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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사례

가족 간 분쟁 배경에는 많은 감정적 문제 도사려… 인간관계 회복 등 배려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 많아

이혼/가사/상속

1. 들어가며

가. 공자는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 하였는데, 이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겪는 일 중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익히 알고 있는 일임에도 절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에는 아무리 이순에 이른 사람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청천벽력을 당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나. 수명이 길어지면서 50~60대에 이른 사람들이 80~90대에 이른 부모님으로 인하여 겪는 비슷한 경험들을 심심치 않게 전해 듣게 된다. 그중 큰 어려움의 하나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이시는 어르신들의 불신이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고, 형제들간의 불화가 조장되기도 한다고 한다.

2. 사건의 개요

가. 원고는 둘째 사위를 상대로 고향에 있는 전답에 대한 가등기를 말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위 전답은 막내딸이 30년 전에 어렵게 일하면서 적금을 들어 부모님에게 구입하여 준 것인데, 둘째 딸 부부가 동사무소에 가자고 하여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며칠 뒤 등기부등본을 떼어보았더니 가등기가 되어 있었다고 하면서 원인무효이니 말소하라는 것이다.

나. 피고는, 원고의 막내딸 부부가 10여 년 전부터 피고가 구입한 아파트에서 원고를 모시고 거주하고 있는데 원고의 막내딸 부부가 위 아파트 구입을 위한 피고의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납부하여 주기로 하였으나,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10년 이상이 지나자 원고와 원고의 딸들이 상의한 후 위 전답에 가등기를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3. 조정의 경위

가. 재판부에서는 피고의 답변서가 접수된 후 위 사건을 조정센터에 조기조정으로 회부하였다.

나. 상임조정위원은 원고의 소장과 피고의 답변서를 읽은 후 원고의 주소지 소재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였는데, 10여 년 전 피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내용상 피고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겠으나, 연로한 원고가 그 경위를 모르고 인감을 발부하여 주었다면 이것도 가볍게 넘어갈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가족간의 많은 이야기를 끈기있게 들어주어야 할 사안으로 판단되어 서울지방법원 소속 조정위원 중 나이도 지긋하고, 평소 당사자들의 하소연을 끈기있게 잘 들어주는 조정위원으로 하여금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지정하였다.

다. 조정기일에는 원고와 원고의 장녀, 동거중인 막내딸 부부, 그리고 피고가 참석하였다. 원고에게는 딸만 셋이 있다고 하였는데,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원고는 시종일관 욕심이 많은 둘째 부부가 막내딸이 마련한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며 피고를 질타하였고, 상당히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낸 듯한 중년의 피고는 원고의 이러한 질책에 괴로운 듯 눈과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떨구고 앉아 듣고만 있었다. 한편, 큰 딸과 막내딸 부부는 원고를 말리지도 못하고 민망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막내딸 부부가 그 동안 경제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피고 부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였다. 원고가 소장을 접수하게 된 경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아니하였다.

라. 조정위원과 상임조정위원이 원고에게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원고는 30년전 어린 딸이 힘들게 벌어서 마련한 전답에 대한 애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피고 부부의 욕심만을 강조하며 들으려 하지 않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마.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피고가 원고가 저렇게 섭섭해 한다면 차라리 가등기를 말소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조정위원은, 피고의 아파트 임대료에 대하여는 원고의 막내딸 부부가 조정참가인으로서 지급을 약속하는 것으로 하는 방법을 제안하였는데 막내딸 부부가 당연하다면서 이를 받아들였고, 피고는 임대료의 상당한 금액을 양보하여 조정이 성립되었다.

4. 이 사건 조정의 의미

가.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청구한 대로 재판이 진행되어 판결이 선고될 수 밖에 없었다면 어떤 일이 초래되었을까? 원고가 법정에 참석하여 진술한다면 재판의 진행은 가능하였을까?

나. 재판부에서는 원고의 당사자로서의 소송능력에 문제를 제기하여 재판의 진행이 지연되거나 입증부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우 둘째 딸 부부를 향한 원고의 의심과 분노는 더 커지고, 원고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며, 원고의 딸들 사이에서도 섭섭한 감정이 커져갔을 것이다. 만약,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등기를 말소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다면 피고 부부로서는 10여년의 인내가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게 되어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커지거나 새로운 소송이 제기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원고와 자녀들 중 일부는 원고의 여생동안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기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다. 조정실에서의 대화는 가족간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내어 서로간의 오해, 오해가 발생하게 된 원인, 연로하신 집안 어르신의 상태를 배려한 해결방안을 찾아 가족간의 화합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라. 많은 재판부에서 가족간 분쟁을 조정센터에 회부하고 있다. 가족간 분쟁은 단순한 거래관계가 아니어서 그 배경에는 많은 감정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 해결책 또한 단선적이기는 어려운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 재산 분쟁을 넘어 인간관계의 회복 등 풀어야할 실타래가 한 보따리이고, 배려하고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 많아 실상 소송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단순한 소송물에 대한 승패의 판단은 새로운 분쟁, 감정적으로 깊은 단절과 원망 등 후유증을 발생시킬 수 있다.

마. 연로하신 장모님의 건강상태를 배려한 피고의 결단이 조정성립의 계기가 되었던 이 사건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가족간 재산분쟁에 어떻게 접근하여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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