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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민법 제748조 제2항에서 정한 '악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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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문제 제기

민법 제748조 제2항에서 정한 '악의'는 "자신의 이익 보유가 법률상 원인 없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그 이익의 보유를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이 되도록 하는 사정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해석되었다(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24187 판결, 이하 '기존법리'). 그러나 부당이득채무자가 '법'을 정확히 알면 가중책임을 지고 부정확하게 알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같은 의문은 법률행위가 취소된 때에도 제기된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민법 제748조 제2항에서 정한 악의의 의미', 민사법학(2020. 12.)을 참조하길 바란다.


Ⅱ. 이득반환범위에서의 선·악의 구별

민법 제741조는 부당이득채무자가 '이익을 반환'하도록 정하고, 제748조는 선의 수익자에 대하여 '그 받은 이익이 현존한 한도에서' 반환책임을 지우며(제1항), 악의 수익자에 대하여 '그 받은 이익에 이자를 붙여 반환하고 손해가 있으면 이를 배상하도록 한다(제2항).

 
부당이득 제도는 재화의 부당이전에 관한 교정을 추구한다. 수익자 재산으로 손실자를 원상태로 회복시킴이 목표가 아니다. 수익자 과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따라서 수익자가 당초부터 어느 재화의 보유·취득이 법적으로 정당하여 이를 계속할 수 있다고 알았다면 그는 해당 재화의 사용 등으로 자신에게 아무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신뢰하고 이를 다룰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설령 그 재화로 증식된 부분을 반환할 책임이 있더라도 되도록 자기 기존재산에 영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반면 그렇지 않은 수익자는 해당 재화를 타인의 것으로 다루어야 하고, 따라서 자신의 기존재산에까지 영향 있는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Ⅲ. 악의 의미의 비고정성

1. 민법은 여러 곳에서 '악의' 표지를 규율한다. 그 의미는 고정적으로 단일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가령, 민법 제197조 제2항의 '악의'는 본권 없음을 알면서 또는 본권 유무에 관하여 의심한 경우로 해석한다. 제201조 제1항의 '선의의 점유자'는 권원이 있다고 오신한 점유자를 말하고 그 오신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27069 판결 등). 제202조의 '악의'도 과실 있는 경우를 포함한다고 풀이한다. 제204조 제2항의 '악의'는 사실을 알았다는 사정을, 제573조의 '악의'는 계약체결 당시에 권리 일부가 타인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안 경우로 본다. 제840조 제2호의 '악의'는 정당한 이유의 존부 문제로 해석한다.

 
2.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부당이득에서 수익자 반환책임 범위를 가르는 선·악의 개념은 그 법적 효과의 인식 여부만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독일은 그곳 민법 제819조 제1항에서 '법적 원인의 흠결을 알았거나 나중에 이를 안 때'를 책임가중 요건으로 정하지만 법적 효과의 인식에 이르지 않은 때에도 가중책임을 지울 수 있는 다른 규율들이 있다. 스위스는 '선의' 개념에 관한 민사법 일반조항을 두어 인식 외에 과책에 따라 선·악의를 구별한다. 오스트리아도 보유급부가 수익자 자신에게 속하지 않음을 '알았어야 한다'거나 보유할 수 없음을 '고려하여야' 할 때 가중책임을 지운다. 일본에서도 기존법리와 별 차이 없는 종래 통설 및 최고재판소 판례 법리에 대해 비판적 견해가 주장된다.

 
3. 한편, 민법 제749조가 '수익자의 악의인정'이라는 표제로 사후적 악의에 관하여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때에는 그때부터 악의의 수익자'로서 책임을 지우고 있기는 하다(제1항). 그러나 법사학적·비교법적 관점에서 보면 수익자가 반드시 사후적으로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때'부터 가중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리가 보편타당하게 통용되지 않았다. 제749조 제1항의 문언은, 제748조 제2항에서 정한 '악의' 개념이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때'와 같다는 전제에서 그대로 옮겨온 당연한 규율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 있는 사후적 악의자 범위와 그 책임 범위에 관하여 입법자의 별도 취지, 즉 사후적으로 '법률상 원인없음을 안' 수익자에 대하여는 '그때부터' 제748조 제2항의 '악의의 수익자'와 같은 책임을 지우고 그 외는 같은 조항의 가중책임을 지우지 않으려는 취지를 정한 것이다.


