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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사례

선후배 간 명예훼손 사건… 진실규명서 권한문제로 전환, 사과 문안 확정 및 배상액에 관한 이견 절충… 합의점 도출

민사소송/민사집행

1. 들어가면서
가. 어느 잡지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형편없는 술 주정뱅이’라는 기사가 실렸었다고 한다. 이를 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재판이 열렸고, 위 기사는 허위로 판명되어 잡지사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의 손해배상을 하여야 한다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선고된 손해배상액은 피해자가 요구한 ‘1달러’였다고 한다. 루스벨트는 그 이유에 대하여 ‘손해배상의 액수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이 밝혀졌으니 오해는 풀렸고,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나. ‘혀 아래 도끼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게으른 자의 혀는 결코 게으르지 않다’, ‘자기 혀에게 모른다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등 말을 조심하여야 한다는 속담과 격언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이것만큼 지켜지지 않고, 많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다. 또한, 말로 인한 분쟁은 사실에 관한 오해가 풀리더라도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손해배상액수에 관하여 루즈벨트만큼 초연한 경우는 많지 않다.
2. 사안의 개요
가. 원고와 피고는 같은 직장의 선후배로, 원고는 피고의 10여년 선배로 여자이며 정규직이고, 피고는 계약직 남자직원이다.
나. 어느 날, 원고는 피고의 전갈을 받고 직장의 큰 홀로 갔는데, 그 곳에 직장의 관련자 수십 명이 모여 있었고, 피고는 원고의 비리와 부정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적시하면서 원고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다. 원고는 즉시 그 자리를 피하였지만, 직장에서는 원고의 부정, 비리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원고는 상사에게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사직을 하겠노라며 사직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였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위 사직서를 이유로 원고에 대하여 사직처리를 하였다.
라. 원고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피고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민사상 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으며, 직장에서의 사직처리에 대하여도 사직서의 제출은 진의가 아님을 이유로 신분회복을 위한 법적 대응을 시작하였다.
마. 원고의 청구에 대하여 피고 역시 변호사를 선임하여 주로 피고가 언급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근거 등을 제시하는 답변서를 제출하였고, 재판부는 변론기일을 지정하기 이전에 조정센터의 조정에 회부하였다.

3. 조정경과
가. 제1차 조정기일에는 원고와 원고의 대리인, 피고의 대리인이 출석하였고, 피고는 참석하지 아니하였는데, 피고가 언급한 사실의 진실성 여부에 관한 진술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이 대화는 상호 평행선을 그을 뿐 접근할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나. 상임조정위원은 피고측에게 ‘피고가 언급한 일들을 어떠한 증거로 확인하였는지, 그리고 증거에 의하여 사실로 확인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어떤 권한으로 관련자들 앞에서 원고에게 그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거론하면서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하였고, 만약 이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피고가 원고에게 사과를 하고, 원고측은 사과를 받는 경우 형사고소를 취소하고, 손해배상액은 상징적인 금액으로 정할 수 있는지 의견을 묻고, 제2차 조정기일에는 피고 본인이 참석할 것, 상임조정위원의 권유를 수용할 수 있다면 원고는 요구하는 사과문안, 피고는 제공할 수 있는 사과문안을 기일전에 팩스로 송부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원고측과 피고측은 모두 제2차 조정기일 전에 상임조정위원에게 사과문안을 송부하여 왔는데, 다행히 일부 세부적인 표현 이외에는 전체적인 문안의 맥락이 일치하였다.
다. 제2차 조정기일에는 평소 당사자들의 심리상태에 적절히 대응하는 서울지방법원 소속 변호사 조정위원으로 하여금 출석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게 하면서, 사과문안의 확정 및 손해배상액에 관한 의견절충을 시도하였다. 참석한 피고는 원고에게 구두로 사과를 하였고, 양측은 사과문안의 미묘한 차이를 절충하였으며, 손해배상액은 변호사 수임료에 미치지 못하는 기백만원으로 하고, 원고는 위 금액을 수령하는 즉시 형사고소를 취소하기로 하여 조정이 성립되었다. 원고의 신분회복에 관한 소송이 남아있어서 비록 이 사건으로 발생한 모든 법적 문제가 다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양 당사자는 명예훼손이 관련된 사건임에도 비교적 차분한 웃음을 띄며 조정실을 떠났다.

4. 이 사건 조정의 의미
가. 소송에 임하는 대부분의 분쟁당사자들은 진실규명을 원한다. 특히,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에는 양측 모두 그러한 욕구가 더욱 크다. 법정에서야 설명이 불가능하겠지만, 조정절차에서는 소송에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한계와 절차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다. 절대적인 진실의 규명! 사법제도의 희망이며 가치 중 하나이겠지만,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고, 사법절차에 의하여 규명된 사실이 절대적 진실이라거나 진실에 기초한 모든 행위는 용납된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도 위험한 것임을 설명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분쟁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가치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나. 절대적 진실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입장을 바꾸어 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듣고도 입증하기 어려운 진실에 매달리는 당사자들도 적지 않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도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할 만한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 이 사건의 경우, 장기간의 진실게임으로 치닫게 될 사건을 신속하게 조정에 회부한 재판부의 판단, 분쟁의 실체를 진실규명에서 절차와 권한의 문제로 방향전환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양측 당사자들과 대리인들의 이해력과 결단력,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언한 조정위원의 포용력으로 신속한 사과와 소액의 금전배상이라는 합의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라.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였다. 말로 인한 분쟁은 역시 말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조정이야말로 당사자들이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합리적인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