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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1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8)형법총칙

신동운 교수(서울대 로스쿨)

1. 정관과 위임입법의 한계

2010.7.29. 2008헌바106, 헌공 2010, 1391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농업협동조합법은 지역농협의 선거운동 방법을 1. 선전벽보의 부착, 2. 선거공보의 배부, 3. 소형인쇄물의 배부, 4. 합동연설회 또는 공개토론회의 개최, 5. 전화·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지지·호소의 5가지로 제한하면서, 이 가운데 지역농협의 정관으로 정하는 행위 이외의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동법 50조 4항), 이에 위반하는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동법 172조 1항 2호).

갑은 P지역신문 발행인이다. 갑은 경남 하동군 Q농협 조합장 선거의 조합장 예비후보자가 언론사 대표를 매수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P신문을 배포하였다. 검사는 갑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죄로 기소하였다. 갑은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재판이 계속되던 중 해당 처벌법규가 농협의 정관에 의해 형사처벌 유무가 결정되도록 규정하고 있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당해 벌칙규정의 구성요건을 규정한 농업협동조합법 제50조제4항에 대해 위헌임을 선언하였다.

(2) 헌법재판소 판시사항

"(전략) 허용되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원칙적으로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예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또는 부령 등의 법규명령의 형식을 벗어나서는 아니[된다.] (중략) 형사처벌에 관련되는 주요사항을 헌법이 위임입법의 형식으로 예정하고 있지도 않은 특수법인의 정관에 위임하는 것은 사실상 그 정관 작성권자에게 처벌법규의 내용을 형성할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없고, 따라서 정관에다 구성요건을 위임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우선 범죄와 형벌에 관하여는 입법부가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써 정하여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되기 어렵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형벌법규와 관련한 위임입법의 한계를 제시한 것이다. 본 판례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제시한 위임입법의 법규명령 형식에 주목하면서, 특수법인의 정관에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을 위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본 판례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하여 형벌법규의 내용을 형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1995.6.30. 93추83 대법원 판례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목적의 인식정도

2010.7.23. 2010도1189 전원합의체 판결, 공 2010, 1696.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로 약칭함)는 북한의 주체사상, 선군정치, 강성대국론, 핵실험에 대한 찬양·홍보와 그에 기한 사상교육의 시도, 반미자주화를 위한 물리력 행사와 민중 폭력의 당위성 등을 강조하는 P자료집을 제작하여 단체원들의 교육자료로 사용하였다. 실천연대의 간부 갑은 P자료집을 소지하면서 이를 활동지침으로 사용하였다.

검사는 갑을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소지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은 P자료집을 소지한 갑에게 이적행위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유죄를 선고하였고, 항소심 또한 이를 유지하였다. 갑은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이적표현물소지의 고의로부터 이적행위 목적을 추정하였던 종래의 판례를 폐기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나 이적행위 목적의 인식 정도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뉘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에 따라 이적행위 목적을 인정하여 갑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목적범에서의 목적은 범죄 성립을 위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로서 고의 외에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므로, 행위자가 표현물의 이적성을 인식하고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소정의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인정되지 아니하면 그 구성요건은 충족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목적범의 목적과 고의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본 판례에서 갑은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 자료집을 소지하면서 활동지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사는 갑을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소지죄로 기소하고 있다. 갑은 설사 소지한 자료집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함을 인식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없어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은 본 판례에서 이적표현물 소지의 고의로부터 이적행위의 목적을 곧바로 추정하였던 종래의 판례를 폐기하면서, '이적행위를 할 목적'은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적목적의 증명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견해가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목적의 인식은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 없고 미필적 인식으로 족하다는 종래의 판례를 암묵적으로 전제하였다. 이를 토대로 다수의견은 주어진 사실관계에서 관련된 간접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갑에게 이적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목적범에 여러 유형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목적범의 유형에 따라 객관적 구성요건 행위가 있으면 그 목적도 함께 존재할 가능성 또는 개연성의 정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소수의견은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소지죄가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적어도 이적표현물에 관한 죄에 있어서는 종전 대법원 판례 중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기만 하면 바로 이적행위 목적을 인정할 수 있다는 부분도 마저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본 판례는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요소인 목적의 법적 성질과 증명방법 및 증명의 정도에 관하여 상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목적의 인식 정도는 미필적 인식으로 족하다는 종래의 판례태도에 대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본 판례는 앞으로 목적범의 법리 규명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3. 행정범과 과실범처벌규정

2010.2.11. 2009도9807, 공 2010, 601.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P찜질방의 종업원이고 을은 업주이다. A는 술을 마시고 P찜질방 정문으로 들어와 계산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갑에게 이용요금을 지불하고 발한복을 대여받은 후 다시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고 후문으로 나가 술을 더 마신 다음 갑 몰래 후문으로 다시 들어와 발한실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하였다.

