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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과로로 인한 자살과 회사의 손해배상책임

- 한일 양국 판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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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24일 일본최고재판소는 과로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원의 유가족에게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18년 전 판결이기는 하지만 회사(사용자)가 근로자의 건강을 배려해야 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만하다. 이 판결을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적극 반영하여 회사(사용자)가 손해배상책임이 부담스러워서라도 근로자에게 무리한 초과근무를 요청하지 않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



1. 일본최고재판소 2000. 3. 24. 선고 平成10(オ)217 판결 - 일명 덴쓰사건(電通事件)
가. 사실관계

망인은 1966년 원고들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건강하고 스포츠를 잘했다. 성격은 명랑쾌활하고, 솔직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끈질기게 일하는 완벽주의 성향도 있었다. 망인은 1990년 3월 대학 졸업 후 4월 피고 회사 덴쓰에 입사했고, 채용 2개월 전 건강검진에서 색각 이상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신입사원 연수 후 망인은 라디오 광고 기획영업부에 배치되었다. 1990년 당시 취업규칙에는 휴일은 주2일, 근로시간은 오전 9:30부터 오후5:30, 휴게시간은 12:00부터 오후 1시까지로 되어 있었다. 노사협약에 따른 하루 잔업시간의 상한선은 6시간 30분, 라디오 광고 기획영업부의 1990년 7월부터 1991년 8월까지의 매월 잔업시간 상한선은 60 ~ 80시간이었다.

망인은 낮에는 주로 영업과 기업 행사에 다녔고 저녁 식사 후 기획서 초안 작성 등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1990년 7월부터 1991년 8월까지 신고한 잔업시간이 매달 48 ~ 85시간 사이였으나 실제 잔업시간은 훨씬 많았고, 새벽 2시 이후 퇴근한 날도 매달 2 ~ 12일 사이였다. 1991년 11월 말경에는 늦어도 새벽 4~5시에는 귀가하였지만, 이후에는 귀가하지 못하고 부친의 도쿄 미나토구 사무실에 자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1991년 사용한 유급휴가는 겨우 0.5일이었다.

1992년 1월부터 망인은 업무의 70%를 단독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상사와 선배들의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망인의 업무 범위는 점점 넓어졌으나, 그에 따라 집에 귀가하지 않거나 귀가하더라도 다음날 아침 6시 30분이나 7시에 귀가했다가 8시에 출근하는 상황이 많았다. 부모님은 늘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망인은 만성적인 수면부족으로 매우 피곤해했고 기운이 없고 어두운 얼굴로 우울해했으며 안색이 좋지 않고 눈의 초점이 흔들거렸다. 망인은 짧은 여행을 다녀온 후 상사에게 자신이 없다,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잠들 수 없다고 고백하는 모습도 보였다. 망인은 1992년 8월 27일 오전 6시 귀가한 후 오전 9시 회사에 몸이 안 좋아 하루 쉰다고 말하고는, 오전 10시 자택 목욕탕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나. 판단

노동안전위생법에 의하여, 사업자는 노동자의 건강을 배려하여 노동자의 작업을 적절히 관리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업무 수행에 따른 피로와 심리적 부담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노동자의 건강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가 있다. 피고 측은 망인의 업무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기한 준수만 요구하였고, 망인은 업무 수행을 위해 계속 장시간 잔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피고는 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1992년 7월 이후로는 업무를 더욱 늘려, 망인의 심신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어 우울증으로 이환시켜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피고는 망인의 과로와 건강 악화를 인식하면서도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으므로 민법 715조 사용자책임에 근거한 배상책임이 인정된다.

원심(도쿄고등재판소)은 민법 722조 과실상계를 유추적용하여 원고들(망인의 부모)의 손해액을 30% 감액하였다. 그러나 사용자는 노동자의 업무가 적당한지 아닌지 판단하여 내용을 정할 수 있고 개별 노동자의 성격도 고려할 수 있다. 노동자의 성격(심인적 요인)이 일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업무 과중이 원인이 된 손해배상에서 노동자의 성격에 근거한 고려는 할 수 없다 보아야 한다. 망인의 성격은 일반 사회인에게 자주 보이는 성격의 하나이고, 동종 업계 노동자의 통상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성격을 고려한 감액은 법령의 해석적용을 잘못한 위법이 있다. 또 원고들이 망인(아들)과 함께 산다고 하여 망인의 근무상황을 개선할 수 없으므로 이를 이유로 한 감액 판단도 위법하다.


2. 우리나라 판결례

회사(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다룬 민사 판결은 거의 없고 주로 업무상 재해(산재)에 관한 행정 판결이 다수인데, 이를 소개한다.

[건설회사 입주관리 팀장 자살 사건 - 대법원 2011. 5. 9. 선고 2011두3944 판결]

대형 건설사 주택분양관리팀 입주관리탐장으로 일하던 망인이 아파트 가격 하락에 따른 계약해지 민원 폭주와 관리 세대 증가(혼자서 최대 1만 3000여 세대 담당)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새벽에 사무실에서 투신 자살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망인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생하였다 봄이 상당하고 우울증 발병이 망인의 개인적 취약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에 겹쳐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되었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였다.

[은행 지점장 자살 사건 -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망인은 2013. 1. 17. 은행지점장으로 부임하였으나 여신 실적 부진과 주 거래처인 00교회의 지속적인 대출 금리 인하 요구로 인하여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망인은 2013. 6. 13. 11:00 점심 약속이 있다며 지점 밖으로 나갔고, 13:50 원고(처)에게 전화하여 죽음을 예고하고 14:12 서울 서초구 텃밭 원두막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참고로 망인의 유서에는 “아들들아, 아빠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니 절대 영업사원은 되지 마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법원은 “망인은 지점장 부임 후 영업실적에 관한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우울증을 겪게 되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음에도 계속된 업무상 부담으로 그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봄이 타당하다.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하여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한국전력공사 팀장 자살 사건 -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

망인은 한국전력공사 이천순회점검팀 팀장으로 근무 시간 외에도 직원들과 순번으로 자택대기근무를 하였고 전력 사고 발생에 대한 걱정으로 평소 스트레스가 많았다. 망인은 5급 승진에서 누락되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팀원들의 비협조로 업무상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2004. 3. 22. 망인이 귀가하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아 가족들이 찾아 나선 결과, 망인이 사무실 인근 인삼밭에서 소주와 농약을 마시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대법원은 “망인이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업무의 내용이나 업무시간이 통상적인 경우에 비해 과도하여 우울증을 초래할 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심법원의 고대병원 감정촉탁결과를 보면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에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어서 질병과 자살을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 어렵다고 기재되어 있는 점, 망인이 자살 전날 친구의 분신 자살 소식을 듣고 이 소식이 자살을 감행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망인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하여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몇 가지 판결만으로 일반화 하기 어려우나 1)적어도 통상적인 수준이 아닌 상당한 업무상 부담이 있어야 하고 2) 정신과 진료 내역이 있어야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받는데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업무 관련성 외에 회사의 고의, 과실도 추가 요건이 되는데, 근로자의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법원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김화철 변호사 (법무법인 유로)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