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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이제는 행정기본법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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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처음에 - 행정기본법의 보통명사화

법제처가 2019.7.2.에 제정계획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것을 시발로 하여 행정법제 혁신 자문위원회(위원장: 홍정선)가 주도하여 성안한 행정기본법이 지난 2.26.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국가법령 4,786개 중 4,400여건(92%) 이상이 행정법령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법집행의 원칙이나 기준이 되는 기본법이 없어서 핵심내용이 판례와 이론에 맡겨졌는데, 이제 일종의 행정법총칙에 해당하는 행정기본법이 드디어 탄생하였다.

필자가 '차기정부의 공법적 과제'를 주제로 2012.10.27.에 개최된 공법학회·행정법학회·국가법학회의 공동학술대회에서 ’21세기 국가모델을 위한 가칭 행정기본법의 제정을 통한 행정법과 행정법제의 개혁‘을 발표한 것이 이제야 결실을 거두었다(김중권/김영수, 공법연구 제41집 제3호 2013.2.28., 29면 이하). 행정법학의 先學과 同學의 그동안의 학문적 苦鬪에 힘입어. 행정기본법이 실로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가 되었다.


Ⅱ. 행정기본법의 전체 내용

전문 총 4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행정기본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제2조(정의), 제3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제4조(행정의 적극적 추진), 제5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제6조(행정에 관한 기간의 계산), 제7조(법령등 시행일의 기간 계산), 제8조(법치행정의 원칙), 제9조(평등의 원칙), 제10조(비례의 원칙) , 제11조(성실의무 및 권한남용금지의 원칙), 제12조(신뢰보호의 원칙) , 제13조(부당결부금지의 원칙), 제14조(법 적용의 기준), 제15조(처분의 효력), 제16조(결격사유), 제17조(부관), 제18조(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의 취소), 제19조(적법한 처분의 철회), 제20조(자동적 처분), 제21조(재량행사의 기준), 제22조(제재처분의 기준), 제23조(제재처분의 제척기간), 제24조(인허가의제의 기준), 제25조(인허가의제의 효과), 제26조(인허가의제의 사후관리 등), 제27조(공법상 계약의 체결), 제28조(과징금의 기준), 제29조(과징금의 납부기한 연기 및 분할 납부), 제30조(행정상 강제), 제31조(이행강제금의 부과), 제32조(직접강제), 제33조(즉시강제), 제34조(수리 여부에 따른 신고의 효력), 제35조(수수료 및 사용료), 제36조(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제37조(처분의 재심사), 제38조(행정의 입법활동), 제39조(행정법제의 개선), 제40조(법령해석). 이런 내용이 사실 법률가에게는 별스럽지 않지만, 국민이 조문을 적시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Ⅲ. 행정기본법의 주요 내용의 개관

