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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05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 민사 채권

양창수 교수(서울대 법대)

1. 이행기 전의 이행거절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

채무자가 종국적으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한 사안에 대하여 종전의 재판실무가 ‘이행거절’을 이행불능이나 이행지체 등과 같이 그 자체로써 채무불이행책임을 발생시키는 독자적인 채무불이행유형으로 시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주요한 외국의 예나 근자의 세계적인 법통일작업의 성과들을 보면, 이행거절, 특히 이행기 전의 이행거절은 독자적인 채무불이행유형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민법에서도, 채무불이행의 객관적 유형으로 이행지체, 이행불능, 불완전이행의 셋만이 인정된다는 법률상의 근거도 없는 도그마에 사로잡히지 않고, 민법 제390조를 채무불이행에 관한 일반적·포괄적 규정으로 이해하여 위의 세 유형 이외에도 그와 구별되는 별도의 채무불이행유형을 합목적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면(이른바 ‘열린 類型論’), 이행거절을 독자적 채무불이행유형으로 파악하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생각된다.

大判 2005.8.19, 2004다53173(공보 하, 1498)은 우선 “계약상 채무자가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 채권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이행기 전이라도 이행의 최고 없이 채무자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채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에서 문제된 채무는 ‘2006년까지’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원고 앞으로 경료하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그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채무자가 그 전에라도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채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이행거절’에 해당함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또 바로 그것을 이유로 해서 해제 외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은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는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손해배상청구를 부인하였던 원심판결을 그와 같은 법리를 적용하여 파기함으로써 이제 판례상으로도 이행거절의 법리는 확립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만 위와 같은 법리는 민법 제390조의 해석으로 얼마든지 도출될 수 있으며, 이를 인정하기 위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않았나 생각된다.

2. 대항요건을 갖추기 전에 한 채권양수인의 소송제기와 시효중단

大判 2005.11.10, 2005다41818(공보 하, 1964)은 타당하게도 대항요건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권양수인이 채무자를 상대로 한 소송의 제기도 소멸시효의 중단사유가 된다고 한다. “채권양도에 의하여 채권이 동일성을 잃지 않고 양수인에게 이전되는 것은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인 점, 민법 제149조의 ‘조건의 성취가 미정한 권리의무는 일반규정에 의하여 처분, 상속, 보존 또는 담보로 할 수 있다’는 규정은 대항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채무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채권양도에 의하여 채권을 이전받은 양수인의 경우에도 그대로 준용될 수 있는 점, 채무자를 상대로 재판상의 청구를 한 채권의 양수인을 ‘권리 위에 잠자는 자’라고 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 원래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그 대항요건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위의 문제에 대한 판단 여하에 따라서 결론이 뒤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흠 있는 소송제기’의 시효중단효라는 보다 일반적인 문제(이에 대하여는 梁彰洙, 民法硏究, 제4권(1997), 73면 이하 참조)의 일환을 이룬다.

3. 대출명의의 대여와 법정대위자의 면책

大判 2005.5.12, 2004다68366(공보 상, 927)은, 변제자대위에 관한 민법 제481조, 제482조, 채권자가 담보권을 상실시킴으로 인한 법정대위자의 면책에 관한 제485조에 대하여 흥미있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갑 회사는 을 금고로부터 금전을 대출받으려고 하였는데, 그 대출에서 원고의 동의 아래 대출자의 명의를 원고로 하되 갑 회사와 원고 사이에서는 갑 회사가 원고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갑 회사의 지배주주 병 등은 위 차용금채무의 담보로 원고 등을 채무자로 한 근저당권을 을 금고 앞으로 설정하였다. 그 후 을 금고는 파산하였는데, 그 직전에 위 근저당권의 말소등기를 경료하여 주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을 금고의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청구를 하였다.

