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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대법원의 조직과 상고제도의 과거,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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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 역사적 고찰의 필요성

대법원이 지니는 중대한 사명은 법령해석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을 구현하기 위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제도적 변화들이 있었다. 최근에도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 방안들이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었던 제도를 변용하거나 수정한 것임을 기억한다면, 그 역사를 상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상고제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얻고 향후 논의의 주춧돌을 놓고자 한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대법원의 조직과 상고제도의 변화: 역사적 제도주의의 관점에서', '사법' 통권 55호(사법발전재단 발행)를 참고하길 바란다.


Ⅱ. 일제강점기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압한 후 1907년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으로 대심원을 설치하였다. 대심원은 한 개 또는 수 개의 민사부 및 형사부를 두고, 부는 5인의 판사로 조직하며, 기존 판례와 다른 의견이 있는 경우 연합부에서 재판을 하도록 정해졌다. 당시 일본 대심원은 프랑스 파기원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었고, 우리나라 대심원도 유사한 체제로서 대륙법계 최고법원의 구성원리를 따르게 된다.

1909년 대심원을 조선고등법원으로 개칭하였는데, 조직과 운영은 예전과 같았다. 1920년 조선고등법원 판사 정원은 8명(원장 1명, 부장 1명, 판사 6명)이었고, 점차 증원되어 1943년에는 11명(원장 1명, 부장 2명, 부원 8명)이 되었다.


Ⅲ. 미군정기

해방 이후 미군정은 조선고등법원을 대법원으로 개칭하고 사법제도를 정비하였다. 1947년 법원 내에 법원조직법 기초위원회가 설치되어 과도법원조직법을 성안하였는데, 그 초안은 대법원에 대법관과 판사를 두어 이원적으로 구성하고, 대법관 3~4인과 판사 1~2인, 총 5인으로 구성된 부에서 원칙적 심판을 하되, 예외적으로 연합부에서 심판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청의 영향 속에서 법원조직법 기초위원회가 최종 의결한 안은 대법원을 대법관으로만 일원적으로 구성하고 대법관 정원은 11명으로 제한하는 안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구성원리가 일부 도입된 것이다. 다만 원칙적으로 부가 심판하는 운영방식은 유지하였다.

미군정청은 당초 미국과 유사한 상고허가제를 도입하고자 하였으나, 법원조직법 기초위원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였고, 결국 절충적인 방안으로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안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내용의 과도법원조직법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구성원리와 대륙법계 최고법원의 운영방식을 절충적으로 혼합한 것이었다.


Ⅳ.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법원조직법이 제정된다. 대법관 정원은 9명으로 더욱 제한하였고, 고등법원 상고부를 폐지하여 상고사건을 모두 대법원이 담당하도록 하였다. 법관을 원활하게 충원하지 못한 당대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따른 업무부담의 증가는 상고제도 개선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1959년 대법원을 이원적으로 구성하게 되었다. 당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대법관 증원안(15인)을 본회의에 회부하였으나, 대법원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국회는 대법원의 의견에 따른 이원적 구성안(대법관 9인 + 대법원판사 11인)을 의결하였다.


그러나 대법관만으로 이루어진 대법관부와 대법관과 대법원판사로 구성된 혼성부가 업무를 분담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복잡한 체계를 필요로 하였다. 결국 운영상의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해 대법원판사 전원을 대법관직무대리로 발령하였고, 대법원은 이원적 구성 방식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대법관을 증원하는 방향을 모색하였다.