공중위생관리법 및 관련규정에 따르면, "건전한 영업질서를 위하여 공중위생영업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을 준수하지 아니한 자"는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준수사항의 하나로 "음주 등으로 목욕장의 정상적인 이용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자를 출입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검사는 종업원 갑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죄로, 업주 을을 같은 법률의 양벌규정에 기하여 기소하였다. 제1심을 거친 후, 갑과 을의 피고사건은 항소심에 계속되었다. 항소심법원은 공중위생관리법의 해당 벌칙조항이 과실범도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전제하에 과실범 성립 여부를 검토하였다. 항소심은 A가 P찜질방에 처음 들어갈 당시 이미 술에 만취하여 목욕장의 정상적인 이용이 곤란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고, 나아가 찜질방 정문 및 후문에 대한 출입 통제 및 관리 등을 소홀히 한 갑과 을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A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인정하였다. 갑과 을은 항소심판결에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갑과 을에게 주의의무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나아가 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판시사항

"행정상의 단속을 주안으로 하는 법규라 하더라도 명문규정이 있거나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법의 원칙에 따라 고의가 있어야 벌할 수 있다."

(3) 판례평석

본 판례는 각종 행정형법의 과실범 처벌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 판례에서 문제된 공중위생관리법의 벌칙규정을 보면 '과실로'라는 구성요건표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항소심법원은 행정형법의 벌칙조항에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당연히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주의의무에 위반하여 술에 만취한 사람을 찜질방에 출입시켰으므로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행정상의 단속을 주안으로 하는 법규라 하더라도 명문규정이 있거나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법의 원칙에 따라 고의가 있어야 벌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여 일견 과실범 처벌에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구체적인 사안의 분석에서 피고인들에게 주의의무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한 결론도 대법원의 엄격한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과실범의 처벌과 관련한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항소심과 대법원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대법원이 피고인들의 주의의무위반 여부를 검토한 것은 공중위생관리법이 행정상의 단속을 주안으로 하는 법규로서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행정형법의 벌칙규정을 과실범 사안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점에서 항소심과 대법원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 형법 제14조는 "[주의의무에 위반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8조는 "본법 총칙은 타 법령에 정한 죄에 적용한다. 단, 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본 판례에서 문제된 공중위생관리법에 대입해 본다면, 주의의무 위반행위는 공중위생관리법에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되며, 이 원칙을 배제하려면 공중위생관리법에 '특별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중위생관리법은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형법 제14조를 배제한다는 '특별한 규정' 또한 두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행정상의 단속을 주안으로 하는 법규'의 경우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더라도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백한 경우'에는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입법자는 과실범 처벌 여부와 관련하여 두 번이나 '특별한 규정'을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에 비추어 볼 때 이 경우 '특별한 규정'은 성문법률의 규정을 가리킨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대법원은 본 판례에서 '특별한 규정'의 의미를 '해석상 과실범도 벌할 뜻이 명백한 경우'로 바꾸어서 읽고 있다. 입법자의 입법활동을 해석자의 해석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행정형법의 과실범 처벌 여부에 대해 다양한 판례를 내어놓고 있었는데, (1) 과실범 처벌의 명문규정이 있을 때 한하여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명문규정설; 83도2467), (2) 당해 행정법규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입법취지설; 92도1136), (3) 해석상 과실범도 처벌할 뜻이 명백한 경우에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해석상 과실설; 85도108) 등이 그것이다. 본 판례는 세 번째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데,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므로 아직 대법원판례의 통일이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더라도 행정형법의 벌칙규정을 고의범 이외에 과실범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현재 행정법학계에서 주류적인 입장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위 행정형법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라는 행정법학계의 인식은 계수사적으로 볼 때 과실범 처벌과 관련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아니하였던 의용형법(현행 일본형법도 또한 같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 제국형법의 해석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입법자는 형법총칙에서 '법률에 특별한 규정'을 둔 경우에 한하여 과실범을 처벌할 수 있다는 대원칙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입법적 결단은 독일의 형법개정안으로부터 시사받은 것이다. 독일의 형법개정 연혁을 살펴보면, 각종 행정형법의 벌칙규정을 적용할 때 당해 규정이 고의범 이외에 과실범도 처벌대상에 포함하고 있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로부터 법관을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을 때 한하여 과실범을 처벌한다는 원칙을 성안하였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1930년 독일형법초안을 거쳐 마침내 1975년의 신형법 제15조로 입법화되기에 이르렀다(자세한 내용은, 졸고, "행정형법과 과실범의 처벌", 서울대학교 법학, 2011. 3. 참조).

