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구논단

인공지능의 발전, 계약법은 무엇을 할 것인가

169868.jpg

1. 문제의 제기

인공지능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도 빠르게 스며들어 인공지능을 이용한 거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기존 법질서에서 예상하지 못하였던 인공지능의 출현은 계약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계약법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동안 계약법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계약의 성립, 계약 효력의 귀속 등을 설명하고 계약 책임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등의 문제를 다루어왔다. 그런데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그 사용빈도가 늘어나면서 인공지능은 계약법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법적인 개념이 아닌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하고 그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의 한계만을 주목하며 그 잠재력을 무시하는 것도,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전제하는 것도 법적 논의를 발전시키기에 적절한 출발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의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 표준은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하는 '합리적 에이전트(rational agent)'였다. 다만, 모든 경우를 예상하여 기계에 목표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인공지능의 행위가 인간이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논의에 상응하여 이하에서는 인공지능을 '복잡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일정한 자율성을 가지고 최적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기술'로 이해한다. 다만, 인공지능이 그 자체의 고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점검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할 것이다.


2. 사적자치의 원칙과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 제고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법률관계 형성이라는 가치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약의 체결 여부 및 내용, 상대방 결정이 인공지능의 몫이 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고 알고리즘이 상품을 추천하는 경우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다. 추천의 근거를 알기 어려운 당사자로서는 인공지능의 결정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고 인공지능의 추천을 따를지 여부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미 계약 자유의 의미는 전과 같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활용과 관련하여 사적자치의 원칙 또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수정되어야 하는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진정한 자기의 자유의사에 따라서 거래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인은 인공지능을 활용함으로써 활동범위와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리제도를 이용함으로써 자치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할지 여부를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다만, 인공지능이 우리의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주고 활동 범위를 확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정확하고 공정하며 안전해야 하고 이를 이용하는 인간을 위하여 행위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공지능의 신뢰도를 담보하기 위한 기술적인 연구는 다각적으로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검사와 타당성 검증(verification and validation), 인공지능 인증제도,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등에 대한 개발이 활발하다. 향후 법제도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여야 한다. 상품 추천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하거나 순위 왜곡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 사업자들에게 검사와 타당성 검증을 거친 인공지능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특정한 거래에는 인증받은 인공지능만 활용하도록 하는 것 등을 고려할 수 있다.


3. 계약의 비대칭성과 공정성 확보

인공지능 기술은 진화하고 있고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는 인간에 비하여 훨씬 우월한 능력을 보인다. 이에 비해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일방 당사자가 이용하는 인공지능의 능력이 상대방이 이용하는 인공지능에 비하여 매우 우월한 경우는 어떠한가?

 
인공지능이 개입된 계약의 비대칭성이 사회질서에 반하는 정도가 된다면 계약의 효력이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향후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커지면 계약 상대방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활용이 점차 확대되는 이유를 생각하면 바로 그 합리성을 이유로 인공지능이 개입된 계약을 무효화시키는 것보다는 가급적 그 효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약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계약 체결 때 상대방이 인공지능인지 또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자인지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이 개입된 거래에 참여하는 상대방에게 거래를 계속할 것인지, 자신도 유사한 방식의 조력을 받을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이 사용하는 인공지능이 어떠한 종류의 인공지능인지,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필요할 수도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이 특정 계층에만 독점되지 않도록 접근가능성을 높이고 인공지능의 합리성이 일방 당사자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작용하도록 설계하여야 한다. 어떤 인공지능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일방 당사자에게만 유리하고 그렇지 못한 상대방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을 야기한다면 우리 법질서에서 해당 인공지능의 활용을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도구로서 계속 활용되려면 계약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상호 대립적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를 위한 공동 목표를 가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목표 설정 때에도 이러한 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4.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인정할 것인가?

최근에는 상당한 자율성과 합리성을 가지는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계약법상 논의는 인공지능에 헌법상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이른바 '전자인'을 도입함으로써 인공지능이 사법(私法)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도록 하여 법적 안정성을 담보하고 책임관계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우리 계약법상 그 필요성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기술적으로 인공지능의 자율성이 법인격을 인정할 만한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하여, 또는 법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에 법인격을 인정한 다른 예가 있었다고 하여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인정할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은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게 법인격을 인정한 것 이상으로 우리 민법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법적인 주체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설명을 편리하게 하거나 이론적인 정합성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적인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숙고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계약에서 의사표시의 귀속을 간명하게 설명하고 계약 위험을 적절하게 분담하기 위해서라면 인공지능을 인간의 의사표시를 위한 도구로 보거나 민법상 대리법리를 유추적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나아가 인공지능을 민사상 책임의 귀속 주체로서 인정하기 위해서는 관련 문제의 책임 귀속과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률적인 법인격 논의보다는 빈번하게 문제가 되거나 큰 피해가 예상되는 개별 분야에 대한 사회경제적·법적인 검토를 통하여 책임 귀속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접근이라고 하겠다.


5. 결론

인공지능의 발전은 계약의 태양을 변화시키고 계약 자유의 원칙이나 계약의 공정성 등 계약법의 근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답변에 앞서, 기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을 거래에 이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신속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거래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려면 관련 기술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계약법은 기술의 발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과 활용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변화된 사회 현상에 대응하여 이들 거래의 신뢰와 공정성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계약 당사자들을 위한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의 실질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 등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장보은 교수(한국외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