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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집단소송제 마련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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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식 대표당사자소송제의 수용에 대한 논의

우리는 근 40여년 동안 미국식 대표당사자소송제(class action)의 수용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다. 하나의 제도에 대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논의를 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 입장이 반복되던 중 외환위기로 우리나라가 세계은행(IBRD)이 제시한 미국식 대표당사자소송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제정되었다. 제정 과정에서 재계에서는 증권관련집단소송제가 소송제도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집중하였고 도입을 찬성하던 측은 장식적 의미로 전락할 제도의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2. 이른바 2단계 집단소송제도에 대한 논의

증권관련집단소송제(미국식 대표당사자소송) 도입 후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것을 경계하는 측에서는 프랑스, 독일, 일본의 예를 들며 2단계 집단소송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2단계 방안이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제를 논의에서 배제하려는 각국의 내부 사정 때문에 우회로로 채택된 것이라는 점이다.

 
2단계 집단소송제는 새로운 방안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독일식 단체소송에 확인소송과 시험소송의 성격을 가미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단체소송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는 유럽연합 내의 학자나 실무가들이 미국의 대표당사자소송이 고비용이면서 효과가 크지 않아 소비자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거나 미국의 대표당사자소송이 도입되면 미국 로펌들이 유럽의 법률시장을 장악하여 성공보수 등의 경제적 이익을 취할 것이라는 우려를 대변한다.

 
이에 대하여 유럽연합 내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소송비용이 패소자부담이며 거액의 성공보수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영국 외에는 개시절차(discovery)도 드물게 행해지므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의견도 있다.

 
2단계 소송의 대표인 독일의 확인대표단체소송(Musterfeststellungsklage)의 1단계에서는 가해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데 그친다. 피해자들은 1단계 소송을 수행하는 단체에 개별적으로 사건을 위임하거나 단체가 수행하는 소송에 제외신고(opt-out)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2단계 방안은 제외신고의 기회를 주는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 이상으로 입법으로 민사소송법상의 당사자주의(특히 처분권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피해자 개인들은 2단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청구를 할 수 있다. 2단계가 1단계에서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한 것을 전제로 별도로 본안청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 대표당사자소송의 분배절차처럼 본안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방안은 1단계에 단체가 소송을 수행하고 2단계에 피해자 개인들이 개별소송을 다시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집단분쟁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동적인 원고의 특성을 외면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소액다수(少額多數) 피해의 경우 1단계에서 자발적으로 소송을 수행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하는 1단계의 권리확정절차가 있었다고 하여 소송수행능력이 추가로 생기는 경우는 예상하기 어렵다.


3. 제외신고에 대한 검토

대표당사자소송에서의 제외신고(opt-out)는 나의 소송을 타인이 하는 경우 나는 그 소송에서 빠지겠다는 것이고 제외신고라는 절차를 통하여 나의 절차기본권은 내가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이 경우 대표당사자소송의 인증절차(certification)에서 집단구성원에 대한 충분하고 적절한 통지(notice)는 그들의 소송수행의 기회를 보장한다.

