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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9)형법각론

신동운 교수(서울대 로스쿨)

1. 증언거부권의 불고지와 위증죄

2010. 1. 21. 2008도942 전원합의체판결, 공 2010, 465.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과 을은 쌍방 상해 사건으로 기소되어 공동피고인으로 함께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법정에서 갑은 자신은 폭행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을이 가한 폭행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다투었다(㉠사건). 그러자 재판부는 을에 대한 상해사건의 변론을 분리한 후 갑을 을의 피고사건에 대한 피해자 증인으로 채택하였다.

을의 피고사건에서 갑은 증인으로 선서한 후 검사로부터 신문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을에 대한 폭행 여부에 관하여 신문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갑에게 증언거부사유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재판장은 갑에게 증언거부권을 고지하지 아니한 채 증인신문절차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갑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종전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사건). [이후 갑의 증언은 허위임이 밝혀졌다.]

검사는 갑을 위증죄로 기소하였다(㉢사건). 제1심을 거친 후, 항소심은 갑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항소심은 무죄판단의 이유로 갑이 ㉡사건의 재판부로부터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종전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함에 따라 결국 거짓 진술에 이르게 된 사정을 지목하였다. 검사는 항소심판결에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이상 증언거부권 고지 여부를 고려하지 아니한 채 위증죄가 바로 성립한다"는 취지의 86도1724 전원합의체판결을 폐기하면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가) 위증죄와 형사소송법의 취지, 정신과 기능을 고려하여 볼 때, 형법 제152조 제1항에서 정한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라 함은 "법률에 근거하여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유효한 선서를 한 증인"이라는 의미이고, 그 증인신문은 법률이 정한 절차 조항을 준수하여 적법하게 이루어진 경우여야 한다고 볼 것이다.

(나) 헌법 제12조 제2항에 정한 불이익 진술의 강요금지 원칙을 구체화한 자기부죄거부특권에 관한 것이거나 기타 증언거부사유가 있음에도 증인이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사실상 장애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위증죄의 성립을 부정하여야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재조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로서 주목된다. 본 판례의 사실관계에서 갑은 증인으로서 사실대로 진술하면 상해죄로 처벌받고, 거짓으로 진술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의 상황에서 허위진술한 증인에게 위증죄가 성립하는가를 놓고 그동안 대법원은 몇 차례 입장을 바꾸었다.

4294형상194 판례에서 대법원은 형소법 제148조의 증언거부권과 관련하여 "범죄인에게 자기가 소추 등을 당할지도 모르는 사실의 진술을 강요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정에 반할 뿐 아니라 [이러한] 증인에 대하여 진실에 부합된 진술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반적 평균인에게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는 데 그 입법취지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여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하였다. 이후 86도1724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원은 "피고인과 같은 처지의 증인에게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여 위증죄로부터의 탈출구를 마련하고 있는 만큼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4294형상194 판례를 폐기함과 동시에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확장하였다. 이에 대해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로 86도1724 판례를 변경하여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재차 조정하고 있다.

그런데 본 판례의 판시사항을 분석해 보면 대법원은 "처벌의 위험에 직면한 증인에게 진실한 사실의 증언이라는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종전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적법절차의 준수라는 관점에서 판례변경의 결론에 이르고 있다. 대법원은 본 판례에서 "증인신문절차에서 법률에 규정된 증인 보호를 위한 규정이 지켜진 것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위증죄의 구성요건인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보아 이를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라는 입장을 천명하여 기대가능성의 이론과 무관하게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조절하고 있다.

본 판례의 기준에 따르면 증언거부의 사유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증인이 허위진술을 한 경우에는 그 증인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증언거부권의 고지 유무에 불구하고 위증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던 86도1724 판례와 비교해 보면 본 판례는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상당한 정도로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의 위험에 직면하여 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위증죄의 성립이 부정된다고 판단한 4294형상194 판례와 비교하면 본 판례는 법원이 증인에게 증언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때에 한하여 위증죄의 성립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제한적이다. 기존의 두 판례와 비교해 볼 때 본 판례는 중간적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위증죄의 주체인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의 의미를 "법률에 근거하여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유효한 선서를 한 증인"이라는 의미로 새기면서 각종 법률에 규정된 증인보호절차의 준수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가) 위증의 벌을 고지하는 절차는 재판부가 이를 누락하더라도 증인이 선서서 낭독 과정에서 위증의 벌을 알게 되므로 위증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나) 재판부가 증언거부권을 고지하지 않는 것은 증인에게 침묵할 것인지 아니면 진술할 것인지에 관하여 심사숙고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지 않은 것이 되어 위증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증언거부를 둘러싼 심사숙고의 기회에 주목하면서 대법원은 증언거부권 불고지 상태하에서 증인이 침묵하지 아니하고 진술한 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위증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위증죄의 성립을 부정해야 할 경우로 ① 헌법 제12조 제2항에 정한 불이익진술의 강요금지 원칙을 구체화한 자기부죄거부특권에 관한 것과 ② 기타 증언거부사유가 있음에도 증인이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사실상 장애가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의 두 가지를 들고 있다.

