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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형법 제27조 불능미수의 ‘위험성’의 의미와 판단기준

조국 교수 (서울대 로스쿨)

- '추상적 위험설'의 관점에서 -
 
 I. 들어가는 말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바, '결과발생 불가능성'과 '위험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비교법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조항으로 형법 제정 당시 입법자의 선택이 반영되어 있다. 이 글은 '위험성'은 '결과발생 불가능성'과 구별되는 독자적 개념이며, 이러한 구별의 취지는 '위험성' 판단에 있어서 '추상적 위험설'을 취할 때 살아난다는 입장에 서서 학설과 판례를 재검토하고자 한다. 
 
II. '위험성'의 의미―'결과발생 불가능성'과의 구별이라는 입법적 결단
 
학계의 통설은 '결과발생 불가능성'은 결과불법의 측면으로 객관적·사후적 판단에 의하여 그 유무가 결정 난다면, '위험성'은 행위불법의 측면으로 행위시점을 기준으로 규범적·평가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 나는 것으로 파악한다. 만약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제27조 법문을 '결과의 위험성이 없더라도 결과의 위험성이 있는 때'라는 무용(無用)한 동어반복으로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III. '위험성' 판단의 기준―'추상적 위험설'의 옹호
 
현재 학설로는 (i) 행위 시에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을 기초로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결과발생 가능성이 있으면 위험성을 인정하는 '추상적 위험설', (ii) 행위 시에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과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실 모두를 기초로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결과발생 가능성이 있으면 위험성을 인정하는 '구체적 위험설', (iii) 판단의 기초사실은 (ii)와 동일하나 '과학적 일반인'이 판단하는 '강화된 구체적 위험설', (iv)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정만을 기초로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신객관설', (v) 행위자의 법적대적 의사가 일반인에게 법질서를 침해하는 인상을 줄 때 위험성을 인정하는 '인상설' 등이 대립하고 있으며, '구체적 위험설'이 다수설을 점하고 있다. 
 
먼저 '인상설'은 '위험성' 요건이 없는 독일 형법의 통설로 우리 형법 문언 해석으로는 수용하기 어렵다. '신객관설'에 따르면 행위자의 '착오'에 대한 고려가 사라지게 되는 바, 이를 전제하고 그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형법 제27조의 요청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추상적 위험설'과 '구체적 위험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강화된 구체적 위험설'은 '구체적 위험설'의 일종이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두 단계의 논증이 필요하다. 첫째, 누구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결과발생 불가능성'이라는 사실 판단은 '전문가로서의 과학적 일반인'의 입장에서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위험성' 판단은 규범 판단이다. '정상의 주의', '정당한 이유', '상당한 이유', '사회상규', '음란성' 등에 대한 판단은 일반보통평균인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분명하다. 
둘째, 어떤 사정을 고려하며 판단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결과발생 불가능성'은 전적으로 객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입법자가 '위험성'을 따로 규정한 것은 그 판단에서는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했던 사실을 기초로 하라는 요청이다. 
 
'구체적 위험설'은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과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실을 모두 판단의 기초로 할 것을 요구한다. '위험성'에 대한 해석론은 행위자가 인식한 사실과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실이 충돌하는 경우를 전제하고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불능미수에서 착오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행위자의 인식능력이 일반의 인식능력 보다 못한 경우이다. 이러한 불일치 상황에서 양자를 모두 고려한다는 말은 문제해결을 위한 분명한 지침을 주지 못한다. 행위자가 알고 있었던 사정에 중점을 두게 되면, 사실상 '추상적 위험설'과 같은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만약 반대로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었던 사정에 중점을 두게 된다면, '신객관설'과 같은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IV. 판례 비판
 
1. 판례의 '엄격화된 추상적 위험설'과 그 문제점
 
판례 중 불능미수에 대한 입장이 정식화된 논리로 제시한 것은 이하 두 개의 판결이다.
 
"피고인의 행위의 위험성을 판단하려면 피고인이 행위당시에 인식한 사정[①]  즉 원심이 인정한 대로라면 에페트린에 빙초산을 혼합하여 80~90도의 가열하는 그 사정을 놓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제약방법을 아는 일반인(과학적 일반인)의 판단[②]으로 보아 결과발생의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졌어야 할 것"[대법원ㅤ1978.3.28.ㅤ선고ㅤ77도4049ㅤ판결(밑줄 및 괄호 안 번호는 인용자).
 
