 등).

2. 부정수표단속법 제2조 제2항 위반죄의 성립 요건(대법원 2010.9.30. 선고 2010도6490 판결)

가. 사실관계

피고인이 수표의 사용처 등에 관한 피고인 2의 말에 속아 수표를 발행하였다고 변소한 사안.

나. 판결요지

구 부정수표 단속법 제2조 제2항 위반죄는 예금부족 등으로 제시일에 지급되지 아니할 결과발생을 예견하고 발행인이 수표를 발행할 때에 성립하고, 그 예견은 미필적이어도 무방하고, 기타 지급제시 안한다는 특약이나 수표발행 경위 또는 지급 못하게 된 경위 등 대내적 사유의 사정만으로 죄책을 면할 수 없다.

다. 분 석

일반적으로 수표금액에 상당한 예금이나 수표금 지급을 위한 명확한 당좌예금 확보책도 없이 수표를 발행하였다면 부정수표단속법 제2조 제2항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하여 수표금액의 확실한 마련책이 없는 한 위 요지와 같이 지급거절에 관한 고의를 넓게 인정하는 것이 대법원판결의 태도이다(대법원 1969. 4.29. 선고 69도271 판결).
그러나 평소 수표장을 떼어주어 사용하게 하다가 마지막 결제가 끝나는 대로 수표계약의 해지를 의뢰하여 모두 해결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계약 해지된 것으로 알고 8년여를 경과하였는데 몰래 계속 사용하면서 발행한 경우(동 1981.8.25. 선고 81도1596 판결), 경영하던 회사의 쓰다 남은 당좌수표와 대표이사 직인을 건네주면 이를 은행에 반납하고 새로운 대표이사 명의로 당좌거래명의를 변경하겠다는 양수인의 말을 믿고 교부하였는데 몰래 발행한 경우(동 1983.6.14. 선고 82도2103 판결), 수표를 견질용으로 발행하면서 다른 담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원인채무를 변제하였는데 소지인이 반환의무에 위배하여 지급제시한 경우(동 1992.9.22. 선고 92도1207 판결)와 같이 발행인이 그와 같은 결과발생을 예견하지 아니하였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 수표가 지급제시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고 그와 같은 믿음이 정당한 것으로 수긍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부정수표발행의 죄책을 면할 수 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