 
이에 비해 특정 단체가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그 단체 중에서 법원이 다시 허가하는 방식으로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단체소송도 있다. 이 경우 단체소송에서 단체가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정하는 부분은 독일식의 단체소송이라고 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소송에서 법원이 특정 단체의 원고적격을 허가하는 부분은 미국 대표당사자소송의 대표당사자 인증을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제외신고는 미국식 대표당사자 소송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피해자인 사건을 나의 수권(授權)을 받지 않은 단체 또는 사람이 법원의 인증(우리 증권관련집단소송에서는 허가)을 얻어 또는 개별 법규에서 단체에만 제소권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나를 배제하고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만이 아니라 독일식의 단체소송이라고 하여도 당연히 허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소송이므로 제외신고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독일식 단체소송에서 제외신고방식을 채택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집단피해를 본 사람들에게는 절차참여권을 주지 않고 표본절차를 진행한 다음 그 결과를 모든 피해자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입법에 의한 판결효력의 부당한 확장일 수 있다. 외형상으로는 당사자들에게 1단계 소송의 결과를 원용할 기회를 준 듯하나 실제로는 유사한 사건의 표본으로 정하고 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다음 유사 사건에 일괄적으로 적용을 하도록 강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효과는 유사한 사건의 결론이 다른 유사한 사건의 결과에 실제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증명효로도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이 독일의 관점에서 처분권주의를 침해하고 법적 청문권과 충돌된다는 견해는 타당하나 독일의 확인대표단체소송 역시 동일한 비판을 받는다. 특히 개별피해의 액수가 커서 자신만의 소송으로 조기에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들까지 단지 자신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소송수행권이 차단되는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단계에서 opt-in의 의미는 2단계 소송절차에 참가(參加)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1단계 소송절차가 끝난 후 피해자가 자신의 소송을 자신이 수행하는 별개의 독립소송으로 이해된다. 거꾸로 2단계 절차가 본안과는 관계없이 개별 피해자들이 자신의 채권을 신고하고 금액을 확정하는 우리의 강제집행법이나 파산법의 배당절차 또는 대표당사자소송의 분배절차와 유사한 형식적 절차라면 이 역시 가입신고(opt-in)와 상관이 없다. 분배절차는 소송절차가 아닌 또 다른 특수절차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제대로 기능하는 집단소송제의 마련의 필요성

독일 확인대표단체소송은 소비자의 지위가 수동적이고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합당한 이해관계의 조정의 관점에서 청구결합의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으며, 소비자의 손해를 경미손해와 대량손해로 구분한 다음 경미한 손해의 경우 원고인 단체는 구체적인 손해를 특정할 필요도 없이 쉽게 소송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소송으로 피고의 위법행위를 확인할 뿐 피고에게 부과되는 의무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확인대표단체소송이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집행권원을 확보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후속 절차에서 가해자가 화해를 끝까지 하지 않거나 화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개별소송에서 가해자가 협조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경우도 가능하다. 개별소송이 뒤따라야 한다면 법원의 부담을 얼마나 경감시켜 줄지도 의문이다. 2단계의 개별소송에서 선결문제에 대하여 확인대표단체소송의 판결에 구속된다고 하나 구체적인 소송에서 1단계 판단의 구속의 범위나 동일사건인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가해자(피고)가 동일성을 문제삼는 경우 난관에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소액다수(少額多數) 피해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사안의 위법성 여부나 피해 발생 여부와 같은 대세에 관한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에게 개별소송을 하도록 하는 것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집단소송은 원고 스스로 소제기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피고에게는 일일이 대항하기 어려운 다수의 소송이 전국의 법원에 반복하여 제기되는 것을 막아주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고안된 방법 중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해 줄 수 있는 것은 현재까지는 미국식 제외신고방식의 대표당사자소송밖에 없다.

 
한편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 배심제를 동시에 도입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 중 배심제는 절차법 또는 사법시스템의 본령에 속하는 문제로 동시에 고려할 만한 문제이다. 보통법과 형평법으로 구분되지 않는 우리 법제에서 시스템 결합의 어려움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결합은 실체법 분야에서 우리 손해배상법체계 전체와의 정합성을 자세히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민사 손해배상체계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일 수 있다. 효과를 앞세워 절차법적 시각에서 도입을 언급할 사안은 아니지 않나 한다.

 
절차법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전면적인 도입보다 민사배심제를 위자료 산정 부분에만 도입하여 위자료를 사실상 증액하는 효과를 거두는 방안을 먼저 도입하는 것은 어떤가 한다. 민사배심이 반드시 법관의 재판에 비해 위자료를 높게 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자료를 현실화하거나 집단분쟁사건을 다수의 시민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함영주 교수 (중앙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