그런데 자기부죄거부특권과 관련한 ①의 경우는 증인 자신이 처벌의 위험에 직면한 상황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②의 경우는 친족 등 다른 사람이 처벌의 위험에 직면한 상황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①의 경우는 적법행위에의 기대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문제되는 상황임에 대하여 ②의 경우는 기대가능성의 논점이 간접적으로만 문제되는 상황이다. 기대가능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대법원의 종전 판례들은 ①의 경우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반해 본 판례는 종전의 판례가 알지 못하였던 ②의 영역에 대해서까지 위증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본 판례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진일보의 판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증인이 허위진술을 한 ②의 경우에 증언거부권이 고지되지 아니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위증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본 판례 이후에 나온 2007도6273 판결은 이혼한 갑녀가 전남편 을의 도로교통법위반죄(음주운전) 피고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거부권 고지 없는 상태에서 허위진술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 갑녀에 대한 위증죄 피고사건의 항소심법원은 갑녀에게 증언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검사는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갑녀에 대한 위증죄 피고사건에서 재판장이 "증언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증언을 거부했을 것이냐?"라고 신문하자 갑녀는 "그렇다 하더라도 증언을 하였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대답한 대목에 주목하면서, "피고인이 선서 전에 재판장으로부터 증언거부권을 고지받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피고인의 증언거부권이 사실상 침해당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이 2007도6273 판례는 본 판례의 성급한 확대적용을 견제하는 것으로서 상호 보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2. 협박죄의 객체와 법인

2010. 7. 15. 2010도1017, 공 2010, 1610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채권추심업체인 P회사의 Q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갑은 P회사로부터 갑의 횡령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당할 지경에 이르자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 P회사 본사에 "P회사의 내부비리 등을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에 고발하겠다"는 취지의 서면을 보내는 한편, ㉡ 당시 P회사 대표이사의 처남으로서 경영지원 본부장이자 상무이사였던 A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횡령행위를 문제삼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P회사의 내부비리 등을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에 고발하겠다"는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검사는 갑을 협박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을 거친 후, 피고사건은 항소심에 계속되었다. 항소심법원은 갑에게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은 불복 상고하였다. 갑은 상고이유로, 갑의 행위는 법인인 P회사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법인은 협박죄의 객체가 될 수 없으므로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면서, 특히 협박죄의 객체와 법인 협박의 문제에 대해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가) 협박죄는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로서 형법규정의 체계상 개인적 법익, 특히 사람의 자유에 대한 죄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는바, 위와 같은 협박죄의 보호법익, 형법규정상 체계, 앞서 본 협박의 행위 개념 등에 비추어 볼 때, 협박죄는 자연인만을 그 대상으로 예정하고 있을 뿐 법인은 협박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

(나) [협박이] 피해자 본인이나 그 친족뿐만 아니라 그 밖의 '제3자'에 대한 법익 침해를 내용으로 하는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 본인과 제3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어 그 해악의 내용이 피해자 본인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정도의 것이라면 협박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때 '제3자'에는 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포함된[다.]

(3) 판례평석

본 판례에서 갑은 자신의 협박행위가 법인인 P회사를 상대로 한 것이므로 협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위의 판시사항 (가)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법인은 협박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갑에 대한 협박죄가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협박의 상대방 본인뿐만 아니라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제3자의 법익도 해악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이 제3자의 범주에는 법인도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원문에는 판시사항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음). 이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본 사안에서 검사가 피해자를 법인(P회사)으로 본 것(㉠부분)이 아니라 갑으로부터 직접 해악을 고지받은 자연인(A)을 피해자로 보고(㉡부분) 공소를 제기한 점에 주목하여 갑의 상고를 기각하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본 판례는 그동안 논란되었던 법인에 대한 협박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 판례의 기준에 따라 앞으로 협박죄의 성립 여부는 자연인 피해자를 기준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지만, 자연인 피해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제3자로서 법인이 고려됨에 따라 법인에 대한 협박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본 판례의 의미는 단순히 형법 제283조의 협박죄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형법은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죄의 장에서 제324조로 강요죄를 규정하고 있다.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죄의 장은 협박죄의 장과 달리 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범죄유형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법인도 강요죄의 피해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강요죄의 객체에 법인이 포함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본 판례를 통해 법인에 대한 협박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간접적으로 확보됨에 따라 법인에 대한 강요행위의 처벌 논란 또한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담합과 입찰방해죄의 한계