원심법원은, 원고의 차용은 가장행위에 해당하지만 민법 제108조 제2항에 의하여 이를 을 금고의 파산관재인에게 대항할 수 없으므로(이 점은 이미 大判 2003.6.24, 2002다48214(공보 하, 1581)가 판시하는 바이다), 그는 ‘변제할 정당한 이익’(민법 제481조)이 있는 지위에 있고, 따라서 만일 변제를 하였다면 갑 회사의 을 금고에 대한 채권 및 그를 위한 담보권을 취득하였을 것인데, 을 금고가 위와 같이 근저당권을 소멸시켰으므로, 그로 인하여 상환을 얻을 수 없게 된 범위에서 민법 제485조에 의하여 원고는 을 금고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실질적 법률관계를 기초로 판단하여 보면” 원고가 최종적인 변제책임을 지는 주채무자가 아니어서 변제자대위의 적격을 가진다고 판시하여, 피고의 이 부분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는 그렇다면 원고가 위 대출금채무에 대하여 보증인적 지위에 있으므로 민법 제482조에 의하여 물상담보제공자인 병 등에 대한 대위권 행사가 제한되어야 하고, 따라서 위와 같은 면책범위도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하여 원심법원은, 원고가 위 대출금채무에 대하여 보증인적 지위에 있지 않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大判 96.8.23, 96다18076(공보 하, 2847)을 인용하면서 원심판결의 이 부분 판결도 정당하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 판결의 결론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실질적인 관찰방법’을 관철하려고 하면, 적어도 민법 제485조를 포함하여 변제자대위의 문제에 관한 한 갑 회사가 주채무자이고 원고 및 물상보증인 병 등은 공히 말하자면 보조적 책임자로서 민법 제482조 제2항에서 정하여진 대위자 간의 제한을 인정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대법원이 인용하는 위의 大判 96.8.23.은 채권자와 대출명의대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대한 판결로서, 그 판지를 이 사건에서와 같이 법정대위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문제된 경우에 ‘형식적으로’ 원용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4. 임대차등기명령에 의하여 등기된 임차권의 법적 효력

大判 2005.6.9, 2005다4529(공보 하, 1120)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에 의하여 임차권등기가 행하여졌는데 그 후 임대차관계가 종료된 경우에 임차인의 임차권등기말소의무와 임대인의 임차보증금반환의무 사이에는 동시이행관계에 있지 않고 후자가 先履行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그 이유는, “임차권등기명령의 집행에 의한 임차권등기가 경료되면 임차인은 동법에 의한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취득할 뿐만 아니라, 그 임차인이 임차권등기 이전에 이미 대항력 또는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그 대항력 또는 우선변제권은 그대로 유지되며, 임차권등기 이후에는 동법 제3조 제1항의 대항요건을 상실하더라도 이미 취득한 대항력 또는 우선변제권을 상실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위 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는 이미 임대차계약이 종료하였음에도 임대인이 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상태에서 경료되게 되므로, 이미 사실상 이행지체에 빠진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의무와 그에 대응하는 임차인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새로이 경료하는 임차권등기에 대한 임차인의 말소의무를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것은 아니고, 특히 위 임차권등기는 임차인으로 하여금 기왕의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담보적 기능만을 주목적으로 하는 점 등”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이유제시는 수긍할 만하다.

또한 大判 2005.9.15, 2005다33039(공보 하, 1610)가 “임차권등기명령에 의한 임차권등기가 첫 경매개시결정등기 전에 행하여진 경우에는, 배당받을 채권자의 범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민사집행법 제148조 제4호의 ‘저당권·전세권, 그 밖의 우선변제청구권으로서 첫 경매개시결정 등기 전에 등기되었고 매각으로 소멸하는 것을 가진 채권자’에 준하여, 임차인은 별도로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배당받을 채권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것도, 기본적으로 위 大判 2005.6.9.과 같은 파악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된다.

