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09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09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3)민법上

김재형 교수(서울대 법대)

Ⅰ. 서론

「2009년」 법학과 법실무 모두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출범과 함께 법학교육에 일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는 4년에 걸쳐 민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 위한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이목을 끄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쏟아내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도 새로운 법리를 전개하고 있는 판결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 나온 판례를 정리하다가 문득 이들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빨리 잊어버리고 판결을 소개하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

2009년에 나온 민법 판례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무엇보다도 파급력이 큰 판결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특히 상반기에 나온 금융실명제, 연명치료중단, 인터넷 명예훼손, 이른바 삼성사건에 관한 판결들은 하나하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판결들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분쟁이 법원으로 오고 있고 법원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판단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판결들은 지극히 현대적인 법률문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민법에 관한 것이거나 민법에 관한 법리를 기초로 논증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전원합의체 판결의 양적 추이를 보면 2009년에 민사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 10년 동안 126개의 전원합의체 판결 또는 결정이 나왔고, 그 중 17개가 2009년에 나왔다. 판례공보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민사편에 수록된 전원합의체 판결이 47개이고, 2009년에 선고된 것은 그 중 7건이다. 이는 대법원이 기존의 판례를 과감하게 또는 적극적으로 변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08년에 나온 유체인도 판결 이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에는 2000년대에 들어와 진행되었던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지만, 여기에서 나아가 현재의 대법원 체제 하에서 사법적극주의적 태도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한편, 대법원은 법적 견해를 표명하는 중요한 판결에서 사실판단도 아울러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적 판단과 사실판단은 그 경계를 쉽게 그을 수 없는 문제이지만, 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 법적 견해의 통일에 집중해야 하고 사실문제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원심과는 다른 사실인정을 토대로 법리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급심이 사실인정을 좀 더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지만, 대법원의 사실판단에 관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2009년에 나온 민법에 관한 중요판례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개관하면서 그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Ⅱ. 예금계약의 당사자에 관한 판단기준

1. 금융실명제는 예금거래 등 금융거래에서 누구를 당사자로 볼 것인지에 관한 판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실명제 실시 후 판례는 종전과 달리 원칙적으로 명의인을 예금주로 보고 금융자산의 출연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거래명의인이 아닌 출연자에게 금융자산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출연자를 예금주로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묵시적 약정을 넓게 인정함으로써 금융실명제의 취지가 잠탈되었다.

대판(전) 2009. 3.19, 2008다45828은 약 10년 만에 금융실명제 하에서 예금주의 결정기준에 관한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사안을 보면, 원고의 남편인 A가 2006. 2.13. 원고를 대리하여 B은행에서 원고 명의로 신규 정기예금 계좌(이하 '이 사건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4,200만원을 예치하였다. 원심은 B은행과 A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위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예금명의자로 기재된 원고가 아닌 A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하기로 하는 묵시적 약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다수의견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이라 한다)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예금명의자나 그 대리인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려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과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작성된 예금계약서 등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매우 엄격하게 인정해야 한다.

2. 예금계약의 당사자를 정하는 것은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이다. 그런데 '대량적·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예금계약과 같은 금융거래'에서는 일반적인 계약과는 달리 정형적이고 신속하게 그 당사자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른 계약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실명확인 절차를 통하여 객관적으로 표시된 예금명의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에 기초하여 예금계약의 당사자, 즉 예금반환청구권을 갖는 예금주를 정해야 한다."

실지명의에 의하여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금융실명법 제3조 제1항의 규정에서 금융거래의 당사자들에게 명의인을 당사자로 보려는 의사가 있다는 것을 끌어낼 수 있고, 이에 기하여 명의인을 금융거래의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는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금융실명법 제3조 제1항 → 당사자의 의사 → 명의인이 금융거래의 당사자라는 원칙」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고객주의의무 제도, 즉 고객 알기 정책의 도입(2005. 1.17. 개정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2)과 함께 금융실무에서 고객을 확인하는 절차를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위 원칙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판결은 '금융실명법에 의하여 예금명의자에 대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서 등을 작성함으로써 그의 명의로 예금계약이 이루어진 사안'에서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 사이에서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출연자 등을 예금주로 인정하고 있다. 이로써 "그에 이르지 아니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에 의하여서도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이 귀속될 수 있다"고 한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필자는 종전의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金載亨, "금융거래의 당사자에 관한 판단기준," 민법론 Ⅲ, 73-77면, 88면), 이 판결은 대체로 옳은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Ⅲ. 법해석의 방법과 한계