적극행정을 위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어, 이를 통해 국가의 소극성을 유발한 법제도의 상황이 해소될 것이다. 개별법에 산재된 기간의 계산을 공무원은 물론 국민들도 손쉽게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제정에서 두드러진 것 하나가 판례와 문헌에서 논의되는 법원칙을 고스란히 성문화한 것이다. 법률우위 및 법률유보의 원칙은 물론, 비례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등을 성문화함으로 얻는 효과는 그것의 현실적인 통용의 문제이다. 이들 원칙이 사후에 그 위반을 다투어 비로소 존재하였는데, 이제는 법집행의 초기부터 생생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비례원칙에서의 파생원칙(적합성, 필요성, 상당성의 원칙)을 명시함으로써, 행정은 재량행사에서 더욱더 면밀하게 형량해야 한다. 법적용의 기준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제14조 제3항 단서이다. 제재처분에서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가 있은 후 법령등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법령등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제재처분 기준이 가벼워진 경우에, 죄형법정주의의 취지에 반하게 행위시의 법령을 적용한 기왕의 판례의 입장(대법원 82누1판결: 83누383판결)은 정당하게 이제는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90도1709판결 이래로, 처분의 위반을 이유로 처벌을 과하기 위해서는 그 처분이 적법할 것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 처분이 당연무효가 아니라 하더라도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한 위반죄가 성립될 수 없다. 위법한 행정처분과 관련해서 행정처분의 존재를 수긍하여 권리구제를 다투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행정처분의 존재를 부정한 자에게 정당하지 않은 이익이 주어지는 결과가 생겼다. 이제 공정력을 명문화함으로써(제15조) 그것의 본질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의는 더 이상 전개되지 않으며, 판례도 기존 입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부관규정은 부관의 종류를 명기하고, 그것의 부가가능성 및 사후부가의 허용성을 규정하여 국민에게 딴지와 같은 의구심을 다소 해소하였다. 아쉬운 점은 기속행위라 하더라도 법률요건적 부관은 국민에게 이롭기만 한 데 제외된 것이다. 취소와 철회의 규정은 매우 기본적인 내용 즉, 비교형량의 원칙과 신뢰보호배제의 상황을 규정하였다. 향후 법제도상으로 취소와 철회를 구분하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강구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쉬운 점은 취소는 소급효, 철회는 미래효라는 전통적인 구별기준이 여전히 고수되어서 소급적인 철회의 경우가 배제된 것이다. 그리고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 개별법에서도 인정되곤 하는 손실보상이 규정되지 않은 점은 너무나 아쉽다.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현실에서 그것에 기반한 행정행위의 발급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인공지능의 경우 일정 단계가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되지 않아 기계학습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이 내려지는데, 이는 인간의 개입을 전제로 한 현재의 아날로그적 법질서와는 맞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자동적 처분의 허용성을 규정함으로써, 이런 의구심이 해소된다. 행정은 재량이 본질적인 특징인데, 문제는 국민 일반이 재량을 자의적인 권한행사로 여긴다는 점이다. 재량의 요체가 관련 이익의 성실한, 즉 정당한 형량인 점에서 재량행사의 기준 규정은 앞으로의 행정작용을 결정적으로 다르게 할 것이다. 처분이유서에 공무원은 정당하게 형량하였다는 점을 기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허가의제 제도는 절차생략을 통한 행정의 신속화에 이바지하지만, 법률관계를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인허가의제 제도가 표준화됨으로써 향후 개별법상으로 제도정비가 진행될 것이다. 현대 행정에서 행정의 일방성을 해소하기 위해 공법상 계약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련 논의가 부족하다. 공법상 계약을 규정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에서 행정의 실효성 확보수단은 새롭게 등장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체계적 정비가 요원하다. 과징금, 행정대집행, 이행강제금, 직접강제, 강제징수, 즉시강제에 관해 핵심적 내용이 규정된 것을 기화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리를 요하는 신고는 그 본질이 허가이자 사이비 신고이어서 그것에 대해 많은 문헌들이 부정적이지만, 비가역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개별법상으로 그것과 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를 구별하기 위한 시도가 강구된다. 수리여부에 따른 신고의 효력을 규정한 것은 이런 입법적 노력에 조응한 것이다. 처분의 이의신청과 재심사 규정은 국민의 권리구제의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가 된다. 이의신청의 허용성은 더 이상 개별법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으며, 이의신청을 하면 그에 대한 결과통지를 받은 때로부터 쟁송제기기간이 기산되어 결과적으로 그 만큼 권리구제의 시간적 허용이 확대되었다. 법적 안정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정변경의 원칙 역시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는데, 이것의 소산이 재심사 제도이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진 경우는 제외되고, 재심사거부에 대한 불복은 허용되지 않더라도, 국민에게 유리한 사정변경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의 입법활동을 법률의 차원에서 제도화한 제38조와 행정법제의 개선을 명문화한 제39조는 현대국가에서 법정립이 의회와 행정부의 共管的 임무에 해당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국민이 법령의 수범자이긴 해도 그것의 민주적 정당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행정주체에 대한 법령해석의 요청을 제도화함으로써(제40조), 새삼 법치주의가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임을 분명히 하였다.


Ⅳ. 맺으면서 - 관헌국가에서 진정한 법치국가로의 첫걸음

기대에 많이 미흡하더라도, 행정기본법은 기왕의 행정법도그마틱을 정리한 것을 넘는다. 관헌국가에서 국민은 공권력의 대상이자 객체(臣民)에 불과하다. 행정법의 역사는 관헌국가시대에 만들어진 행정법의 원형을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에 맞춰 새롭게 개혁하는 과정이다. 행정기본법은 오토 마이어류의 관헌국가적 법치국가원리와 결별하는 첫걸음이며, 행정법이 법률가법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고, 우리 행정법 및 공법이 일본의 그것과 다른 길을 내딛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학자로서 가슴 벅찬 감회를 느끼고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여기서 행정법의 현대화와 개혁이 멈추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행정기본법의 시즌 2가 기다려진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한국공법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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