과실범 처벌에 대해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한 의용형법(현행 일본형법)이나 독일 제국형법의 낡은 이론을 답습하는 행정법학계의 기존 이론이나 이를 추종하는 본 판례는 죄형법정주의를 외면하는 것으로서 하루 빨리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형법 제14조에 충실하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명문규정설에 입각한 판례의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4. 의료인의 주의의무

2010.10.28. 2008도8606, 공 2010, 2200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A환자는 P대학병원에서 췌장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담당 의사 B는 A에 대하여 1시간 간격으로 4회 활력징후를 측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편 P대학병원에서 활용하는 외과 간호사를 위한 지침서에는 췌장암 수술 후 활력징후는 4시간 간격으로 측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환자 A는 수술 후 회복실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 있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일반병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갑은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병실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활력징후를 측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2회차만 측정한 채 3회차 이후에는 활력징후를 측정하지 않았다. 갑과 근무를 교대한 간호사 을 또한 자신의 근무시간 내 4회차 측정시각까지 활력징후를 측정하지 아니하였다. A는 지정된 4회차 활력징후 측정시각으로부터 약 10분 후 심폐정지상태에 빠졌다가 3시간이 지난 후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검사는 간호사 갑과 을을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하였다. 제1심을 거친 후, 항소심법원은 피고인들이 1시간 간격으로 피해자의 활력징후를 측정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그 후 사망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과실이 있거나, 피고인들의 활력징후 측정 미이행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는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되고, 따라서 의사로서는 환자의 상태에 충분히 주의하고 진료 당시의 의학적 지식에 입각하여 그 치료방법의 효과와 부작용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여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그 치료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러한 주의의무의 기준은 진료 당시의 이른바 임상의학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나, 그 의료수준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당해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할 것이다."

(3) 판례평석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의료사고와 관련한 주의의무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본 판례에서 논란되고 있는 쟁점은 일반병실의 간호사인 피고인들이 1시간 간격으로 4회에 걸쳐 환자의 활력징후를 측정하라는 담당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아니한 것이 주의의무 위반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원심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고 있는데, 판단과정에서 췌장암 수술 후 활력징후는 4시간 간격으로 측정한다는 외과 간호사를 위한 지침서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반대의 입장에서 피고인들에게 주의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먼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당해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주의의무의 기준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편 대법원은 간호사가 의사의 진료를 보조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진료를 보조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별도로 확인하고 있다. 이상의 점을 토대로 대법원은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한 담당의사의 지시를 간호사인 피고인들이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본 판례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대법원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그의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보아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고 판시한 부분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본 판례에서 대법원이 선판례로 인용한 96다5933 민사판례에서 이미 설시되었던 것으로서, 최선의 주의의무라는 기준이 이제 형사재판의 영역에서도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들어 의료인이나 기타 전문직종 종사자들의 업무영역에 대해 법원이 신뢰의 원칙을 확대적용하여 주의의무의 범위를 축소해 가는 추세를 감지할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본 판례를 통하여 의료인들에게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익보호의 기본원칙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태도는 의료인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대의 위험사회에서 고도의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각종 직업군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특별지식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법익보호에 임하여야 한다. 본 판례는 전문직업 종사자들에 대해 주의의무의 새로운 방향설정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5. 사후적 경합범과 선고유예 허용 여부