5. 임대차보증금에서 차임 등의 당연 공제 여부

(1) 大判 2004.12.23, 2004다56554등(공보 2005상, 187)은 “부동산임대차에 있어서 수수된 보증금은 차임채무, 목적물의 멸실 훼손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 등 임대차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는 것”이라고 설시하고, 그러므로 “임대보증금이 수수된 임대차계약에서 차임채권에 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어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는 그 때까지 추심되지 아니한 채 잔존하는 차임채권 상당액도 임대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임대인인 원고가 임대차목적물의 반환을 청구한 데 대하여 피고는 보증금의 반환과 상환으로만 목적물을 반환하겠다는 동시이행의 항변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은 판시는 원고가 반환하여야 할 보증금액의 산정과 관련하여 행하여졌다. 즉 피고(임차인) 측에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차임채권에 대하여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었으므로 그 명령이 송달된 후의 차임은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원심법원은 임대인의 차임채권에 대하여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었더라도 추심권자가 변제를 받기 전에 임대차가 종료되어 임차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명도할 때에는 그 차임채권은 당연히 임대보증금에서 공제된다고 판시하여,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대법원도 위와 같이 설시하여 원심법원의 판단을 긍인하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종전에 대법원은 보증금반환청구권이 압류된 경우에 대하여는 임대차 존속 중의 차임 등 임대차 관련 채권뿐만 아니라 목적물의 반환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각종의 관련 채권(이하에서 보증금에 의하여 담보되는 채권으로는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단지 차임채권만을 문제 삼기로 한다)이 공제되고 난 잔액에 대하여만 효력이 있다는 취지를 여러 차례 밝혔음은 주지하는 대로이다. 그런데 위의 대법원판결은 보증금반환청구권이 아니라 차임채권이 압류된 경우에 보증금으로부터의 차임 공제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 드문 재판례에 속한다.

보증금이 교부된 경우에 임대인의 차임채권이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그로부터 만족을 얻는가에 대하여, 판례는 일관하여 ① 임대차관계 종료 후 임차인이 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반환하는 때에 ② 당연히, 즉 상계에서와 같은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으로부터 공제되고, 따라서 그 채권도 그 한도에서 역시 당연히 소멸한다는 태도를 취하여 왔다. 이는 大判 87.6.23, 86다카2865(공보 1229)에서 처음으로 정면에서 채택되었고, 그 후 大判 99.12.7, 99다50729(공보 2000상, 147)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와 같이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목적물을 반환하는 때에 차임채권이 당연히 보증금으로부터 공제되는 것은 보증금의 성질로부터 나온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이 보증금지급약정의 내용이다. 차임채권이 압류된 경우에도 그 압류의 대상이 된 것은 보증금에 의한 당연 충당을 예정한 채권이므로, 압류채권자는 그러한 제한을 받는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2) 위 大判 2004.12.23. 이후에도 보증금을 연체차임 등에 충당하는 것과 관련된 재판례가 없지 않다.

가) 大判 2005.1.13, 2004다19647(공보 상, 241)은 “임대차계약에서 보증금을 지급하였다는 입증책임은 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는 임차인이 부담하고, 임대차계약이 성립하였다면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에 기한 임료채권이 발생하였다 할 것이므로 임료를 지급하였다는 입증책임도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시는 입증책임의 분배에 관한 일반법리에 비추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하겠다.