2010. 10. 14. 2010도4940, 공 2010, 2130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P, Q, R, S회사는 모두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기 등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들이며, 갑, 을, 병, 정은 이들 회사의 대표들이다. [M기관은 N입찰을 통하여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기를 구매하기로 하였다.] 이에 이들 회사 사이에 담합이 시도되었으나 무산되었다. 입찰 직전 이들 회사 사이에 다시 담합이 논의되어 Q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3사는 입찰금액을 무조건 1억원 이상으로 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Q회사는 9,970만원, R회사는 1억 600만원, S회사는 1억 1,077만원으로 입찰하였다. 그러나 P회사는 입찰금액을 9,200만원으로 하여 제일 늦게 입찰하였고, [N입찰건은 P회사에 낙찰되었다.]

검사는 P회사의 대표이사 갑을 입찰방해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을 거친 후, 항소심법원은 갑에게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은 불복 상고하였다. 갑은 상고이유로 Q회사가 제시한 9,970만원보다 낮은 금액인 9,200만원으로 P회사가 입찰에 응하였으므로 M기관에 아무런 손해가 없어 입찰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대법원은 갑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가) 입찰방해죄는 위태범으로서 결과의 불공정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에는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뿐 아니라, 적법하고 공정한 경쟁방법을 해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나) 입찰자들 상호간에 특정업체가 낙찰받기로 하는 담합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그 특정업체를 포함한 다른 입찰자들은 당초의 합의에 따라 입찰에 참가하였으나 일부 입찰자는 자신이 낙찰받기 위하여 당초의 합의에 따르지 아니한 채 오히려 낙찰받기로 한 특정업체보다 저가로 입찰하였다면, 이러한 일부 입찰자의 행위는 위와 같은 담합을 이용하여 낙찰을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적법하고 공정한 경쟁방법을 해한 것이 되고, 따라서 이러한 일부 입찰자의 행위 역시 입찰방해죄에 해당한다.

(3) 판례평석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입찰방해죄의 성질을 밝히고, 나아가 담합과 관련한 입찰방해죄의 성립범위를 제시하고 있다(이하 서술의 편의상 입찰은 경매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담합이란 입찰인들이 서로 통모하여 특정한 사람이 계약자가 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이 일정한 가격 이하나 이상으로 입찰의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담합행위를 어느 범위까지 처벌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개별 법공동체의 입법자가 결정할 사항이다.

우리 형법은 입찰방해죄를 '신용, 업무와 경매에 관한 죄'의 하나로 형법 제31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담합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계수사적으로 볼 때 우리 형법의 입찰방해죄는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의 일종으로 동일한 장명(章名)을 가지고 있는 1940년 일본 개정형법가안의 입찰방해죄를 모델로 하고 있다.

군국주의 일본은 1941년 말 진주만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체제강화책의 일환으로 1942년에 개정형법가안의 일부 내용을 형법개정의 형식으로 형법전에 편입하였다. 일본의 입찰방해죄는 이때 일부개정의 일환으로 일본형법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점에서 우리 형법의 입찰방해죄와 입법의 출발점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의 입법과정을 살펴보면 양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 일본의 개정형법가안 제416조는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하거나 담합 기타의 방법으로 경매 또는 입찰의 공정을 해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 담합행위가 사기죄를 구성하는가를 놓고 견해가 나뉘고 있었는데, 이 문제를 아예 업무방해의 관점에서 파악하자는 것이 가안 입안자들의 구상이었다(法務大臣官房調査課, 法務資料 別冊 第23號, 422면 참조). 우리 입법자는 가안의 조문형태를 충실하게 따라가면서도 '담합'이라는 표현은 삭제하였다. 위계·위력과 같은 차원에서 논의되는 '기타 방법'의 하나로 담합을 포착하면 충분하다는 입법자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우리와 전혀 다른 입법과정을 밟게 된다(이하의 서술은, 大コンメンタ-ル刑法, 第2版, 第6卷, 198면 이하 참조). 1942년 가안을 토대로 형법개정안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경매·입찰 전반이 아닌 공적(公的) 경매·입찰의 공정성을 보호하면 족하다는 제한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의 정부원안은 입찰방해죄를 일본형법 제5장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죄'의 장에 편입하면서 제96조의3으로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하거나 또는 담합에 의하여 공적 경매 또는 입찰의 공정을 해할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

가안에 비하여 처벌범위가 축소된 정부원안은 일본 제국의회의 심의과정에서 더욱 제한되었다. 먼저 중의원의 심의과정에서 처벌대상 담합의 범위가 문제되었다. 논의과정에서 담합에는 입찰에 의하여 국가가 손해를 입게 되는 부정한 담합과 공정한 가격으로 입찰하는 담합의 두 가지가 있는데, 후자에 대해서까지 처벌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원안 가운데 '또는 담합에 의하여' 부분을 삭제한 나머지를 제1항으로 하고, 제2항에 "공정한 가격을 해할 목적으로 담합한 자도 또한 같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중의원에 이어서 진행된 귀족원 심의과정에서는 악질적인 담합이 처벌대상으로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담합으로 적절하지 않은 이익을 취득하는 경우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 결과 "공정한 가격을 해하거나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담합한 자도 또한 같다."라는 조항이 성립하여 최종적으로 일본 제국의회를 통과하였는데, 이것이 담합행위를 목적범으로 처벌하고 있는 현행 일본형법 제96조의3 제2항이다.