Ⅳ. 선·악의 구별 근거에 따른 범주 획정
1.
어느 재화가 자기 것이 아님을 알거나 그 취득의 법적 부당성을 알면서도 반환책임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수령·사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재화로 자기 기존재산에 영향이 미칠 수 있는 위험을 부담케 해야 한다. 별 이견이 없는 부분이다.


2. 이득 보유의 법적 부당성(법률상 원인 없음)을 인식하지 않은 수익자들은 어떤가? 타인 재화를 법적 정당성 없이 보유·활용하고도 자기 재산에 아무 영향 없는, 완화된 책임만 부담하려면 그 근거가 되는 신뢰에 규범적 보호가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신뢰는 부당한 재화이전 교정이라는 부당이득 제도의 기능 발휘를 제약할 근거로 충분치 않다. 이를 전제로,

 
가. 우선 자신의 이익 보유가 법률상 원인 없는 것임을 인식·추단할 수 있는 외부적 사정이 객관적으로 드러남에도, 자신에게 법적으로 불리한 의미를 지닌 사실관계나 법적 평가의미를 의식적으로 등한시·외면한 경우를 본다. 이때는 설령 수익자가 자신의 이익 보유가 법률상 원인 없는 것임을 실제 내심으로 인식하지 못했어도 의식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해당 재화를 수령·사용한 사람과 같게 평가할 수 있다.

 
나. 그 밖에 부당이득반환책임이 성립했으나 그 이득 보유의 법률상 원인 없음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해당 수익자가 이익의 보유 사실 자체를 착오했거나 그 보유를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이 되도록 하는 사실의 존재를 오신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 보유가 법률상 원인 없는 것이라는 법적 평가를 착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오를 하지 않을 거래상 요구되는 정도의 객관적 주의의무를 수익자에게 부과하여 규범적 보호가치성을 판단할 수 없다. 부당이득으로 평가되는 재화 이전은 쌍방 행위의 개입 없이 일정한 사건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그때도 개개 수익 과정에서 수익자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관계와 그 법적 의미를 거래에서 요구되는 정도로 그때그때 조사하여 부당한 수익을 회피하도록 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과도한 행태의무를 지운다.


다.
다만 수익자에게 법률착오가 있던 경우는 다른 관점(error iuris nocet)도 고려해야 한다. 보유 이익의 법률상 원인 존부에 관한 법적 평가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소박한 평가다. 적지 않은 오류 위험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그 평가오류의 경위와 경과에 정당치 못한 사유가 있다면 그 오류에 규범적 보호가치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수익자의 반환책임에 관해서도 그 법률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가중책임을 부과함이 타당하다. 이때의 '정당한 이유'란 착오를 회피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고 수익자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토대로 법적 인식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여 그러한 착오를 회피할 수 있었는가에 따라 그 보호가치성을 판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표지를 과실 문제로 환원하여 파악할 수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 주의의무가 아니라 수익자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토대로 법적 인식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였는지가 그 척도다.


3. 수익자가 받은 이익이 취소가능한 법률행위로 이전된 경우, 기존법리 그대로 보면(가령,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다229536 판결) 수익자는 취소권자의 적법한 취소권 행사 시까지 선의 수익자로서 완화된 책임만 진다. 그러나 취소권자의 일방적 행사 시기에 따라 수익자의 책임 범위가 완화 또는 가중되는 결과는 수긍할 수 없다. 취소권자가 누구든, 수익자가 취소사유 존재를 이미 인식하고, 받은 이익의 원인행위가 소급적으로 무효가 될 수 있음을 인식했다면 해당 원인행위가 무효일 때처럼 의식적으로 반환책임 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해당 재화를 수령·사용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아가 수익자가 일반인의 소박한 평가에 따라, 원인행위의 취소가능성을 인식·추단할 수 있는 외부적 사정이 객관적으로 드러남에도 의식적으로 등한시·외면한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법적 평가에 착오를 일으킨 경우도 해당 수익자를 민법 제748조 제2항의 악의 수익자로 볼 것이다.


V. 결 어

민법 제748조 제2항에서 정한 악의의 의미에 관한 기존법리는 부당이득반환 책임가중 요건을 '법적 원인의 흠결을 알았을 때'로 규정하는 독일 민법 특정조항(부당이득반환의 가중책임을 정한 여러 조항 중 하나)에 관한 과거 해석론과 그로부터 영향받은 일본의 과거 통설적 논의 및 최고재판소 판례 법리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 민법 제748조 제2항은 독일 민법 해당 조항(제819조 제1항)과 다르고 그 체계적 의미도 같지 않다. 기존법리는 재고되어야 한다.

 

 

최우진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