1. 대판 2009. 4.23, 2006다81035의 원심판결은 추운 겨울에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노인을 쫓아내려는 원고의 청구를 배척하여 '따뜻한 가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판결'로 언론에 보도되었던 그 유명한 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원고로부터 임대주택을 임차한 사람이 아버지와 딸 중 누구인지 문제되었다. 임대차계약서에서는 딸(피고 1)을 임차인으로 기재하였으나,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피고 2)로서 75세의 고령에 홀로 살고 있었다. 원고는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피고들에게 명도와 퇴거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구 임대주택법(2005. 7.13. 법률 제759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5조 제1항의 '임차인'의 의미를 문언적, 법형식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는 임대차계약의 목적, 재정적 부담과 실제 거주자라는 실질적 측면에서 사회적 통념상 임차인으로 여겨지는 피고 2가 이른바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피고 2가 이 사건 임대주택에 관하여 우선분양을 받을 권리를 가지므로,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피고들에게 명도와 퇴거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 1을 임차인으로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2. 법률의 해석에서 법률의 문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법률의 목적을 고려하여 법률을 해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외적으로 문언과 달리 법규정을 해석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 법규정의 문언과 달리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대법원 판결은 법해석에 관하여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법해석에서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판결은 법해석에서 법적 안정성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즉, "법해석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법해석의 방법은 문언해석이 원칙이고 추가적으로 입법취지나 목적 등 여러 요소를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에 법해석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서 법적 안정성을 깨뜨리는 법해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3. 원심은 이른바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임대주택법상 임차인의 개념을 넓히고 있으나,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임대주택법상 '임차인'에 관하여 특별한 해석규정은 없다. 따라서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이라는 용어는 임대차에 관한 일반법인 민법의 규정(제618조), 그리고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임차인'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에서 목적물의 사용수익권을 가짐과 동시에 차임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자로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이다. 이는 목적물을 실제로 사용·수익하고 있는지, 보증금·차임 등을 실제 출연하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피고 1을 임차인이라고 판단하면서 원심과는 다른 사실관계를 들고 있다. 원심과 대법원 사이에 사실판단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임대차계약에서도 자기 명의로 계약을 체결한 사람을 계약의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판결은 위에서 본 금융실명제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과 함께 계약의 당사자를 판단할 때 명의인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Ⅳ.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

1. 대판(전) 2009. 5.21, 2009다17417은 대법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요건을 제시하였다. 원고는 피고가 운영하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 식물인간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로 연명치료를 받고 있었다. 원고는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 며칠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하고 그대로 임종을 맞게 하면서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연명치료 중단을 청구하였다. 원심은, 원고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하였고 원고가 현재의 상황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았을 경우 원고에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였다. 대법원도 이를 지지하였다.

2. 대법원 판결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에 관해서는 견해가 나뉘고 있다. 다수의견에 의하면 사람이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그 허용요건으로 ①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도달할 것 ② 미리 연명치료 중단의 의사를 표시하였을 것(이른바 '사전의료지시')이 필요하다.

(1)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

다수의견에 의하면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는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를 말한다.

어떠한 경우에 사람이 의식이나 중요 생체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날로부터 7개월이 넘게 생존하였는데, 이것을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판단은 맞지 않게 된 셈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의식과 생체기능이 상실되어 그 회복가능성이 없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해야 한다는 것은 독립적인 요건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회복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회복불능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2) 사전의료지시

환자가 미리 명시적으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경우에는 그 의사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연명치료에 관하여 '사전의료지시'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어떠한 요건 하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것인지 문제된다. 다수의견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환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려는 의사가 실제로 있는 경우에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그 의사를 추정하거나 묵시적 의사표시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현재의 신체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추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위와 같은 경우에는 추정적 의사(또는 묵시적 의사)가 아니라 가정적 의사를 인정한 것이라는 반대의견의 지적이 타당하다.

원고는 이 사건 소송을 통하여 연명치료 중단을 청구하고 있지만, 의식불명상태로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사를 법원에 직접 표명할 수 없었다. 의식불명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연명치료 거부 또는 중단에 관하여 미리 의사표시를 하였는지도 불명확하다. 환자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 등을 통하여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면 이를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가족의 증언 등을 토대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사를 쉽게 인정한다면 그 가족(또는 후견인)의 의사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 좌우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이 환자의 생사를 결정하는 판단자로 될 수도 있다.

