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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가압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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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우리나라의 법제도 중에 특히 절차법 분야에서 그 본래의 취지와 상당히 다르게 운용되어 문제가 되는 것들이 많다. 우리 실무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소홀히 다루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 중 한 예로 보전절차를 들 수 있다. 본래 보전절차는 본집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어려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임에도, 그동안 가처분이 본안소송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대체적 권리실현 절차로 둔갑을 하였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렇다면 가압류는 어떠한가?

국내의 연간 가압류 사건 수는 약 30만건에 이르는데, 이는 연간 100만건인 민사 본안사건의 30%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압류가 ‘채무자의 책임재산 보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아니라 채무자에 대한 압박이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었고, 법원이 나름대로 개선을 시도하였음에도 여전히 가압류 제도의 남용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 가압류 제도 남용의 배경

채권자가 가압류를 활용하는 이유에는 가압류로 채무자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개인의 경우 급여의 2분의 1이 가압류되면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업체의 경우에도 예금계좌가 가압류되면 당장 자금 운용에 지장이 초래되고, 주가가 폭락함은 물론, 거래로 인한 채권이 가압류되면 거래 관계가 단절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기업체가 금융기관과 체결하는 대출약정에서는 예금계좌 등에 대한 가압류가 대출금 채무의 기한이익상실 사유로 규정되어 있어 가압류 그 자체로 기업체의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타격 때문에 심지어 채무자는 본안소송으로 다툴 기회조차 사실상 박탈당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채권자의 가압류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는 미흡하고, 오히려 가압류를 남용할 계기는 여러 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가압류의 인용률이 80%를 넘고, 보증보험에 의한 공탁이 가능하며, 부당 가압류로 인한 손해배상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고, 허위 또는 부실한 가압류신청 진술서 작성에 대해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3. 각국의 가압류 제도 운영 상황

김경욱 외 2인의 보전처분 남용방지 방안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밝힌 일본과 독일, 미국의 현황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연간 가압류 사건 수가 약 1만건으로, 이는 민사 본안사건 수인 20만건의 5% 수준에 불과하여 우리의 30%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보전의 필요성은 채무자가 책임재산을 매각하거나 포기, 은닉, 무단 증여, 도주로 재산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강제집행이 곤란하게 될 우려가 구체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새기고 있다. 가압류의 대상에서도 예금채권이나 거래 관계에 따른 채권 등 채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보전의 필요성을 더욱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 가압류 채권자의 담보제공 방법인 금융기관의 지급보증도 이미 거래관계가 있을 것을 전제로 채권자가 해당 금융기관에 맡겨둔 금전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 실질적으로는 금전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부담을 가지게 된다.

독일의 경우 민사 본안사건이 연간 100만건 이상인데 비하여 보전처분 사건은 약 5만건으로서 일본과 비슷한 5% 수준이다. 독일 법원은 가압류제도를 채무자가 강제집행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 재산을 이유 없이 낭비하거나 증여하는 경우 등 재산적 가치를 악의적으로 빼돌리는 것만을 막는 제도로 인식하는 등 보전의 필요성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가압류에서 증명방법으로서의 소명은 사실 인정에만 국한되며, 그 심리가 형식적이어서는 안 되고, 채무자의 상황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은 가압류 제도를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따라 규율하고 있으며, 채무자에게 가혹하고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제도로 인식한다. 이에 따라 가압류 절차에서 원칙적으로 채무자에게 심문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아울러 채권자에게 현금으로 상당히 많은 금액의 보증금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4. 가압류 절차의 개선 방향

가압류는 채무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그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운용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압류 요건에 대한 심사가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채무자의 전체 재산이 채권자의 만족에 부족하게 될 위험이라는 추상적인 사유는 보전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선진 각국의 제도 운용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가압류 대상 재산과 관련해서는, ‘책임재산의 확보’라는 가압류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채무자의 피해 최소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생계나 기업 운영과 직결되는 예금채권, 거래채권 등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는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보전처분의 밀행성을 지양하여 채권자 보호를 위한 신속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채무자에게 심문의 기회를 보장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채권자가 제공하는 담보도 가압류의 남용이나 부당 가압류로 인한 채무자의 손해보전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미흡하므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담보의 수준을 현실화할 필요도 있다. 가압류를 해제하기 위해 채무자는 가압류청구액에 상응하는 금액을 공탁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가압류가 신속하고 간이한 절차에 의해 쉽게 내려지는 것과 달리, 채무자를 위한 가압류 취소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법원에서는 이러한 구제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아서 채무자가 장기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폐단도 생긴다. 가압류명령 못지 않게 그 취소결정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절차적 정의에 합당하다.

또한 가압류 단계에서 채무자에게 다른 책임재산이 존재함에도 상대적으로 큰 피해가 야기되는 재산에 가압류가 이루어졌음이 밝혀진 경우에는, 가압류 이의 또는 가압류 취소절차에서 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가압류의 대상을 변경하는 결정을 내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의 법원의 유연한 사고나 결정은 가압류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5. 맺음말

가압류로 인하여 채무자가 책임재산이 동결되는 것 이상의 폐해를 입게 되는 것은 가압류 제도가 본래 예정하고 있는 결과가 아니다. 채권자의 채권 확보 필요성에 못지않게 가압류로 인한 채무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법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압류를 쉽게 받아들이다 보니 제도의 목적과 동떨어진 부작용이 생긴다. 가압류 심사단계에서 보전의 필요성 요건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채무자에게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한 가압류에는 더욱 신중을 기하며, 사후적으로도 채무자가 가압류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갖추는 것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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