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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명예훼손죄를 인정한 프랑스 법원 판결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를 긍정한 유럽인권법원 판결

CEDH, 5e section, 21 janvier 2016, de Carolis et France Televisions c/ France (n° 293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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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우리 형법의 명예훼손죄는 진실한 사실의 적시를 처벌대상에 포함한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인의 다수의견으로 이를 합헌으로 결정한바 있다. 이러한 법제 하에서 공적 인물이나 국민의 관심대상에 대한 보도내용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는 사실적시를 포함하는 때에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보도에 대해서 명예훼손죄 성립을 긍정한 프랑스 법원의 판결이 유럽인권협약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유럽인권법원의 판결이 있어 소개한다.



Ⅱ. 사실관계 및 쟁점
청구인들은 2005년 프랑스에서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배후지원세력 문제를 다룬 "11 Septembre 2001: le dossier d’accus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여 TV채널을 통하여 방송하게 한 프랑스 언론인 및 방송사 이사이다. 9.11 테러 희생자의 유가족에 헌정된 이 프로그램은 누군가 9.11 테러를 재정지원 등 방법으로 원조하였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암시하였다. 그 중에는 서남아시아 S국의 왕족 A도 포함되었다.


A는 상기 프로그램 방송을 통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이유로 프랑스 법원에 청구인들의 처벌을 구하는 사소를 제기했고 프랑스 법원은 경죄법원에서 파기원에 이르기까지 청구인들에게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여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청구인들은 이 판결이 유럽인권협약 제10조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하였다.


프랑스 법원에서는 청구인들이 이른바 '선의의 항변'을 원용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되었다. 유럽인권법원에서는 프랑스 법원의 유죄판결 선고가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조치로서 유럽인권협약 제10조 제2항에 의하여 허용될 수 있는가가 쟁점이었다.


Ⅲ. 프랑스 법원의 판단

파리경죄법원 2007년 11월 2일 판결은 청구인에게 명예훼손죄를 인정하고 각 10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선의의 항변에 대해 법원은 문제된 프로그램이 다룬 주제의 중요성이 높다거나 A가 공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점 등의 사정만으로는 언론인인 청구인들이 프로그램 제작 및 방송에 있어서 신중함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할 의무로부터 면제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사안에서 이런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아 항변을 배척하였다.


파리항소법원 2008년 10월 1일 판결은 1심판결을 지지하였다. 선의의 항변에 관해 문제된 프로그램이 일반 대중에 대한 정보제공 측면에서 갖는 목적의 정당성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고 A에 대해서 단순히 증오를 표출하였다는 등의 사정도 없으나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신중함 및 객관성이 충족되지 못하였다고 판시하였다.


파기원 2009년 11월 10일 판결 역시 같은 태도를 유지하였고 더하여 유럽인권협약 제10조 제2항에 따라 청구인에 대한 명예훼손죄 인정이 민주사회에 필요한 조치로서 허용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Ⅳ. 대상판결의 판단

유럽인권협약 제10조 제2항에 의하면 회원국 법률에 의한 표현의 자유 제한은 제10조 제2항에 열거된 목적을 위한 것으로서 민주사회에 필수불가결한 때에 허용될 수 있다. 유럽인권법원은 그 심사 시에 문제되는 표현을 둘러싼 주위의 사정, 공익의 존재여부, 제재의 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2016년 1월 선고된 대상판결은 아래 사정을 종합할 때 프랑스 법원의 유죄판결이 비례성을 상실한 조치로서 민주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조치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였다.


대상판결은 우선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비판은 일반 개인에 대한 그것보다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일반적인 관심 또는 이익의 대상인 사실은 표현의 자유가 더욱 넓게 보장된다는 법리를 확인한다. 문제된 프로그램에서 다룬 사실은 일반의 관심이나 이익의 대상에 관한 것임이 명백하고 A가 S국 고위 공직 수행 등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청구인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함에 있어 프랑스 당국이 갖는 재량이 크게 축소된다고 판시한다.

또한 대상판결은 문제의 프로그램이 세부적인 사실에 관한 언급을 포함하였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사실의 진술이라기보다는 가치판단인 의견표명이라고 판시한다. 의견의 토대를 이루는 사실은 완벽한 진실일 필요가 없고 사실적 기초가 실질적인 진실성만을 갖추면 되는 것으로 언론매체가 이를 보도함에 있어서 정당한 목적이 있고 대중의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며 그 사실 규명에 합리적인 노력을 다한 때에는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한다.


