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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독일정부의 문화재 취득 관련 '주권면제' 인정 여부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 Federal Republic of Germany et al. v. Philipp et al., 592 U.S.(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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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

이 판결의 상고인들은 독일 연방정부 및 그 정부기관인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Stiftung Preussischer Kulturbesitz)이고, 피상고인들은 신성로마제국 초기 시대의 독일 문화재인 Welfenschatz(이하 '이 사건 문화재')를 소유하였던 유대인들의 후손들로서 그 중 2명은 미국국적자이고 1명은 영국국적자이다. 바이마르 시대 후기에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소유한 세 미술회사는 콘소시엄을 구성하여 브룬스빅 공작으로부터 이 사건 문화재를 구입하였다. 콘소시엄은 1931년 무렵까지 이 사건 문화재의 절반 정도를 미국이나 유럽의 박물관, 개인 등에게 매각하였고, 1935년에는 프로이센 주에 남은 이 사건 문화재를 매각하였다. 피상고인들은 헤르만 괴링의 정치적 박해와 물리적 협박에 의해 콘소시엄이 보유하고 있던 이 사건 문화재를 당시 시가의 3분의1 수준으로 프로이센 주에 매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독일 내에서는 이 사건 문화재의 매각이 협박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정당한 가격에 의한 거래라는 이유로 그와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피상고인들은 워싱턴 DC의 연방지방법원에 독일 연방정부 및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에 대하여 2억 5000만 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독일 연방정부는 주권면제에 따라 미국 연방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없으므로 각하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다투었다. 연방지방법원 및 연방항소법원은 독일 연방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독일 연방정부는 상고하였다.



[쟁점과 법원의 판단]
1. 외국주권면제법(FSIA)의 주권면제 예외 규정 및 대상판결의 쟁점

외국주권면제법(The 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 FSIA)은 원칙적으로 외국국가는 미국 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가면제 내지 주권면제를 규정하면서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에 관하여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28 U.S.C. §1605(a)(3)의 '수용의 예외(the expropriation exception)' 규정으로, 그 규정은 "국제법을 위반하여 수용된 재산에 관한 권리가 쟁점이 되고, 그 재산 또는 그 재산과 교환으로 취득한 재산이 외국국가의 미국 내 상업활동과 관련하여 미국에 존재하는 경우"에 주권면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위 규정 중 특히 '국제법을 위반하여 수용된 재산에 관한 권리가 쟁점이 되는 경우'의 해석이 대상판결의 쟁점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위 규정에서 말하는 국제법은 국제재산법을 말하는 것이고, 국제재산법에 의하면 국가가 자신의 국적자가 소유한 재산을 수용하는 것은 오로지 국가 내의 국지적 문제이므로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독일 연방정부가 주장하는 '국내수용의 법리(the domestic takings rule)'는 한 국가가 그 국가 내에서 자신의 국민이 소유한 재산을 취득 또는 처분하는 것은 국제법의 규율 대상이 아니라는 법리이다. 이에 대하여 피상고인들은 위 규정에서 말하는 국제법에는 제노사이드 금지와 같은 국제인권법도 포함되고, 프로이센 주가 이 사건 문화재를 취득한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제노사이드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결국 이는 주권면제의 예외에 해당하여 미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2. 대상판결의 판단

미국 연방대법원은 독일 연방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내수용의 법리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가 이 사건 문화재를 취득한 것은 외국주권면제법의 수용 예외 규정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미국 법원에는 이 사건에 관한 재판관할권이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관 만장일치). 그 자세한 근거는 아래와 같다.

 

가. 국내수용의 법리(the domestic takings rule)에 관한 법률적·역사적 배경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 관하여 규율하는 것인데,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외국인이 소유한 재산을 수용하는 것은 그 외국인의 국적 상태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국제법의 규율대상으로 인정되었지만, 이와 달리 국가가 자신의 국민이 소유한 재산을 수용하는 것은 국가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국제법 규율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국내수용의 법리는 현대의 국제법이 국가가 개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규율하도록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국제법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쿠바가 미국인들의 설탕산업 관련 재산을 국유화하는 행위에 대하여 미국 법원에 소송이 제기된 Sabbatino 사건에서 어떤 국가가 외국인이 소유한 재산을 수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외국국가의 공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미국 의회는 위 판결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고, 해외원조법(the Foreign Assistance Act of 1964)을 개정하여 미국인이 소유한 재산을 다른 국가가 수용하는 경우 그 국가에 대한 재판관할권이 미국 법원에 있음을 명확히 하였는데, 그럼에도 이는 국내수용의 법리를 변경하거나 폐지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위와 같은 개정 법률의 내용이 외국주권면제법의 수용 예외 규정으로 그대로 반영되었다.

 

나. 수용의 예외(the expropriation exception)와 제한적 주권면제이론
외국주권면제법의 수용 예외 규정에서 말하는 '국제법 위반'에는 국제재산법 위반만이 포함될 뿐 제노사이드 위반과 같은 국제인권법의 위반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위 예외 규정의 문언 자체에 의하더라도 그 규정은 재산이나 재산권에 관하여만 언급할 뿐 제노사이드와 연관된 행위나 피해에 대하여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만약 피상고인들의 주장과 같이 수용의 예외 규정이 국제인권법 위반까지 포섭한다고 해석한다면 오히려 이는 법원으로 하여금 국내수용의 법리라는 국제법을 위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외국주권면제법은 기본적으로 외국국가의 공법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를 구분하여 국가의 공법적 행위에만 주권면제가 적용된다는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주권면제법의 수용 예외 규정은 이러한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을 넘어 외국국가의 공법적 행위에 대하여까지 미국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는바 이는 미국만의 독특한 이론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국주권면제법이 근거하고 있는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의 이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데, 만약 피상고인들의 해석론에 따른다면 수용의 예외 규정이 모든 인권침해행위와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미국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됨으로써 외국국가의 공법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의 구분을 전제로 하는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에 반하게 될 우려가 있다.


다. 타 예외 규정 및 법률과의 비교

외국주권면제법의 다른 예외규정을 보더라도 인권침해행위와 관련하여 주권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들의 경우[예를 들어 비상업적 불법행위 예외규정(the noncommercial tort exception, §1605(a)(5)) 및 테러리즘 예외규정(the terrorism exception, §1605A(a), (h))]에는 수용의 예외 규정과 달리 인권침해행위 및 그 피해, 구제방법 등에 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본건과 같은 외국국가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검토함에 있어서 상대방 국가와의 상호적 관계, 또는 그 국가가 미국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할 가능성 등에 대하여도 고려하여야 한다. 한편, 피상고인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 행위와 관련한 적극적 보상을 인정하는 법률들을 근거로 미국 연방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법률들은 주권면제에 관한 법률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법률들만으로는 앞서 본 외국주권면제법의 수용 예외 규정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수 없다.


[나가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면제 내지 주권면제에 관하여 별도의 법률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영토 내에서 행하여진 외국의 사법적 행위가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당해 국가를 피고로 하여 우리나라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대법원 1998. 12. 17. 선고 97다3921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을 채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법원에 외국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의 재판관할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법원의 해석에 맡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근래에 주권면제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소송이 계속 중이고 이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도 뜨거운 것으로 보인다. 대상판결은 미국의 주권면제에 관한 법률과 이론에 관한 논의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권면제이론을 논의하는 데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재찬 연구위원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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