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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해외판례] 미 법무부의 FCPA 역외적용 확장에 제동 건 연방항소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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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08년 독일 Siemens社가 미국 법무부(DOJ) 및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라크, 아르헨티나 등의 외국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공여범죄 등의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 및 이익환수금 등 합계 8억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사건이라든지 2017년 스웨덴의 한 통신기업(Telia)이 미국 법무부 및 증권거래위원회에 우즈베키스탄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공여범죄 등의 협의를 인정하고 벌금 및 이익환수금 등으로 합계 9억6500만달러에 합의한 사건 등 미국의 법집행당국은 미국기업 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을 상대로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FCPA)을 공격적으로 적용·집행하여 왔다. 그리하여 기업들, 특히 이른바 글로벌기업들은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과 이를 집행하는 미국의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를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인한 심각한 불이익을 예방하기 위하여 준법감시체계의 확립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과 변호사업계 위주로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 관련 법집행의 동향에 촉각을 기울이며 이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 2018년 8월 24일 미국의 제2연방항소법원에서 (비록 공범 법리에 관한 쟁점에 한한 것이기는 하나) 법무부의 광범위한 해외부패방지법 역외적용에 제동을 거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여 관련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United States v. Hoskins, No.16-1010-cr(2d Cir. Aug. 24, 2018)}.


2.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의 적용대상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중 반뇌물규정은 그 적용대상(범죄의 주체)을 세 범주로 구분하여 규율하고 있다(15U.S.C.§78dd-1, -2, -3). 첫째 범주는 미국증권발행기업(issuer)이다. 둘째 범주는 미국 국내 업체(domestic concern)이다. 셋째 범주는 위 두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자로서 ‘미국 영토에 있는 동안(while in the territory of the United States)’ 뇌물 관련 행위를 실행한 자이다. 한편 위 반뇌물규정은 위 세 범주에 해당하는 모든 법인과 자연인의 임직원 및 대리인(agent)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미국증권발행기업(issuer)이나 미국국내업체(domestic concern)의 대리인이 아닌 외국인(non-U.S. national)이 미국 영토 내에서 뇌물 관련 행위를 실행한 적이 없다면 해외부패방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님은 법문상 명백하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는 이러한 경우에도 해외부패방지법을 적용하기 위하여 공모(conspiracy) 또는 교사·방조(aiding and abetting)의 법리를 활용하여 왔다. 이러한 미국 법무부의 입장은,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가 2012년 공동으로 발간한 공식 가이드에도 명시되어 있다{‘A Resource Guide to the U.S.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2012)’, 34면 참조}.


3. 이 사건의 기소 내용(공소사실)

관련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영국 국적의 피고인(Lawrence Hoskins)은 프랑스의 글로벌기업 Alstom社의 영국 자회사의 고위 임원이다. 피고인은 Alstom社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1.18억달러 상당의 발전관련계약을 따내기 위하여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범행에 가담하였다. Alstom社의 미국 자회사는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 위한 두 명의 컨설턴트를 고용하였다. 피고인은 위 미국 자회사에 근무한 적은 없지만, 위 컨설턴트들의 채용 및 자금제공에 관한 결정권자였을 뿐만 아니라 컨설턴트들에게 제공된 자금의 일부가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제공될 것이라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 피고인은 뇌물제공계획과 관련하여 미국 자회사의 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통화하였다(그런데 피고인이 법무부가 주장하는 위 범행 기간 동안 미국 영토에 들어간 적이 없음은 법무부 측도 인정하였다).]

법무부는 피고인이 비록 미국 영토 내에서 뇌물 관련 행위를 실행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 자회사 및 그 직원들과 해외부패방지법 위반행위를 공모하거나(conspiring) 교사·방조하였음(aiding and abetting)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해외부패방지법위반의 책임을 물었다(다른 공소 내용에 대한 논의는 편의상 생략한다).


4. 법원의 판단

피고인은 1심 연방지방법원(District of Connecticut)에서 검찰의 공모 등 관련 공소를 각하해 달라는 신청을 하였고(motion to dismiss), 1심 법원은 위 신청을 인용하여 관련 공소를 각하하였다{United States v. Hoskins, 123 F. Supp. 3d 316(D. Conn. 2015), 1심 판결의 내용은 생략한다}.

제2연방항소법원은, “해외부패방지법위반죄의 본범(a principal)으로 처벌받지 않는 자는 동 죄의 공모범 또는 교사·방조범으로도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판시하며, 그 근거로 ‘입법정책적 예외(the affirmative legislative policy)’ 및 ‘역외적용제한의 추정(the presumption of extraterritoriality)’을 제시하였다. 피고인 측은 의회(Congress)가 해외부패방지법을 제정함에 있어 ‘미국 영토 내에서 범행을 실행하지 아니한 비거주 외국인’에 대해서는 동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입법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Gebardi v. United States 판결{287 U.S. 112(1932)}을 일부 인용하였다]. 항소법원은 법문상 미국 영토 밖에서 행동한 외국인에 대한 관할(법적용)이 명백히 제외되어 있다는 점(obvious ommission)에 주목하며 피고인 측의 주장을 수용하였다. 즉, 해외부패방지법의 문언, 구조 및 입법연혁을 검토한 다음 ‘미국법이 의회의 명시적인 승인 없이는 함부로 역외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고, 의회가 해외부패방지법의 입법 과정에서 역외적용에 관하여 신중히 고려한 끝에 그 범위를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의회는 법적용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범주의 자들에 대해서는 공모 법리 또는 공범 법리를 활용하여 책임을 묻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특히 위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 3인의 판사 중 Lynch 판사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보충의견(concurring opinion)도 참고할 만하다: [본 판결에 따르면, 외국기업 본사의 임원인 외국인이 미국 자회사 또는 미국 자회사의 임직원으로 하여금 해외부패방지법 위반행위를 저지르게 하더라도 동 법 위반죄로 처벌받지 않게 될 것이고, 이러한 결과가 부당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외국인에 대하여 해외부패방지법을 어느 범위까지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입법자의 선택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다. 법원은 어디까지나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충실할 의무가 있으므로, 결국 해외부패방지법의 역외적용에 관하여 입법자가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기준에 부합하는 본 판결 내용에 찬성한다.]

다만, 제2연방항소법원은 비록 피고인이 공모범 또는 교사·방조범으로서 해외부패방지법위반의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 미국 자회사의 대리인(agent)으로서 책임을 질 수는 있을 것이라고 판시하였다{이는 15 U.S.C. §78dd-2(a) 소정의 ‘an agent of domestic concern’에 해당하여 법문언상 동법의 적용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법무부가 남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위 미국 자회사의 대리인으로서 범행에 가담하였음을 증명한다면 결국에는 피고인이 형사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5. 판결의 의의

이 판결에 의하면, 미국의 법집행당국이 미국 영토 밖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해외부패방지법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데 일부 제동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판결의 영향력은 제2연방항소법원의 관할범위 내(뉴욕, 코네티컷, 버몬트)에 국한되는 것이고 다른 연방항소법원들이 이와 달리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해외부패방지법 관련 사건들은 법무부나 증권거래위원회와 합의로 종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가 주장해 온 관련 법리들에 관하여 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는데, 이번 판결은 법무부 등이 그동안 해외부패방지법 적용의 확장을 위하여 상당 기간 활용해 온 법리들을 법원이 배척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미국 영토내로의 전화통화, 이메일발송 등을 ‘미국 영토 내에서 범행을 실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


오규성 연구위원 (사법정책연구원)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