사안의 프로그램이 기초한 사실의 진실성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의견의 토대인 사실적 기초로서 충분하였고 프로그램에 드러난 다른 사정들을 종합할 때 청구인들에 대한 유죄판결은 대중의 일반적 관심이나 이익의 대상인 사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에 있어서 갖추어야 할 긴절한 사회적 필요성과의 비례관계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하여 명예훼손죄 유죄판결은 협약 제10조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조치로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Ⅴ. 평가

대상판결은 구체적으로 ① 일반 대중에 대한 정보제공의 정당성 ② A가 테러집단을 재정적으로 원조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수집되었음을 표현했지만 주된 내용에서 9.11 테러 피해자의 친척이 제기한 고소내용 제시에 그친 점 ③ 청구인이 조건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수집 보도된 증언과 거리를 확보하였고 A를 테러집단에 대한 원조자가 아닌 '가정적'원조자로 표현하여 객관성 확보에 노력한 점 ④ 청구인이 관련자 다수를 인터뷰하였고 특히 A에 대한 질의응답 및 그 외 A의 코멘트도 프로그램에 12회 포함되었으며 A의 진술이 편집에 의해 은폐 또는 수정·왜곡되거나 부정확한 방법으로 인용되지 않은 점 ⑤ A의 변호사가 청구인으로부터 입장표명 기회를 제공받은 점 등을 판단의 근거로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 명예훼손죄의 선의의 항변에도 고려될 수 있는 요소이다. 상기한 ①은 목적의 정당성을, ②는 증오의 결여를, ③부터 ⑤는 신중함 및 객관성을 기초 짓는 사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법원은 사안에서 보도의 신중함과 객관성을 부정함으로써 선의의 항변을 배척하였는바 그 근저에는 보도의 객관성 등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전제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보도의 객관성에 대한 요구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우에는 보도의 자유 및 이를 통한 여론 형성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적지 않고 공적 인물이나 일반적 관심 사안에서는 그러한 위축이 언론의 감시견 역할을 저해함으로써 폐해를 발생할 우려가 크다. 또한 편집에 대한 사법심사를 강화하는 것은 방송전문가가 아닌 법원이 원 편집자를 대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공적 인물 또는 일반적 관심이나 이익의 대상인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고 그 제한에 대한 심사강도를 강화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보호를 위해 요구되는 신중함과 객관성 등이 보다 용이하게 충족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확보한다. 이는 종래 유럽인권법원이 비교적 일관하여 취해 온 입장이기도 하다. 또한 대상판결은 문제된 프로그램에 포함된 개별적 사실적시 차원이 아닌 프로그램 전체의 관점에서 표명된 가치판단인 의견표명으로 이 문제를 다룸으로써 적시 사실의 진실성에 대한 증명 및 판단에 내재된 곤란함을 우회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근래에 프랑스 명예훼손죄에 나타나는 일정한 변화의 흐름은 유럽인권법원에 의한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종래 프랑스 명예훼손죄에서는 피고인에게 진실성 항변 및 선의의 항변이 인정되어 왔는바 적시사실이 진실임을 증명함으로써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저지하고 만약 적시사실이 진실하지 않거나 그 증명이 곤란한 경우에는 상술한 요건에 따른 선의의 항변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항변들은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는 예외적으로 진실성 항변이 금지되는 여러 경우가 있었으나 이는 점차 폐지되어 주로 사생활 비밀 보호가 긴요한 경우에 국한되고 있다. 선의의 항변 역시 종래 신중함과 객관성이 일률적으로 요구되기도 하였으나 정치적 논쟁을 비롯한 일반적 관심 대상인 사안에서는 이런 요건을 완화하여 선의의 항변을 반드시 신중함에 의존시키지 않는 판결도 선고된다. 학설 중에도 유럽인권법원 판례와의 관계에서 이런 판결을 지지하는 견해가 제시된다. 이것들은 사생활 비밀을 제외한 일반적 관심사에 대한 보도에서 형사처벌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헌법재판소의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관한 결정에서 사생활의 비밀 아닌 사실적시에 관한 부분이 일부위헌이라는 재판관 4인의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대상판결은 일반적 관심에 대한 보도 사안에서 형법 제310조의 요건인 진실성, 공익성, 또는 수식어인 '오로지'의 해석에 참고될 여지가 있다. 또한 사실과 의견 간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혼합되어 있는 사안에서 명예훼손죄 성부 판단에 관하여도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훈 연구위원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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