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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공법상 법률관계로서 정부조달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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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시작하면서 

대법원은 2017. 11. 9. 정부조달 계약에 대하여 원심이 사법상 법률관계로 판단한 것을 뒤집고, 공법상 법률관계로 다루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많은 언론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는데, 놀랍게도 언론의 주된 관심은 이 판결로 한국항공우주산업 주식회사(Korea Aerospace Industries, 이하 ‘KAI’라 한다)는 국가로부터 연구개발 추가비용 120여 억 원을 받지 못한다는 평가였다. 논란 있고, 다양한 이슈를 포함하고 있는 사건이므로 이에 대한 논점을 염출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II. 사건의 개요

2006년 산업자원부와 방위사업청은 한국형헬기 개발 사업(Korean Helicopter Program, 이하 ‘KHP사업’이라고 한다)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KAI와 한국형헬기 민군겸용 핵심 구성품 개발 협약(이하 ‘이 사건 협약’이라 한다)을 체결했다. 하지만 6년 이상의 개발과정에서 환율변동과 물가상승으로 120여 억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자 KAI는 2013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이라 한다) 19조와 이 사건 협약을 근거로 전속관할로 정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정산금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원심은 이 사건 협약의 본질을 'KAI는 국가에게 KHP 핵심구성품을 연구·개발하여 납품하고, 국가는 KAI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법상 계약'이고, 국가계약법 19조, 같은 시행령 64조에 따라 물가변동, 환율인상에 따른 추가비용을 지급하여야 함에도 '이 사건 협약 특수조건 9조 1항 단서로 국가의 승인을 조건으로 초과비용을 인정하도록 한 것'은 국가계약법 시행령 4조의 '상대방의 계약상이익 부당제한 특약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무효이므로 국가는 추가비용 지급의무가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 협약은 단순한 연구·개발 납품계약이 아니고, 과학기술기본법 11조, 항공우주산업개발 촉진법 4조 등에 따라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한국형 헬기 핵심구성품을 개발하여 군용헬기를 제작하거나 민간헬기의 독자적 생산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이고, 추가비용 발생에 따른 “KAI의 정산금 청구는 실질적으로는 KHP사업 정부출연금 증액요구”이며, 이러한 요구에 “국가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국가연구개발사업규정에 근거해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KAI가 체결한 이 사건 협약의 법률관계는 공법관계”이며, “보증금의 반환 등에 대하여 국가계약법 관련 조항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다거나 협약조건 분쟁 관할법원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정했다는 이유로 이를 민사소송으로 판단한 후 본안판단에 나아간 원심의 판단에는 이 사건 협약의 법률관계 및 쟁송 방식에 관한 법리와 전속관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잘못이 있으므로” 원심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이송하였다.


III. Case 분석을 위한 이슈 정리
1. 공법과 사법의 구별

행정기관은 행정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 행위수단 선택에 상당한 자유재량이 있다. 그러나 선택된 수단이 행정의 사법으로의 도피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일반적 사법관계로 이해되는 법률관계에서도 그로부터 파생되는 개별적 관계에서 공법관계의 발생은 가능하다. 이러한 구체적 관계의 공법성 판단은 처분등개념의 실체법적, 쟁송법적 고려에 덧붙여 선택된 행위수단의 헌법유보 여부도 중요한 고려요소이다.

2. 국고이론의 극복과 2단계 이론(Zwei Stufen Theorie)

독일의 2단계 이론은 정부조달을 낙찰이전 단계와 계약이후 단계로 구별하여 1단계는 공법관계로 2단계는 사법관계로 파악함으로써 국고이론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낙찰자 결정으로 계약이 성립되지 않고, 낙찰은 계약체결청구권 즉, 정부조달계약의 편무예약으로 이해하므로 독일보다 단계구분이 명확해 2단계 이론 적용의 실효성이 크다.

3. 정부조달 분야의 급부행정 메커니즘 적용

항공우주산업개발 촉진법(이하 ‘항공우주산업법’이라 한다)은 출연업체 선정과 출연사업 시행을 규정하고, 정부는 항공우주산업 지원과 육성을 위하여 비용을 출연한다. 국민이 계약과 관련된 이익에 주된 관심 있으면 행정청이 정한 규율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방산업체 지정과 장려정책은 정부출연금 교부와 같은 급부행정 영역과 유사하므로 공법상계약 법리의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하다.

