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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근로자성 판단기준

- 사용종속성을 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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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닭과 사람

시판 달걀의 껍질에는 사육환경을 알려주는 난각번호가 찍혀있다. 사육환경은 1~4으로 표시되는데 4는 0.05㎡(A4 용지면적보다 작다) 닭장, 3은 0.075㎡ 닭장, 2는 축사방목형 닭장, 1은 자유방목장에서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에 각각 붙는다. 사육환경별 닭이 처해 있는 상황은 노무공급자에 대한 지휘·감독의 구체성의 정도나 강도에 비유된다. 4에서 1로 숫자가 작아질수록 지휘·감독의 구체성의 정도는 완화되고 상대적으로 일하는 자의 재량권은 넓어지나 양계업이라는 사업의 일부가 되어 달걀이라는 노동의 결과물은 산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어떤 사육환경을 택할지는 양계업자에게 달려 있고, 닭은 양계업의 일부로서 일할 뿐이라는 점에서 사업주와 그의 사업에 속한 노무공급자의 관계가 연상된다.

 
판례는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전제로 사용종속관계를 제시해 왔다. 사용종속관계 인정에 있어서는 지휘·감독의 정도가 중요한데, 과거에는 '구체성'을 요구하다가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에서 '상당성'으로 완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 사례에 비유한다면 4의 경우에만 근로자로 인정하다가 2나 3으로도 확대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2냐 3이냐를 두고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고, 실제 사건에서 근로자성 인정여부가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근 이러한 문제로 공방이 이루어진 예로 백화점 위탁판매원(이하 '판매원')이 있다.


Ⅱ.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근로자성

백화점은 주로 H, L, S사 등 백화점운영회사가 의류 등 브랜드업체(이하 '납품업체')에게 매장을 임대하거나 매장내 물건 판매를 맡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판매원은 납품업체로부터 매장에서 해당 브랜드의 의류, 잡화 등의 판매를 위탁받은 사람을 일컫는다. 전산기술이 미약해 매출관리가 어렵던 과거의 백화점 운영회사는 사실상 임대업자에 가까웠다. 그런데 기술발달로 매장별 매출 파악이 용이해지자 매출액 연동형 수수료체계를 납품업체에게 적용하였다. 이에 납품업체도 판매원을 고정급 중심의 근로계약을 통해 고용하다가 점차 성과중심의 위탁계약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납품업체가 판매원을 독립사업자, 즉 자영업자로 취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발렌타인 사건(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62456 판결 등)에서는 판매원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어 납품업체에게 퇴직금 지급의무가 인정된 바 있다. 이 사건의 판매원은 종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무하다가 일괄 사직하고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후 수년간은 일정범위 내에서 보수가 결정되어 이후 매출액 완전연동형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근로자성이 부인된 최근 사례로는 삼성물산(대법원 2020. 6. 25. 선고 2020다207864 판결)과 코오롱(대법원 2020. 7. 9. 선고 2020다20783 판결) 사건이 있는데 삼성물산 사건의 경우 원고들이 판매실적에 따라 상하한이 없는 수수료를 지급받아 판매원의 급여, 매장운영비를 지출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기실 백화점 판매원의 근무시간, 근무장소 등에 관해서는 백화점운영회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근로의 방식은 납품업체별로 외형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세부적인 노무관리나 보수체계에서 다소간 차이가 존재한다. 삼성물산은 발렌타인과 비교하였을 때 근태관리나 업무보고, 판매가격 통제, 근로자에서 계약형태가 전환된 경우가 있는 점 등에서 유사하나 수수료의 상하한이 없다는 점, 계약체결 시 실질적인 협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 일부 판매원의 경우 영업법인을 설립한 경우가 있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다. 법원은 이 점을 중요하게 본 것 같다.

