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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형법상 전자인(e-person)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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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언

2017년 유럽의회는 AI에 ‘전자인(격)’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2018년 인공지능 관련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에 의한 피해발생은 기존 법규정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로봇제조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취지라고 비판하였다. 결국 집행위원회는 AI의 법인격에 대한 결정은 유보하고, AI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준비지원, 적절한 윤리적·법적 체계를 보장하는 가이드라인의 준비를 결정하였다. AI에 대한 법인격 부여 문제는 주로 민사법적 관점에서 AI가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의에서 출발하였고, 여기에서는 형법적 관점에서 논의를 전개한다.


II. 형법상 ‘인’의 개념 확장가능성

형법규범은 자연인인 인간에게 맞추어 만들어지고 적용된다. 사람이 고의·과실로 구성요건적 결과를 야기하고, 행위의 불법성을 인식하고, 발생한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던 경우에만 행위자가 형사소추되어 처벌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형법이론과 실무는 인간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물론 법인처벌을 긍정하는 경우와 같이 책임귀속의 주체에 대한 경계영역에서는 인간에 대한 책임귀속의 원칙이 수정, 변화되고 있다. 법인의 범죄능력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통설·판례는 여전히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인한다. 다만 양벌규정의 존재로 자연인의 처벌에 부가하여 법인이 이를 소홀히 관리·감독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에서 법인을 처벌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책임귀속과 관련한 원칙을 근본적으로 변경하고 있지는 않다. 법인의 경우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에 대하여 범죄능력을 인정하고 책임귀속원칙을 적용하려는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형법상 인간만이 법인격체로 인정되는가의 문제는 새로운 토론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영미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 기업(법인)을 독자적으로 기소하여 처벌한다. 인간이 형법규범의 수신인이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으나, 문제는 형법규범의 수신인이 될 수 있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는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이다. 특히 장래에는 전자인(e-person)의 법인격성을 인정하여 그에 대한 형법적 책임을 긍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이다.


III. 법인격의 차별화

인간은 모두 법인격체이며, 법인격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담론은 과거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기부터 현재까지도 법적인 책임논의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법인격에 대한 논쟁은 민사법적·형사법적 사고가 서로 소통하며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민사법적 법인격 부여가 필연적으로 형사법적 법인격 부여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격 부여는 사회내에서 규범화의 과정이며, 이는 해당 법규범이 사회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이나 목적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손해의 적정한 보전이라는 민사법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과 범죄의 예방이라는 형사법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의 차이는 법인격에 대한 통일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민사법상 법인격이 부여되지 않은 권리능력주체(법인격 없는 사단이나 법인격 없는 재단)에게도 범죄예방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형사법적 법인격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IV. 인공지능에 법인격의 부여가능성
1. 법인격의 주체

형법상 인격주체는 자신과의 윤리적·감정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과거의 성찰을 통하여 현재의 행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인식이나 도덕적 자기반성에의 능력을 가진 주체만이 형법상‘인’이 되었다. 현재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은 가사도우미 로봇, 수술 로봇(다빈치), 질병진단예측 로봇(왓슨), 바둑 로봇(알파고), 소송의 승소율을 예측해 주는 시스템(ROSS, 렉스마키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봇이 과거 행동을 윤리적으로 반성하여 되돌아보거나 성찰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인격의 주체는 도덕적 자기반성에의 능력을 보유하여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보면 현재 상황에서 인공지능은 형법수범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2. 인공지능에 법인격의 부여가능성

인공지능의 법인격성을 부정하는 시도가 언제까지 적절하고 합리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문이다. 오히려 머지않은 장래에 법인격의 탈인간화나 AI의 인간화라는 관점에서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1) 법인격의 탈인간화

토이브너에 의하면 법인격체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반드시 인간과 같은 사고, 영혼, 성찰능력, 공감능력 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인간만이 법인격의 주체로 제한될 수 없으며, 인간이 아닌 비인간 역시 법인격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인격의 탈인간화가 주장된다. 법인격 없는 실체는 사회체계 내의 소통을 촉발하지 않고, 오히려 법인격 없는 실체들이 사회체계에 미약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에 사회체계는 이 실체들이 내는 자극을 소음으로 간주하여 체계 내의 소통에서 배제한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법인격 없는 실체들이 내는 소음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사회체계 내의 소통을 방해하거나, 이들의 도움 없이는 소통이 진행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사회체계는 이러한 실체를 인정하고 소통체계에 편입시켜야 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도달하면 결국 법을 비롯한 사회체계는 사회체계 밖의 실체들에 행위주체의 성격인 법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체계 내의 소통의 고리를 담당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사실상 자율적인 행위능력을 취득하는 단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전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였던 소음을 발생시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소음이 결국 사회체계 내의 소통체계에 관여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을 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인공지능의 인간화

지난 수 년간의 기술발전을 보면 인공지능은 이미 자신의 독자적인 경험판단에 따라서 다양한 선택지들 가운데 선택을 하고, 이러한 선택을 상위의 가치체계에 비판적으로 검토·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경험과 학습을 기초로 사고하여 결정하는 존재라면, 인공지능도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활용하고 새로운 경험의 학습 등을 통하여 자신의 활동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이용되는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와 인공지능에 인격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첫째, 마음은 물리적 우주의 일부인 뇌 활동의 결과이며, 로봇도 잘 만들기만 하면 인간과 동일한 사고, 감정,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의 뇌과학에서는 이러한 인공지능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보며, 오히려 문제는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인공지능의 자기의식능력에 뇌과학의 입장에서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형법학의 입장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둘째, 규범적 책임개념에 따라 범죄를 인격의 표명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인격에 귀속된 의식의 동일성이 책임의 전제가 된다. 즉 인격은 단지 의식을 통하여 과거의 존재가 현재의 존재로까지 이어지는 동일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의 행동에 대하여 현재의 자신에게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고, 과거 행동을 현재 자신의 것으로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되는 귀속이 가능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면 자기의 행위에 관한 기억에 의한 동일성 역시 긍정할 수 있다.


V. 결어

인공지능이 장래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 것인가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인공지능의 형사책임문제는 우리 형법체계와 이론을 재편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장래의 법적 인격체로서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철학적·과학적 사고에 기초하여 우리 형법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인이 가상세계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가상세계에서 책임을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전자인이 현실세계에서 활동한다면 현실세계에서도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현실세계의 통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는 사소하게 보이나 가까운 장래에 우리 생활세계에 인공지능이 적극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여기서 전자인에 대한 법인격 부여와 처벌을 통하여 형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재 형법원칙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엄청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새로운 형법모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전지연 교수 (연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