Ⅴ. 1961년부터 1979년까지

1961년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따라 대법관직이 폐지되고 대법원은 대법원판사로만 구성되었다. 이어서 개정된 법원조직법은 이원적 구성을 폐지하고 대법원판사를 9명으로 줄이며 대법원판사의 직무대리 근거조항을 삭제하였다. 또한 합의부, 연합부를 폐지하고 전원합의체만 운영하였으며, 고등법원 상고부를 설치하여 단독판사 관할 제1심 사건의 상고사건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미국 연방대법원에 가까운 체제가 도입되었으나, 전원합의체 운영의 효율성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군부세력의 압박으로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되었지만, 대법관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또한 고등법원 상고부에 대해서는 법령해석의 통일을 기하기 어렵고 국민의 권리실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1962년 헌법은 "대법원에 부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이에 따라 1963년 개정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에 부를 다시 설치하고 고등법원 상고부를 폐지하였으며 대법원판사를 12명으로 증원하고 재판연구원제도를 신설하였다. 전원합의체 심판을 원칙으로 하면서 구성원의 의견이 일치한 경우 부가 심판할 수 있는 구조가 이 때 형성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1969년 대법원판사를 16명으로 증원하였고, 1975년 대법원 재판연구원을 재판연구관으로 개칭하며 그 조직이 점차 확대하였다.


Ⅵ. 1980년부터 1987년까지

1980년에는 민주화의 기대 속에서 상고제도에 관한 깊은 논의가 진행되었다. 국회 개헌특위는 대법원을 이원적으로 구성하는 헌법개정시안을 마련하였으나, 쿠데타 이후 진행된 헌법개정심의위원회는 이원적 구성 여부와 대법관 증원 여부에 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 입법에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가능성을 열어둔 헌법 조항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1년 기존 논의와 다르게 상고허가제가 도입되었고, 대법원 정원도 대법원장 1인, 대법원판사 12인으로 감축되었다. 대법원의 각 부가 상고허가신청사건을 나누어 심리하였는데, 원심판결의 파기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상고허가 여부를 결정하였기에 상고허가율은 10% 정도로 낮았고 사건처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1987년 1월부터 상고허가신청 전담부를 설치하였고, 미제건수를 크게 줄이는 등 상당히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상고허가 후 본안에서 상고를 기각하면 패소 당사자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상고허가신청 전담부는 약 2년 만에 폐지된다.


Ⅶ. 1988년부터 2021년까지

1987년 민주화 이후 개헌 과정에서 대법관 명칭을 부활시키고, 대법관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며, 행정·조세·노동·군사 전담부 조항을 폐지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무렵 상고허가제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더욱 커졌다. 상고허가제는 결국 1990년 폐지되었다.

그 후 대법원은 상고허가제의 단점을 보완한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였고, 1994년 심리불속행제도가 입법되었다. 이 때부터 2021년까지 대법원의 조직과 상고제도는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심리불속행제도는 상고기각의 이유를 알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제도가 단순하고 간명한 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상고허가제보다 두텁게 보장하는 점, 대법원의 판단이 일원적으로 진행되어 효율적인 점 등이 긍정적인 측면이다.


Ⅷ. 상고제도의 역사적 교훈들

이러한 상고제도를 변경하고자 한다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미 폐지된 제도들의 경우 과거의 실패에 대한 명확한 검증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즉 ① 고등법원 상고부 제도는 업무부담의 증가량과 처리방안에 관한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고, ② 상고허가제 등은 국민적 동의를 얻는 동시에 심리불속행제도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③ 이원적 구성 방안은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를 피해야 하고, ④ 부 중심의 대법관 증원안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전체 법질서의 조화를 이루려는 헌법적 요청을 고려해야 한다.

반추를 통해 미숙했던 제도적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탐구의 규범적 의미일 것이다.


Ⅸ. 결론: 제도개선의 방향

제시되는 대안들이 과거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오랜 기간 균형을 이루며 다듬어진 현재의 체제를 수정·보완하는 방안을 찾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먼저 업무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상고이유와 심리불속행사유를 더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하는 방법, 심리불속행 판결의 기간 제한(현행 4개월)을 완화하여 활용 폭을 넓히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한편 상고심 재판역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비법관 재판연구관 확대, 재판연구원들의 역량 활용 등이 있다. 이 방법만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헌법에 근거를 둔 이원적 구성을 제한적으로 도입하여 '신건심사부' 등에 일정한 역할을 맡기는 방법도 구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헌법적 층위에서 다시 충실한 논의를 진행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법철학을 가진 대법관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소수자의 인권을 실현하는 것이 헌법이 부여한 대법원의 사명이고, '법의 지혜'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일이 상고제도 개선 논의의 과제임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공두현 교수(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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