Ⅴ. 토지에 관한 사용수익권의 포기

대판 2009. 3.26, 2009다228, 235는 토지의 사용수익권 포기에 관한 것이다. 이 사건 토지는 원래 A의 소유였는데, 그가 2006. 7.20. 사망하여 원고가 위 토지를 단독으로 상속하였다. A는 1982년경에 피고에 대하여 '피고가 위 토지 위에 농촌지도소 사무실로 쓸 이 사건 건물을 신축하여 그 부지로 위 토지를 사용하는 것'을 승낙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건물의 철거 및 토지인도를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원고가 위 토지를 피고의 위 건물 건축 및 사용에 제공함으로써 이 사건 토지에 대한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은 소유자가 사용수익권을 대세적으로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소유권은 외계 물자의 배타적 지배를 규율하는 기본적 법질서에서 그 기초를 이루는 권리로서 대세적 효력이 있으므로, 그에 관한 법률관계는 이해당사자들이 이를 쉽사리 인식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정해져야 한다. 그런데 소유권의 핵심적 권능에 속하는 사용·수익의 권능이 소유자에 의하여 대세적으로 유효하게 포기될 수 있다고 하면, 이는 결국 처분권능만이 남는 민법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유권을 창출하는 것으로서, 객체에 대한 전면적 지배권인 소유권을 핵심으로 하여 구축된 물권법의 체계를 현저히 교란하게 된다."

종래 토지의 무단점유로 인한 부당이득반환소송에서 이른바 '배타적 사용수익권 포기 법리'는 그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는데도 지나치게 넓게 인정되어 왔다. 대법원은 그러한 법리가 물권적 청구권을 행사하는 사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이른바 공평을 이념으로 한다는 부당이득법상의 구제"와 "소유권의 내용을 장래를 향하여 원만하게 실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소유권의 보호를 위한 원초적 구제수단인 소유물반환청구권 등의 물권적 청구권"이 구별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는 민법상의 구제수단을 형식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이념이나 제도목적에서 구체적인 법리를 도출한 것이다. 소유권 침해의 경우에 물권적 청구권과 부당이득청구권이라는 구제수단이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제수단의 목적이나 지향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용수익권의 포기 법리의 적용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Ⅵ. 부동산의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소유명의자의 변동으로 인한 법률관계

1. 대판(전) 2009. 7.16, 2007다15172, 15189는 부동산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여러 차례 변경된 경우에 시효취득이 인정되는지 문제된 사안에 관한 것이다. 원심은 위와 같이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변경된 시점을 새로운 취득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종래의 판례는 부동산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후 토지소유자가 변동된 시점을 새로운 취득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아 2차의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려면 그 새로운 취득시효기간 중에는 등기명의자가 동일하고 소유자의 변동이 없어야만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2. 부동산에 대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 후 취득시효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그 부동산에 관하여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면 점유자는 더 이상 취득시효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이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잡 미묘한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이 판결은 그 끄트머리에 있는 것으로, 꼼꼼히 읽어야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부동산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진 경우, 점유자가 그 소유권 변동시를 새로운 기산점으로 삼아 2차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소유명의자가 변동되었다고 하여 새로운 점유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경우에는 점유자가 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므로, 그 때부터 점유취득시효기간이 다시 진행되고 20년이 경과하면 취득시효가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 형평에 부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부동산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으로써 새로이 2차 점유취득시효가 개시되었는데, 그 취득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다시 변경되었다. 이러한 경우 2차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점유자는 그 취득시효 완성 당시의 등기부상 소유명의자에게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차 점유취득시효의 기간 중에 소유명의자가 변경된 경우에 점유자는 그 취득시효 완성 당시의 등기부상 소유명의자에게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있는데, 이와 달리 2차 점유취득시효의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다수의견이 타당하다.

한편, 반대의견에서 당초의 점유자가 등기부상 소유자의 변경 사실을 잘 알면서 점유를 개시한 경우에 타주점유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나, 보충의견은 이와 같은 경우에도 자주점유라고 하고 있다. 점유취득시효 완성 후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변경된 경우에 점유자는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없다. 만일 점유자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관하여 위와 같이 소유명의자가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등기가 무효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점유자의 점유를 타주점유로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동산 점유자가 그가 점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타인 소유이고 타인 명의의 등기로 인하여 시효취득 완성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새로운 소유명의자의 희생 하에 점유자를 보호해야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점유자가 취득시효 완성 후 등기부상 소유명의자가 변경된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 한하여 자주점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 2010년 3월 18일 (제3826호) 12·13면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