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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ICTY의 갈리치(Galić) 판결에 내재된 국제형사법적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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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구 유고내전에서 발생한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에 대한 사법적 해결을 위하여 1993년 설립된 ICTY(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에서는 유고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인종 및 종교적 요인으로 인한 무력충돌과 그로 인한 인종청소를 비롯한 각종 국제인도법 위반에 책임이 있는 개인들에 대한 형사소추와 처벌이 이루어졌다. 내전 상황에서는 전투원들 간의 싸움보다도 일상의 시공간 속에서 만연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더욱 큰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기에, 민간인에 대한 테러행위가 국제형사법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2. 대상판결의 개요

ICTY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군(Bosnian Serb Army)의 사령관을 역임한 스타니스라프 갈리치(Stanislav Galić) 장군이 1992년 9월부터 1994년 8월까지 사라예보 지역의 민간인을 저격(sniping)함으로써 민간에 대한 테러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Prosecutor v. Stanislav Galić Case No. IT 98-29, Judgment 5 December 2003, 이하 '대상판결'이라 한다).

  

대상판결은 최초로 민간인에 대한 테러범죄의 불법성을 설시한 국제재판소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당시 피고인은 세르비아계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예보로 들어가는 식량과 의약품 보급을 차단한 뒤 언덕마다 저격수를 배치하여 민간인을 사살하고 박격포를 쏘는 등의 테러행위를 자행하였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제네바 협약에 대한 추가 및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의정서(이하 '제1추가의정서'라 한다) 제51조 제2항을 위반하였다고 하면서 피고인에게 전쟁의 법과 관습 위반(민간인에 대한 테러행위), 인도에 반하는 죄(살해, 비인도적 행위)의 유죄를 인정하였고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위와 같은 다수의견에 대하여 니에토 나비아(Nieto Navia)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표명하였다. 피고인이 사라예보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허용하고 지시하였음을 입증하는 서면이나 피고인으로부터 그러한 지시를 들었다는 내용의 직접적인 증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다수의견은 부당하고, 오히려 병사들 중 일부는 피고인이 민간인들을 목표로 공격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취지로 증언한 이상 피고인이 민간인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에서 도출되는 국제형사법적 쟁점
가. 무력충돌 상황에서의 민간인 보호

대상판결에서 중심이 되었던 쟁점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준별하지 않고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것의 불법성이었다. 대상판결은 구체적인 사실인정을 통해 피고인이 이끄는 SRK군(크라니아 세르비아 공화국 군)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군사활동의 와중에 발생한 우발적 사고가 아닌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체계적, 조직적으로 자행된 테러행위임을 인정하였다. 피고인은 재판과정에서 SRK군에 의하여 초래된 민간인 사상의 결과는 정당한 군사활동 과정에서 조준실패 등의 이유로 부수적으로 동반된 것일 뿐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항변하였다. 그러나 ICTY는 상세한 사실인정을 통해 대다수의 공격이 군사활동이나 군사목표와는 무관한 일상적인 장소와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재판과정에서 현출된 증언에 의하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그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고 구급차, 트램, 버스에 탑승하거나 정원을 손질하거나 장을 보는 등 매우 일상적인 순간에도 이루어졌고, 길에서 걸어다니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ICTY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주로 낮시간에 행하여졌고 공격자들은 피해자들이 일상적인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쉽게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공격이 단지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나. 국제적 무력충돌과 비국제적 무력충돌

한편, 대상판결에서는 제1추가의정서의 적용범위와 관련하여 보스니아 내전의 법적 성격이 국제적 무력충돌인지 비국제적 무력충돌인지도 문제되었다. 즉 구 유고내전은 연방분리 독립과정과 한 국가 내 내전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무력충돌과 비국제적 무력충돌이 혼재된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제1추가의정서는 그 적용범위를 '국제적 무력충돌'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과연 보스니아 내전에도 제1추가의정서에 명기된 금지사항들이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견해차가 있었다. 다수의견은 교전당사자들 간에 1992년에 이루어진 합의에 의하여 제1추가의정서가 대상판결의 사안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고 본 반면, 반대의견은 '법이 없으면 범죄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라는 원칙 하에 보스니아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대상판결의 사안에 대하여 제1추가의정서를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ICTY가 판례를 통하여 ICTY 규정 제3조의 '전쟁의 법 및 관습에 위반하는 죄'의 범주를 넓게 해석하여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하여 왔던 경향을 고려할 때 무력충돌의 법적 성격에 대한 상세한 논증보다는 실질적인 테러행위의 존재 및 이로 인한 피해의 법적 성격 규명에 더 치중한 다수의견의 방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 테러행위의 금지

대상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들에 대해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행하여진 테러행위의 존재이다. 대상판결에서 나타난 병사들의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행위는 민간주민에게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 공포가 만연하게 만들고, 일상적이고 사적인 공간에까지 무차별적 공격의 칼날이 깊숙이 침투함으로써 평시와 전시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대상판결에서는 테러범죄의 객관적, 주관적 요건을 설시하면서 특히 주관적 요소로 '민간주민 사이에 공포를 확산시킬 목적'을 설시하였는데, 피고인 및 피고인의 지휘를 받은 병사들의 행위를 테러범죄의 구성요건에 구체적으로 대입해 보면, 우선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은 무력분쟁 상황에서 일반대중에 대한 위협을 통해 공포를 확산시키고 일상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하여졌고, 그러한 행위는 일상적인 공간에의 무차별적 포격과 같은 폭력적 수단을 통해 실현되었으며, 이러한 테러범죄는 결국 일반대중 차원에서의 두려움을 확산시키고 사회일반의 안전을 위협함으로써 무력분쟁의 상대방 측을 약화시키고 궤멸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는바, 테러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은 이러한 민간인에 대한 테러행위가 피고인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지시된 것이 아닌, 개별 병사에 의한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보는 전제 위에 서 있는 듯하고, 이를 통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 다수의견이 부당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범죄에서는 범죄의 계획과 실행이 공식적인 문서나 명시적이고 투명한 지시체계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암묵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문서의 소실이나 의도적 증거인멸과 같은 증거파괴 행위가 빈번할 것으로 여겨진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인정되는 민간에 대한 공격이 행하여진 시간적, 장소적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공격이 전투원에 대한 정당한 공격의 와중에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와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의도를 가진 행위라고 인정될 수 있는 이상, 직접적인 증거의 부재를 이유로 피고인의 행위가 단순히 부하들의 불법행위를 막지 못한 부작위 내지 방조에 가깝다고 본 반대의견은 범죄 성립 여부를 지나치게 좁은 의미에서 소극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4. 맺으며

대상판결은 피고인을 정점으로 하여 이어지는 군의 조직체계와 이를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진 민간인에 대한 테러행위의 집단성을 적시함으로써 이것이 단지 개별 병사의 우발적인 범행이나 실수가 아닌 내전상황에서 상대집단을 궤멸시킬 의도를 가지고 자행된 전투방식이었음을 규명하였다. 무엇보다도 대상판결은 2년여에 걸쳐 사라예보의 민간인들에 대하여 자행되었던 무차별적 공격의 양상이 국제인도법에서 금지하는 테러행위의 실질을 띠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와 같은 중대한 국제인도법 위반행위에 따른 처벌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1추가의정서의 적용범위, 무력분쟁의 법적 성격, 테러범죄 성립을 위한 객관적·주관적 요건 등에 대한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법해석방식을 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선화 판사 (수원지법)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