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구논단

ESG투자 의무화에 대한 시론적 고찰

176615.jpg

Ⅰ. 서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ESG투자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달라진 투자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두고 기업과 투자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SG투자'는 재무지표와 함께 환경보호 노력(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의 이행(Social), 그리고 지배구조의 적정성(Governance)을 기업평가에 반영하는 투자방식을 뜻한다. 무형자산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후위기의 가시화로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지자 감(感)의 영역이었던 비재무정보의 해석을 계량화하여 판단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이다.

일각에서는 차제에 연기금의 ESG투자를 의무화하자고 주장한다. 국민연금법과 국가재정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기금평가에 ESG투자수준을 반영하면 자본시장 전반으로 ESG투자기조가 확산하리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기대했던 성과를 가져올지는 확실치 않다. ESG투자를 하려는 이유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성숙하지 않았고 손쉽게 연기금의 지배력을 이용하려는 점에서 ESG투자를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려면 ESG투자가 ①이해관계자주의의 확산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로 보아야 하는지, ②간접주주의 투자기준으로 적합한 것인지, 그리고 ③지속적인 투자방식으로 자리를 잡을 것인지가 다각도로 논의되어야 한다. 차례대로 살펴본다.


Ⅱ. ESG투자가 이해관계자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가?

최근에 ESG시장으로 자금이 쏠리는 이유를 자본주의에 대한 각성이나 가치소비 기조의 확산에서 찾는 견해는 이해관계자주의(stakeholderism)에서 ESG투자의 당위성을 찾는다.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것은 주주와 이해관계자가 공유할 이윤의 몫을 키워주므로 상생관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기업가치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투자자에게도 이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단계에서 ESG를 강조함으로써 기업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사업구조를 갖추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ESG를 투자변동성 관리수단으로 이해한다면 이해관계자주의로의 전환이 ESG투자의 필수적 전제라고 보긴 어렵다. 첫째, 주주자본주의를 견지하더라도 장기적 주주가치의 진작(계몽적 주주가치론)이나 주주 후생 극대화(주주후생이론)의 관점에서 ESG투자를 설명할 수 있다. 둘째, ESG투자의 성패는 수익의 장·단기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달렸지만 이해관계자주의는 장기 이윤의 우월성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장기 이익을 과도하게 할인하는 단기실적주의를 지양하자는 것이 단기 이익의 포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투자자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할 때 단기 이익의 확보는 여전히 중요하다. 셋째, 주주인 기관투자자가 ESG투자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주주를 정점으로 하는 회사 조직의 위계(hierarchy)가 바뀌거나 주주의 몫을 줄이면서까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이해관계자주의와 ESG투자는 장기 이익과 이해관계자와의 성과공유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 지향을 같이하지만, 이해충돌의 해결기준과 이해관계자의 직접적 의사반영 가능성에 대해 관점의 차이를 보인다.


Ⅲ. ESG투자와 신인의무 사이의 긴장관계는 해소되었는가?
1. 신인의무의 새로운 해석 가능성

전통적으로 기관투자자는 규범적 가치를 투자기준으로 삼는 데 소극적이었다. 수익성을 요구하는 신인의무(fiduciary duty)에 저촉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ESG투자를 옹호하는 견해는 ①수익성을 강조하는 투자방식의 속성상 신인의무와의 긴장관계는 해소되었고, ②신인의무의 내용이 '위험의 회피'에서 '관리'로 변화한 오늘날에는 비재무정보를 투자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위험의 '적정한 관리'와 수익자 이익의 '적극적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2. 검토
(1) ESG투자와 주의의무

신인의무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견해는 허용되는 위험의 범위가 수범자마다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되는 이사와 달리 맡겨진 자금을 운용해서 높아진 수익을 되돌려주는 것이 유일한 책무인 기관투자자는 '신탁약정의 달성'이라는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재량권을 가진다. 따라서 ESG를 경영기준으로 삼을 때와 투자기준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같은 잣대로 설명할 수 없다. 더욱이 ESG는 기업의 선행에 바탕을 두는 주관적 지표라서 신용평가등급처럼 사례를 축적하여 평가값 사이의 낮은 상관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 즉, ESG의 내용과 우선순위를 두고 제각각인 선호를 하나로 수렴하기 어려워 간접주주에게 요구되는 판단기준의 객관성을 충족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2) ESG투자와 충실의무