2010.7.8. 2010도931, 공 2010, 1604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갑은 ㉠폭처법위반죄(공동상해)와 ㉡폭처법위반죄(공동공갈)를 순차로 범하였다. [㉠죄가 발각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갑은 ㉡죄로 기소되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 이후 ㉠죄에 대해 공소가 제기되었다. 제1심을 거친 후, 항소심은 갑에게 ㉠사건 범행 당시 벌금형 외에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범행과 그 후에 판결이 확정된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단을 내렸다. 검사는 불복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2) 대법원 판시사항

"형법 제39조 제1항에 의하여 형법 제37조 후단 경합범 중 판결을 받지 아니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 있어서 형법 제37조 후단에 규정된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의 형도 형법 제59조 제1항 단서[선고유예 결격사유]에서 정한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에 포함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3) 판례평석

2005년의 형법 일부개정에 의하여 사후적 경합범의 처리기준이 변경되었다. 입법자는 수개의 죄가 동시에 재판을 받아 형이 선고되는 경우(동시적 경합범)와 일부 죄가 먼저 확정되고 나머지 죄가 이후에 재판받아 형이 선고되는 경우(사후적 경합범) 사이에 형량의 차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발생하는 차이로서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동시적 경합범의 경우와 형평을 고려하여 사후적 경합범의 형을 결정하도록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후적 경합범의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형법 39조1항 본문, 단서).

본 판례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원심법원은 ㉠죄가 ㉡죄와 함께 동시에 판단되었더라면 집행유예 정도로 끝났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동시적 경합범으로 처리할 때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죄에 대해 극히 낮은 수준의 제재라고 할 수 있는 선고유예를 갑에게 선고하였다고 생각된다.

검사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① 선고유예가 주로 범정이 경미한 초범자에 대하여 형을 부과하지 않고 자발적인 개선과 갱생을 촉진시키고자 하는 제도라는 점, ② 형법은 선고유예의 예외사유를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그 전과를 범행 이전의 것으로 제한하거나 형법 제37조 후단 경합범 규정상의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에 의한 전과를 제외하고 있지 아니하다는 점, ③ 사후적 경합범의 경우 이미 판결이 확정된 죄에 대하여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었다면 나머지 죄가 위 판결이 확정된 죄와 동시에 판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선고유예가 선고되었을 수 없을 것인데 나중에 별도로 판결이 선고된다는 이유만으로 선고유예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점 등을 논거로 제시하여 사후적 경합범의 경우에는 선고유예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사후적 경합범의 경우에 선고유예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고 타당한 판단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우선, 형법이 선고유예의 결격사유인 전과를 범행 이전의 것으로 제한하고 있지 아니하다는 대법원의 분석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으로서 납득하기 곤란하다. 선고유예의 결격사유와 관련하여 형법 제59조제1항 단서는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前科)'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때 '전과(前科)'는 당해 범행 이전의 시점에 이루어진 과오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인들의 언어감정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본 판례에서 대법원은 형의 면제와 형의 선고유예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형법 제39조 제1항 단서는 동시적 경합범의 경우와 형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후적 경합범에 대해 형의 감경뿐만 아니라 형의 면제도 허용하고 있다. 형의 면제와 형의 선고유예는 양자 모두 유죄가 인정됨을 법원이 공적으로 선언하는 판단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형소법 제322조 참조). 그런데 형의 면제는 형벌의 선고를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고 하는 공적 판단임에 대하여 형의 선고유예는 형벌을 내부적으로 정해 놓되 외부적으로 그의 선고를 일정기간 유예한다는 공적 판단이다. 이처럼 양자의 구조를 대비해 보면 형의 면제가 형의 선고유예에 비하여 피고인에게 보다 유리한 판단임을 알 수 있다.

본 판례에서 대법원이 형의 면제와 형의 선고유예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시적 경합범과의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입법자가 사후적 경합범에 형의 면제까지 인정하였다면 그보다 중한 판단인 형의 선고유예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 사후적 경합범에 형평성을 도모하려고 한 우리 입법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살릴 수 있도록 사후적 경합범에 형의 선고유예를 허용하는 판례변경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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