 

Ⅲ. 검토

백화점 판매업무는 접객 능력에 따라 매출이 현격한 차이를 보여 판매원 개인의 인적 능력에 의존하는 측면이 강하다. 납품업체들은 판매업무의 위와 같은 특성을 파악한 이후 판매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촉진하는 쪽으로 선회하여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 결과 완전 성과급제를 도입하여 판매원들이 이윤창출과 손실초래의 위험을 일부 부담하게 함으로써 이들은 독립사업자와 같은 외관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납품업체의 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판매원의 근무태도는 매출에도 영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의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피고로서는 판매원의 적정한 업무수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판매원의 업무에 대하여 지휘·감독을 하고자 하는 유인이 크기도 하다(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62456 판결). 즉 판매원을 자신의 조직밖에 존재하는 별개의 완전한 독립사업자로 보는 것은 납품업체에게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어느정도 통제의 필요성도 있다. 마치 양계업자가 1, 2와 같이 닭에게 광범위한 재량을 부여하면서도 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축사 경계를 구축해 둔 것과 같은 이치이다.


Ⅳ. 사용종속관계를 넘어

노동사건에서는 법관의 노동에 대한 인식,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재판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나 이는 법관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차이는 사용종속관계 유무에 대해 판례가 제시한 여러 세부적 판단요소를 적용하면서 두드러진다. 즉, 재판부마다 각 판단요소별 중요도의 평가나 비중이 상이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의 세부관계에 착목하기보다 사업이나 업종과 같이 거시적 안목에서 노동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근로자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사용종속관계의 존부가 반드시 필요한가를 검토해 보자.


통설과 판례는 근로기분법(이하 '근기법') 적용의 전제조건으로 사용종속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근기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는바 이 문언에서 사용종속관계가 어디에서 도출되는지 알기 어렵다. 문언적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통설과 판례가 사용종속관계를 근기법상 보호의 전제로 요구하는 이유는 노동법을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계약자유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므로 당사자 일방이 약자라서 특별한 보호가 있어야만 공정성이 유지될 수 있고 또 그러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노동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이 현대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노동에 대한 보편적 보호필요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위 이론은 노동법이 최초로 생겨난 100여년 전에는 유용한 이론이었다. '신분에서 계약으로' 변화되어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는 대등한 지위에 있다고 간주된 그 시절에는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는 근로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존재하고 있었고 이러한 약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규범을 주창하기 위해서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예외가 인정되어야만 했다. 사용종속관계는 바로 이러한 특별한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논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보호에 대한 국민적 기대수준은 높아 갔지만 법적 보호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대적 시각에서 근기법상 보호대상을 획정하는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노동법은 계약자유의 원칙의 예외를 벗어나 독자적인 헌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헌법은 민법보다 그 적용의 폭이 넓고 깊다. 근기법은 헌법 제10조, 제32조, 제34조 등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특히 헌법 제32조에 명시된 '근로'의 개념은 종속노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즉, 생계수단으로서의 노동 전반을 포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기법을 계약자유의 원칙의 예외로 보아 사용종속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후진적이다. 노무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력 활용방식을 연구해 최적의 모델을 노무공급자에게 제안한다. 백화점 판매원의 노동을 이용하는 방식 역시 납품업체가 연구한 결과물이다. 즉, 근기법 적용여부는 노동 이용 방식에 관한 사용자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정부나 법원이 노동법 적용 범위를 조정(調整)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이용자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노무이용구조를 짬으로써 노동법의 적용범위를 조종(操縱)하는 권한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 사용종속관계의 '타인결정성'이라 칭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역시 필요하다.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노동하는 사람 각자는 헌법상 최소한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제한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노동보호의 필요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다시 조문이다. 근기법상 근로자는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노동하는 자이다. 사업 내지 사업장은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 혹은 노동이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따져 보자는 취지이다. 발렌타인이건 삼성물산이건, 판매원이 실적목표를 달성하고 백화점에서 매장이 퇴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동은 본인의 이익이기도 하나 그보다는 납품업체의 사업의 일부로 편입되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노동법의 현대적 해석론을 모색할 때이다.

 

 

김린 교수 (인하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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