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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의 국제법적 쟁점

- ICC Appeals Chamber, The Prosecutor v. Saif Al-Islam Gaddafi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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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사건 경과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이하 ICC)는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상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하는 살해와 박해 혐의를 받고 있는 사이프 알 이슬람 가다피(이하 가다피)를 대상으로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가다피 측 변호인단은 그가 ICC 절차에서 다루고 있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행위'에 대해 2015년 7월 28일 리비아 트리폴리 법원(1심)에서 이미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리비아의 '2015년 사면법'에 의해 2016년 4월 12일경 석방되었으므로 로마규정상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이 사건이 더 이상 ICC에 의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담당 전심재판부는 (ⅰ)가다피에 대한 리비아 국내법원의 판결이 기판력을 지닌 '확정판결'이 아니란 점, (ⅱ)리비아의 '2015년 사면법'이 가다피의 범죄행위에 적용되기 위한 요건들을 충족하지 않는 점, (ⅲ)심각한 국제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은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을 포함한 국제법과 양립할 수 없으므로 가다피를 사면하는 것은 국제법에 부합되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변호인단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후 가다피 측 변호인단은 전심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상소를 제기했고 2020년 3월 9일 상소심재판부는 상소를 기각하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Ⅱ. 상소심재판부의 입장
1.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가다피 측 변호인단이 제기한 상소를 다루면서 전심재판부의 입장 중 위의 (ⅰ) 및 (ⅱ)의 판단 부분에는 동조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ⅲ)의 내용에 대한 전심재판부의 입장이 단지 '부수적 의견'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서 심각한 국제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이 국제법상 수락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 중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함에 그쳤다. 즉 다수의견에서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2. 개별보충의견
카란자 재판관은 다수의견과 달리 자신의 개별보충의견에서 위의 (ⅲ)에 관한 전심재판부의 입장이 사건에 대한 판결 이유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크게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사면 문제를 다루었다. 첫째, 그는 국제인권법, 국제인도법 및 국제형사법 분야의 조약과 판례를 광범위하게 검토한 후 ICC 관할범죄의 실행으로 야기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내적 사면은 국제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확립된 국제법 및 국제적인 원칙과 기준들'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둘째, 그는 리비아의 '2015년 사면법'이 국제법과 양립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다피에게 적용되기 위한 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가다피가 위 사면법을 사실상 적용받아 사면되었다고 해도 그 조치는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Ⅲ. 검 토
1. 전반적 평가
2019년 4월 이 사건의 전심재판부가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의 사면 문제에 대해 최초로 입장을 밝힌 이래 상소심재판부에서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상소심재판부의 다수의견이 로마규정상 일사부재리 원칙의 적용요건과 '2015년 사면법'의 가다피에 대한 적용가능 여부에만 천착했을 뿐 위와 같은 사면이 국제법에 부합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전심재판부의 입장보다 더 후퇴한 점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카란자 재판관은 전심재판부보다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심재판부는 그 성격상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하고 체계적인 인권 침해가 국제법상 사면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보는 '강력하고 점차 증대하며 보편적인 경향이 있다(there is a strong, growing, universal tendency)'고 한 반면 카란자 재판관은 이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사면이 '확립된 국제법 및 국제적인 원칙과 기준들(well-established international law, principles and standards)'에 반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사면 문제에 대해 로마규정이 침묵하고 있는 데다 상소심재판부의 의견도 나뉘고 있어 향후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 ICC 재판부의 입장이 내포하는 국제법적 함의
먼저 전심재판부의 입장과 상소심재판부의 다수의견은 각기 그 정도에 차이가 있긴 하나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이 국제법에 부합되지 않는 경향으로 발전 중이라고 보았다. 즉 일종의 '생성중인 규범' 내지 '연성법'화 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위 재판부들의 입장은 그 자체로 별다른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생성중인 규범'이나 '연성법'의 경우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인 구속력을 지닌 국제법의 법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카란자 재판관 역시 위와 같은 사면이 국제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확립된 국제법 및 국제적인 원칙과 기준들이 있다고 했을 뿐 그러한 사면이 국제법상 수락될 수 없다는 내용의 '관습국제법이 확립되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설령 카란자 재판관이 그러한 관습국제법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개별국가의 법률(예컨대 사면법)에 따라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가 사면된 경우 관습국제법에 반하는 그러한 국내법이 자동적으로 무효로 된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내법의 내용이 국제법에 반하더라도 -해당 국가가 국제법상 국가책임을 지는 것과는 별도로- 자동적으로 무효로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리비아가 '2015년 사면법'에 따라 가다피를 사면한 것이 설령 관습국제법에 반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면조치가 자동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 한편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의 금지가 관습국제법화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제법상 국제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사면을 금지하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긴 하지만 제노사이드, 제네바 제협약의 중대한 위반, 고문과 같이 '기소 아니면 인도(aut dedere, aut judicare)할 조약상 의무'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별 국가가 위와 같은 사면조치를 취하더라도 국제법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3. 가다피에 대한 리비아에서의 국내절차가 이른바 '허위재판'에 해당하는지 여부
리비아에서의 국내절차가 로마규정상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허위재판(sham trial)'에 해당될 여지도 있다. 다시 말해서 리비아 당국이 '처음부터' 가다피를 형사처벌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그에 대한 유죄판결을 선고한 후 국내적으로 사면조치를 취하여 조기에 석방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다피에 대한 사면조치는 트리폴리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후 9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소심재판부는 '적어도' 리비아에서의 국내절차가 가다피를 형사책임으로부터 보호할 목적이었는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감형 가능성
카란자 재판관에 따르면 평화협정을 포함한 과도기의 사법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유형의 사면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중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한 자에 대해서는 결코 사면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거부터 ICC 관할범죄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일정한 조건하에서 사면이 부여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적지 않게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자들에 대해 사면까지 부여하진 않더라도 일정한 경우 로마규정 내에서 '감형'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예컨대 ICC의 수사나 기소의 대상이 되는 자들이 '평화협정 체결 등 분쟁해결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경우 이를 로마규정상 감형사유의 하나로 추가하자는 것이다. 이는 평화와 정의 모두를 위한 적절한 타협책이자 ICC의 설립취지와도 양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Ⅳ. 마치며

현 시점에서 로마규정과 ICC 판례만으로는 ICC 관할범죄를 범한 자에 대한 국내적 사면 문제를 명확히 해결하기 곤란하다. 향후 ICC 판례의 법리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로마규정 재검토회의에서의 논의를 거쳐 그 해법을 찾아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로마규정 이행법률에 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김선일 교수 (경찰대 경찰학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