이 사건에서도 앞의 大判 2004.12.23.에서와 유사하게 임대차의 목적물인 건물을 낙찰받은 원고가 임대차 종료를 내세워 그 건물의 명도를 청구한 데 대하여 임차인인 피고가 보증금의 반환과 상환으로만 목적물을 반환할 것을 항변한 듯하다. 원심법원은, 피고가 원래의 임대인에게 지급한 보증금이 그가 주장하는 1억7천만원이 아니라 5천5백만원인데, 아직 피고가 지급하지 아니한 차임이 6천1백여만원에 이르므로, 반환할 보증금이 없다고 하여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대법원은 위와 같이 판시하여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나) 또 大判 2005.9.28, 2005다8323등(공보 하, 1677)은 임대인인 원고가 임차인인 피고에 대하여 임대차계약상 지급이 약정된 월 관리비의 지급 및 목적물의 인도를 청구하자, 피고가 반소로 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한 사건에 대한 것이다. 대법원은 우선 “임대차계약에 있어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계약 종료 후 목적물을 임대인에게 명도할 때까지 발생하는, 임대차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되는 것이므로, 임대인은 임대차보증금에서 그 피담보채무를 공제한 나머지만을 임차인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설시하면서 앞서 본 大判 2004.12.23.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어서 “이 경우 임대차보증금에서 그 피담보채무 등을 공제하려면 임대인으로서는 그 피담보채무인 연체차임, 연체관리비 등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야 하고, 나아가 그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될 차임채권, 관리비채권 등의 발생원인에 관하여 주장·입증을 하여야 하는 것이며, 다만 그 발생한 채권이 변제 등의 이유로 소멸하였는지에 관하여는 임차인이 주장·입증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서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될 차임채권, 관리비채권 등의 발생원인에 관하여 임대인이 주장·입증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뒷부분의 판시는 이미 大判 95.7.25, 95다14664등(공보 하, 2951)이 같은 뜻을 밝힌 바 있으며, 이에 대하여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문제는 그에 앞서서, 보증금에서 그 피담보채무 등을 공제하려면 임대인이 연체차임, 연체관리비 등을 임대차보증금에서 공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야만 한다는 판시부분이다. 그리하여 위의 대법원판결은 이 사건에서 “원고는 원심 변론종결에 이르기까지 … 임대차보증금에 대하여 아직 피고로부터 지급받지 아니한 차임, 전기료, 수도료, 난방비, 관리비 등을 공제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전혀 한 바 없고, 단지 본소로써 연체 관리비의 지급과 목적물의 명도를 구하고 있었을 뿐인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원고가 상고이유로 내세우는 주장은 상고심에 이르러 비로소 내어놓은 것임이 명백하여 원심판결에 대한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여 원고(반소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런데 앞의 大判 2004.12.23. 등에서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연체차임 등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증금에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당연히 공제된다고 설시한 것과 여기서 “임대인이 연체차임 등을 공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야” 보증금에서 차임채무 등이 공제된다는 것은, 마치 시효완성으로 인한 채무의 소멸에 관한 이른바 절대적 소멸설에서와 같이, 전자의 실체적 효력과 후자의 소송상 주장으로서 서로 양립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인가?

6. 신용카드거래가 미성년을 이유로 취소된 경우 원상회복의 내용

大判 2005.4.15, 2003다60297(공보 하, 735)은, 미성년자가 신용카드발행인과 사이에 신용카드이용계약을 체결하여 그 신용카드를 이행하여 가맹점으로 물품을 구입하는 등의 거래를 하였는데 후에 신용카드이용계약이 행위무능력을 이유로 취소된 사안에 대하여, “미성년자는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는데, 신용카드이용계약이 취소됨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회원과 해당 가맹점 사이에 체결된 개별적인 매매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용카드이용계약 취소와 무관하게 유효하게 존속한다 할 것이고, 신용카드발행인이 가맹점들에 대하여 그 신용카드사용대금을 지급한 것은 신용카드이용계약과는 별개로 신용카드발행인과 가맹점 사이에 체결된 가맹점계약에 따른 것으로서 유효하므로, 신용카드발행인의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이용대금의 지급으로써 신용카드회원은 자신의 가맹점에 대한 매매대금지급채무를 법률상 원인 없이 면제받는 이익을 얻었으며, 이러한 이익은 금전상의 이득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에 대하여는 평석 내지 해설이 없지 않다.

그런데 필자는 결론적으로 이 판결의 취지에 반대한다. 이 사안에서는 신용카드회원은 매매대금지급채무를 면제받은 이익을 얻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단적으로 그 대금 상당의 금전을 부당이득하였다고 파악할 것이고, 그 금전이득의 ‘현존’ 여부를 그로써 취득한 물품의 실제적 효용성 등의 관점에서 판단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위 판결과 같은 태도에 의하면, 현존이익의 이른바 추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쉽사리 상정할 수 없으며, 이는 민법 제141조 단서가 행위무능력자의 원상회복의무를 현존이익에 제한하는 취지를 잘 살릴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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