입법의 출발점인 가안과 비교해 볼 때 일본에서의 입찰방해죄 성립과정은 담합의 처벌범위를 제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처벌축소의 배경에는 담합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당시 일본 사회의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당시의 통제경제 상황에서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경매·입찰제도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었다는 점과 통제의 편의상 관(官)에서 오히려 업자에게 담합을 권하는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되고 있는데, 그 당시 일본 군납업체들의 로비력 내지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 일본의 입찰방해죄의 성립경위를 역추적하면 우리 형법상 입찰방해죄의 특징과 해석지침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일본의 입법자는 담합에 대한 처벌범위를 제한하기 위하여 공(公)경매ㆍ입찰을 대상으로 하는 한편, 담합에 의한 입찰방해죄를 목적범으로 규정하면서 그 목적도 '공정한 가격을 해하거나 또는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입법자는 이러한 제한을 설정하고 있지 않다.

우리 형법상 입찰방해죄는 입찰이 공적인 것인가 사적인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 입법자는 담합에 대해 특별한 우대나 배려를 하고 있지 않다. 담합은 위계·위력과 함께 경매·입찰의 공정성을 해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담합이 공정한 가격을 해할 목적을 가진 것인가,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을 가진 것인가는 따질 필요가 없다. 대법원이 본 판례에서 "담합한 금액보다 저가로 입찰을 하더라도 담합을 이용하여 낙찰을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적법하고 공정한 경쟁방법을 해한 것이 [된다.]"고 판시한 것은 우리 입법자의 결단을 충실하게 반영한 해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입찰방해죄는 위태범으로서 결과의 불공정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에는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뿐 아니라, 적법하고 공정한 경쟁방법을 해하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일본의 입찰방해죄 해석론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우리 형법의 조문을 직시한 해석으로 지극히 타당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4. 예금통장 절취와 불법영득의사

2010. 5. 27. 2009도9008, 공 2010, 1313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P회사의 현장사무소장으로 근무하던 갑은 월급 등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것을 염려하였다. 이에 갑은 P회사의 사무실에서 P회사 명의의 Q예금통장을 몰래 가지고 나와 예금 1,000만원을 인출한 후 다시 Q예금통장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검사는 갑을 절도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을 거친 후, 항소심은 갑의 행위로 인하여 Q예금통장 자체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그 인출된 예금액만큼 소모되었다고 할 수 없고, 갑이 Q예금통장을 사용하고 곧 반환한 이상 갑에게 Q예금통장에 대한 불법영득의 의사는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검사는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가) 예금통장은 예금채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이 아니고 그 자체에 예금액 상당의 경제적 가치가 화체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를 소지함으로써 예금채권의 행사자격을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권으로서 예금계약사실뿐 아니라 예금액에 대한 증명기능이 있고 이러한 증명기능은 예금통장 자체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라고 보아야 하므로, 예금통장을 사용하여 예금을 인출하게 되면 그 인출된 예금액에 대하여는 예금통장 자체의 예금액 증명기능이 상실되고 이에 따라 그 상실된 기능에 상응한 경제적 가치도 소모된다고 할 수 있다.

(나) 그렇다면 타인의 예금통장을 무단사용하여 예금을 인출한 후 바로 예금통장을 반환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용으로 인한 위와 같은 경제적 가치의 소모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예금통장 자체가 가지는 예금액 증명기능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절도죄가 성립한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불법영득의사의 내용을 구체화한 예로서 주목된다. 불법영득의사의 객체와 관련하여 그동안 물질설과 가치설이 대립하여 왔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논란되었던 것으로 예금통장의 문제가 있다. 예금을 인출한 후 예금통장을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경우에 통장 자체의 물질적 측면에서는 감소된 것이 없으므로 물질설을 취할 경우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아니하여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법원은 본 판례를 통하여 예금통장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여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고 있다. 즉 예금통장은 예금액에 대한 증명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 증명기능이 예금통장 자체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본 판례는 그동안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불법영득의사를 논해 왔던 상황을 일신하여 우리나라 법실무에 나타나는 문제사례를 중심으로 불법영득의사의 객체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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