4. 정부조달법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현대국가의 임무확대로 정부조달의 대상과 범위도 확대되었다. 하지만 재정은 한계가 있으므로 민간의 투자를 활용해 정부조달을 확대하는데, 민관협력사업(Public Private Partnership, 이하 ‘PPP’라 한다)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하 ‘민간투자법’이라 한다) 2조 1항 각목에서 열거하는 사회기반시설의 실시협약, 실시계획 승인은 한국이 인정하는 PPP이다. PPP는 정부조달관계와 달리 종래에도 공법상 법률관계로 인정되고 있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5. 정부조달법의 기본원칙

한국 정부조달법규에는 해석과 적용의 기본원칙이 없다. 이로써 정부조달법의 해석과 적용에 많은 혼란을 야기하므로 글로벌 정부조달규범과 같이 정부조달 기본원칙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서 여섯 가지 원칙과 그 상관관계를 제시한다. 


조달기관은 무엇보다 경제적 조달에 관심이 크다. 한편, 수요독점적 조달기관의 과도한 경제성 추구는 국민경제에 구조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조달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 경쟁 원칙과 차별금지·동등 대우 원칙은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고, 투명성 원칙은 참여자의 경쟁과 차별금지·동등 대우를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그 외 정부조달의 합리성은 특히 경쟁과 경제성 실현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6, 정부의 수요독과점 폐해 예방

정부조달분야를 일반적 사적자치가 적용되는 공간으로 보게 되면 정부의 수요독과점 폐해 위험이 가중된다. 따라서 조달기관의 공정거래법 준수는 중요한 행위준칙이어야 한다. 지금껏 정부조달관계를 사법관계로 간주하면서도 조달기관의 공정거래법 준수여부를 엄밀히 심사하지 않은 관행은 변경되어야 한다.


IV. Case 분석과 평가

1. 이 사건 협약관계는 과학기술기본법, 항공우주산업법에 따른 정부의 사업비용 출연관계로서 명백한 공법관계이다. 그 외에도 이 사업은 중앙행정기관들과 국가연구기관들이 협업으로 진행한 ‘국책사업’이고, 헌법 22조 2항, 127조 1항은 이 사업의 헌법유보 단서이다. 한편, 헌법 126조, 방위사업법의 '방산업체 지정관계'는 국가의 지정, 광범위한 사업조정, 보호육성, 자금융자, 보조금 교부, 기술인력에 대한 장려금 지급, 국유재산 무상 양여 및 대부, 수출지원, 지정취소 등을 살펴보면 민간투자법의 '사업시행자 지정관계'를 상회하는 공법관계 지표를 발견할 수 있다.

2. 계약체결자 결정 단계까지만 공법관계로 파악하는 2단계 이론에 의하면 협약 이행과 관련한 추가비용 지급관계는 원칙적으로 사법 영역이다. 그러나 국가계약법 관계를 일반적으로 사법관계로 규정하나 부정당업체 지정관계는 공법관계로 취급하는 것과 같이 일반적 사법관계에서도 구체적 상황에서는 공법적 법률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원심의 사법관계설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협약 24조 초과비용 지급청구를 위한 ‘협약변경요구’, 9조 초과비용 지급에 관한 ‘승인’은 47조 7항 ‘연구개발업체 지정 취소’와 종합하면 공법관계로 판단함이 상당하다.

3. 경제적 조달은 정부조달 분야의 핵심적 가치이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비용을 지급하지 않게 됨으로써 그 액수만큼 경제성을 달성하려 한다면 정부조달 분야의 다른 가치는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향후 연구개발 조달계약 참여자의 참여의욕을 떨어뜨려 경쟁을 축소할 수 있고, 혹여 이를 방지하기 위한 추가비용 보장 특약은 차별을 조장하게 되고, 헬기 핵심 구성품과 같은 정부독과점 수요품 시장은 'level playing field' 충족에 대한 특별 관심시장이다. 무엇보다 법치국가 원리에서 연원하는 합리성(비례성)은 공법관계 일방에게만 과다한 부담을 허용하지 않는다.

4. 국가가 이 사건 협약을 사법계약으로 인식하고, 전속관할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정하였음에도 실제 분쟁에서 공법관계를 주장한 것 등 이 사건 협약, 분쟁과정에서 여러 가지 금반언 원칙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또 본건과 같이 행정의 행위형식이 사법 혹은 공법으로의 명확한 구별이 어렵고, 사법과 공법 모두에 중첩되는 복합법률관계의 전속관할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하는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광범위한 지방이전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으므로 해당 기관 및 분야의 랜드마크가 되는 지역의 법원을 전속관할로 하는 것도 법률분야의 과도한 중앙집중 해소와 지방의 전문분야 연구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5.
위와 같은 각종 이슈를 검토하여 행정법원이 정부조달분야의 시금석이 될 판결선고를 기대한다.


김진기 군법무관 (육군대령·법학박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