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구논단

전자문서법의 입법상의 오류

지창구 판사 (춘천지방법원)

1. 문제의 제기
 
  정보화시대가 도래하여 전자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면(對面)계약을 예정하고 만들어진 민법규정만으로는 전자거래에서의 법적분쟁을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어 1999년 2월 8일 법률 제5834호로 전자거래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전자거래기본법은 2012년 6월 1일 법률 제11461호로 개정되면서 그 명칭이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이하 '전자문서법'이라 한다)으로 바뀌었다. 
 
  전자문서법은 유엔 국제거래법위원회가 1996년 채택한 전자상거래모델법(UNCITRAL Model Law on Electronic Commerce, 이하 '모델법'이라 한다)을 기초로 만든 것으로, 많은 부분이 모델법을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그 번역과정에서 오역(誤譯)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거나 이상하게 해석되는 규정들이 있고, 이로 인해 재판실무에도 많은 혼선이 초래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이면서 중요한 규정에 관해 살펴본다.
 
2. 전자문서법 제2조 제3호
 
  전자문서법 제2조 제3호는 '작성자'를 '전자문서를 작성하여 송신하는 자'로 정의한다.
 
  전자거래에서 법적분쟁이 생기는 많은 사례는 전자문서의 명의자와 실제로 이를 작성하여 송신한 자가 다른 경우이다.
 
  전자거래는 비대면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수신자의 입장에서는 수신된 전자문서의 명의자와 이를 실제로 작성하여 송신한 자가 동일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그 동일성 확인을 위해 공인인증서나 신용카드정보 입력, 휴대전화로 수신한 인증번호 입력 등의 수단을 동원하지만 ① 신용대출을 해준다는 등의 명목으로 얻은 개인정보로 타인 명의의 전자문서를 작성하고 송신하는 경우나 ② 해킹 등을 통해 획득한 개인정보로 타인 명의의 전자문서를 작성하고 송신하는 경우와 같이 명의자와 행위자가 다르고 명의자의 의사에 반하여 전자문서가 작성·송신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와 같은 경우 전자문서의 '작성자'는 행위자가 아니라 명의자임은 전자문서법 제7조 등 규정에 의하여 명확하다.
 
  그러나 전자문서법 제2조 제3호는 마치 행위자를 명의자로 보는 것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모델법 제2조 ⒞항은 "전자문서의 작성자는 그 사람에 의하여 또는 그 사람을 대표하여 전자문서가 저장에 앞서 발송되거나 생성된 것으로 칭해진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전자문서에 관하여 중개자의 역할을 한 사람은 포함하지 아니한다" ["Originator" of a data message means a person by whom, or on whose behalf, the data message purports to have been sent or generated prior to storage, if any, but it does not include a person acting as an intermediary with respect to that data message]라고 규정함으로써 '작성자'가 전자문서의 작성명의자, 즉 그 문서에 의사표시의 주체로 기재된 사람을 의미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3.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는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는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행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이는 전자문서가 작성자의 의사에 의해 작성·송신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전자거래의 특성상 수신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신자가 작성자의 의사에 의해 작성·송신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조치를 취하였으면 그 전자거래의 법률효과를 작성자(명의자)에게 귀속시키겠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4다11161 판결에서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원고와 피고 주식회사 케이티 사이에 특정 휴대전화에 관한 단말기 할부매매 및 서비스 이용계약이 체결되었으나 원고가 명의를 도용당하였다고 주장한 사안에서, 피고는 위 계약 당시 수신된 전자문서가 전자서명법에서 정한 원고의 공인인증서 인증절차를 통해 가입자 본인에 의하여 송신된 것임을 확인하였으므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위 계약은 원고 본인 또는 원고가 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대리권을 수여한 제3자에 의하여 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그러나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수신자가 수신된 전자문서를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는 그 전자문서의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 실제로 그 전자문서를 작성하여 송신한 자와의 관계에 의하여 판단되기 때문에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명의자)과 작성하여 송신한 자(행위자)와의 인적 관계, 즉 친족, 친구, 일면식도 없는 사이 등에 따라 정당한 이유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매우 기이한 결과가 된다.
 
  위 규정의 기초가 된 모델법 제13조 ⑶⒝항은 "작성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수신자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나 작성자의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해 작성자 자신의 전자문서임을 식별하기 위해 작성자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사람의 행동에 기인하는 경우, 그 전자문서를 작성자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가정 하에 행동할 권한이 있다" [As between the originator and the addressee, an addressee is entitled to regard a data message as being that of the originator, and to act on that assumption, if the data message as received by the addressee resulted from the actions of a person whose relationship with the originator or with any agent of the originator enabled that person to gain access to a method used by the originator to identify data messages as its own]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작성자 자신의 전자문서임을 식별하기 위해 작성자에 의해 사용되는 방법'은 공인인증서나 신용카드정보 등 작성자식별수단을 의미하고, '작성자나 작성자의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해… 접근할 수 있게 된'은 행위자가 위와 같은 작성자식별수단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작성자의 의사에 기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예로 든 두 가지 사례를 놓고 보면 ① 신용대출을 해준다는 등의 명목으로 얻은 개인정보로 타인 명의의 전자문서를 작성하고 송신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작성자식별수단에의 접근은 작성자의 의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그 전자거래의 법률효과가 작성자에게 귀속되지만, ② 해킹 등을 통해 획득한 개인정보로 타인 명의의 전자문서를 작성하고 송신하는 경우에는 작성자식별수단에의 접근이 작성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그 전자거래의 법률효과가 작성자에게 귀속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모델법 제13조 ⑷⒝항은 "제13조 ⑶⒝항의 사안에서 수신자가 그 전자문서가 작성자의 것이 아님을 알았거나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이거나 합의된 절차를 따랐다면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제13조 ⑶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이는 우리 전자문서법 제7조 제3항 제2호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델법은 작성자에게 외관작출 책임이 있고[모델법 제13조 ⑶⒝], 수신자가 그러한 외관을 신뢰하고 전자거래를 한 경우[모델법 제13조 ⑷⒝]에 전자거래의 법률효과가 작성자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이는 우리 민법의 표현대리 규정과 동일하다), 이와 같은 입법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전자거래에서는 일반 거래보다 더욱 수신자의 보호를 강화하여 작성자의 외관작출 책임을 따지지 않고 수신자가 선의·무과실이기만 하면 그 전자거래의 법률효과가 작성자에게 귀속되도록 할 것인지는 입법자의 선택의 문제이지만, 적어도 우리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는 오역 혹은 잘못된 입법이다.
 
4. 결론
 
  전자거래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므로 전자거래를 규율하는 기본법인 전자문서법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전자문서법이 제정된 후 17여년이 흘렀음에도 앞서 본 것과 같은 오역 혹은 입법기술상의 오류로 인해 재판실무에서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난관에 봉착함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판사는 입법자가 아니고, 만들어진 실정법을 해석·적용할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구체적 타당성이 결여된 혹은 엉뚱한 결론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법률을 선해(善解)하는 과정에서 자칫 해석의 범위를 넘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좀 더 신중한 입법과 전자문서법의 조속한 개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