"불능범의 판단 기준으로서 위험성 판단은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①]  이것이 객관적으로 일반인의 판단으로 보아 결과 발생의 가능성이 있느냐를 따져야 하고 ... 소송비용을 편취할 의사로 소송비용의 지급을 구하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객관적으로 소송비용의 청구방법에 관한 법률적 지식을 가진 일반인의 판단[②]으로 보아 결과 발생의 가능성이 없어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5.12.8. 선고 2005도8105 판결(밑줄 및 괄호 안 번호는 인용자)].
 
먼저 ①에서 볼 때 판례는 어떤 사정을 고려하며 판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추상적 위험설'을 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②에서 볼 때 누구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판례는 '일반인'이 아니라 '과학적 일반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점을 주목하여 신동운 서울대 교수는 판례가 '강화된 구체적 위험설'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는 '추상적 위험설'을 전제로 하지만 판단자의 기준을 엄격화하여 '위험성' 인정, 즉 불능미수로의 처벌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그 점에서 판례는 '엄격화된 추상적 위험설'이라고 명명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 서면 결과발생이 불가능하면 단박에 위험성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기 쉽다. 그러나 '추상적 위험설'을 지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상술한 두 판결 모두 결과발생이 불가능하지만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본다.
 
2. 불능미수를 검토하지 않은 판례 비판
 
(1) 사자(死者) 대상 소송사기―대법원ㅤ1997.7.8.ㅤ선고ㅤ97도632ㅤ판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공소외 A가 생존한 것을 전제로 그를 피고로 하여 소를 제기하였다가 재판 과정에서 사망하였음을 알고 소를 취하하였는데, 대법원은 사기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추상적 위험설'의 입장에서 서서 볼 때, 피고인은 소송제기 당시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분명하고, 일반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행위는 규범적으로 위험하다. 사자 대상 소송이기에 그로 인하여 내려진 판결의 효력이 생기지 않지만, 법률적 지식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법원을 기망하기 위하여 서류를 준비하여 소송을 제기한 행위의 '위험성'이 배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성전환자 강간―대법원 1996.6.1. 선고 96도791 판결
이 사건은 강간죄의 객체가 2012년 '사람'으로 개정되기 전 '부녀'이었을 때 발생한 것으로, 피해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하여 외관상 여성으로서의 신체구조를 갖고 있었다. 피고인들은 이러한 피해자를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승용차에 납치하여 차례로 강간하였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부녀'가 아니기에 강간치상을 무죄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의 판단처럼 이 피해자를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합동)강간의 불능미수가 다루어졌어야 했다. 피해자가 여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사건은 법률적 지식을 가진 '과학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강간이라는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경우이다. 그렇지만 '추상적 위험설'의 관점에서 볼 때 피고인들의 행위의 위험성은 명백하다.  
 
(3) 채무면탈 의사 채권자 살해(강도살인)―대법원 2004.6.24. 선고 2004도1098 판결
이 사건에서 채무를 면탈할 의사로 채권자를 살해한 사건을 검토한 후, "채권자 측의 추급을 면한 것에 불과하여 재산상 이익의 지배가 채권자 측으로부터 범인 앞으로 이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강도살인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법률지식이 있는 '과학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평가하면 피살된 채권자의 재산상의 이익은 피고인에게 이전하지 않으므로 결과발생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인의 관점에서 행위 당시 피고인의 행위를 평가하면, 행위자는 살인을 통하여 채무를 면탈할 수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던바 '위험성'은 쉽게 인정된다. 따라서 이 경우 피고인은 강도살인의 불능미수의 죄책을 진다.
 
V. 맺음말
 
학계의 많은 논의와 달리, 실무계에서 형법 제27조는 비활성화된 조문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대법원 판례가 '결과발생 불가능성'과 '위험성'을 구별하지 않거나, 구별하더라도 전자가 인정되면 바로 후자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추상적 위험설'에 따라 '위험성'을 해석하는 것이 입법자의 취지에 부합함은 물론, 불능미수가 상정하는 행위의 불법에 조응하여 대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