ESG를 명분으로 내려진 투자결정의 정당성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수익자의 이익을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신인관계 책임구조의 핵심이므로 수익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ESG투자를 결정하는 배타적 동기여야 하는지(배타적 이익의 원칙), 아니면 수익자의 이익 추구가 주된 동기이기만 하면 ESG투자의 정당성을 인정할 것인지(최상의 이익 원칙)가 쟁점이다. ESG투자를 옹호하는 견해는 후자의 입장에 서더라도 충분히 수익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신인관계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충실의무를 유연하게 해석하려면 적어도 수익자의 동의나 개입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수익자가 펀드 설정계약을 변경하거나 투자를 회수할 권한을 가졌거나, 공익신탁과 같이 때론 성과에 구애받지 않는 투자결정도 용인하겠다는 수익자의 특별한 동의를 추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탁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신인관계를 해소하기도 곤란한 연기금의 ESG투자에는 최상의 이익 원칙이 적용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수익자의 범위를 납세자까지 확장하거나 보편적 투자자(universal owner)인 연기금의 속성상 수익자의 동의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①정부가 책임준비금의 재정결손을 법적으로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면 납세자를 기금운용의 최종 수익자로 보긴 어렵고, ②책임자산의 수익성 제고라는 목표와 다른 수익자의 의사를 추론하기도 쉽지 않아서 기업이나 통상의 기관투자자와의 관계에서처럼 주주 후생의 개념을 원용하기도 곤란하다.


Ⅳ. ESG투자 의무화의 투자정책상 한계

연기금의 ESG투자를 의무화하는 것은 투자자의 초과수익을 어렵게 한다.

첫째, 특정 지표의 활용을 강제하는 것은 기업가치를 과도하게 할인하거나 할증하게 만들어 투자자의 분산투자를 실질적으로 제약한다. ESG투자수준을 기금평가지표에 반영하면 운용자는 ESG등급에 의존하는 투자행태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ESG를 모두 잘하는 기업이 반드시 투자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 기업에 따라 성과에 영향을 주는 지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석연료산업은 환경오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관건이지만 금융산업은 개인정보 보호나 독과점 해소가 기업가치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지표를 개별화하지 않고 단순히 평가순위에 얽매인 투자를 하게 만드는 것은 기대수익을 동반하지 않고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다.

둘째, 기업가치와 투자가치가 항상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ESG가 기업가치를 높인다고 가정하더라도 주식시장의 가격괴리(mispricing)에 착안하는 투자의 속성상 높아진 기업가치가 반드시 상응한 초과수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죄악주(sin stocks)의 높은 수익성은 투자수익이 꼭 기업의 ESG수준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ESG가 수익성을 높이는 지표로 꾸준히 변별력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초과수익률은 위험도에 비례하므로 ESG가 투자위험을 낮춘다고 보면서도 ESG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면 좋은 수익을 얻는다고 설명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욱이 투자자가 ESG에 민감해질수록 그 정보는 주가에 반영될 확률이 높아지므로 시장이 ESG에 관심을 가질수록 투자자의 기대수익은 같거나 더 낮아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 연기금은 운용자산을 대부분 패시브로 운용하는데 ESG투자를 의무화하면 ESG와 관계없이 시장지수에 따라 매매가 결정되는 패시브 투자를 부당하게 제약하게 된다.


Ⅴ. 결론

글로벌 투자자의 ESG투자가 주주가치와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아울러 살핌으로써 수익성을 높이려는 것임에 비해 우리는 특유의 지배구조문제가 있어 이러한 방식의 투자가 일자리(S)와 재벌개혁(G)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거나 지배구조위험을 분식하는 방편으로 전용될 위험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ESG는 그 자체로 투자목적이 되고 기업가치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므로 이를 활용한 투자는 투자위험의 관리라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ESG투자가 지속되려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사회적 가치 추구를 명분으로 판단을 고착시키기보다는 ESG투자의 작동방식을 면밀히 분석하여 수익 기회를 발굴하고 장·단기 이익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우영 외국변호사(국민연금공단·미국 뉴욕주·법학박사)

 

 

* 이 글은 소속기관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며 상세한 논증은 장우영, "기관투자자의 ESG투자와 지속가능성",  「기업법연구」 제35권 제3호(2021. 9)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