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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형사정책적 ‘은교’(銀橋)로서의 형법 제26조와 ‘자의성’ 판단 기준

조국 교수 (서울대 로스쿨)

I. 머릿말
 
형법 제26조는 중지미수의 필요적 감면을 규정하고 있다. 장애미수의 임의적 감경(25조), 불능미수의 임의적 감면(27조)과 비교할 때, 26조는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세 종류의 미수 중 가장 관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대함의 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중지미수의 핵심요건인 '자의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II. 필요적 감면의 근거
 
1. '법률설' 비판
중지미수의 필요적 감면의 근거에 대하여 학설은 (1) 위법성 또는 책임이 감소·소멸한다는 '법률설', (2) 범행 중지자에 대한 은사(恩赦)라거나, 중지한 행위자를 처벌할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하는 '형사정책설', (3) 형 면제는 형사정책설, 감경은 법률설에 따르는 '결합설' 등이 있다. 
 
현재 한국 학계에서는 위법성이 소멸·감소된다는 입장은 없다. 행위 시 확정된 위법성이 사후적으로 소멸·감소된다는 것은 범죄체계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고, 또한 이 경우 범행을 중지하지 않은 공범에게도 범행을 중지한 공범의 중지로 인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 '법률설'은 책임이 소멸·감소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중지미수를 인적 처벌조각사유로 파악하여 벌하지 않는 독일 및 오스트리아 형법, 중지미수를 가벌적 미수에서 제외하는 프랑스 형법과 달리 우리 형법은 필요적 감면만을 규정하고 있는 바, '책임 감소·소멸설'은 문제가 있다. 책임이 소멸되는 경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데, 이 경우 우리 형법은 일관되게 "벌하지 아니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은 행위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인데, 사후 자의적 중지가 있었다고 하여 소급적으로 책임이 감소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학계 다수설은 책임감소설과 형사정책설의 '결합설'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책임감소설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또한 면제와 감경을 달리 설명함에 따라 중지미수의 필요적 감면을 통일적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2. 평가―형사정책적 '은교'(銀橋)로서의 중지미수
이상의 점에서 필자는 '형사정책설'을 지지한다. 즉, 위법성이나 책임이 감소·소멸되지 않지만, 형법 제26조는 범죄인에게 범행을 중단하라는 형사정책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며, 이러한 범죄인의 경우 처벌에 의한 일반예방, 특별예방의 필요성이 없어지거나 줄어들며, 범행 중단에 따라 피해자는 더 많은 피해를 입지 않게 된다. 요컨대, 제26조 형감면은 '인적 처벌감면사유'이다.  
'형사정책설'과 관련하여 다수의 형법 교과서는 리스트의 '황금교'(黃金橋)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지미수를 처벌하지 않는 독일의 경우 적정한 비유이다. 필요적 감면을 규정한 한국 형법 제26조는 '은교'에 비유하는 것이 정확하다[최우찬, '중지미수―적법행위로 후퇴하기 위한 은빛 다리?―', 고시연구 (1992.2)].
 
III. 자의성 판단기준
 
1. '자율적 동기설'의 지지
중지미수의 자의성 판단기준에 대하여 (1) 내부적 동기에 의한 범행중단은 중지미수, 외부적 사정으로 인한 중단은 장애미수로 보는 '객관설', (2) 윤리적 동기로 인한 경우에만 자의성을 인정하는 '주관설', (3) 행위자가 "할 수 있었지만 원하지 않아서" 중단한 경우는 중지미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어서" 중단한 경우 장애미수로 보는 'Frank의 공식', (4) 범행의 중지가 불법에서 합법으로의 회귀로 평가되면 자의성을 인정하는 '규범설', (5) 범행 당시의 객관적 사정과 행위자의 내부적 원인을 종합하여 범인이 자율적으로 그만 두었다면 중지미수, 타율적으로 그만 두었다면 장애미수로 보는 '자율적 동기설'(='심리적 절충설')이 대립한다. 다수설은 '자율적 동기설'이다.
'객관설'은 내부적 동기와 외부적 사정의 구별이 모호하고 중지미수의 범위를 부당하게 확대한다. '주관설'은 '윤리성'으로 '자의성'을 대체하고, '규범설'은 '규범성'으로 '자의성'을 대체하는 바, 중지미수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 이 입장은 중지미수를 처벌하지 않는 독일의 경우에 적정한 설명으로, 우리 형법상으로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해석이다. 고 유기천 박사의 말을 빌자면, "여기[제26조]의 중지는 반드시 동기의 천(賤)한 것을 배격하지 않는다."
요컨대, '자의성' 판단의 핵심은 심리적 동기나 객관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고려하면서도 범행 중지를 함에 있어서 행위자가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었는가에 있다. 'Frank의 공식'은 피고인의 심리적 상태를 판별하는 유용성이 있는 바, 이는 '자율적 동기'를 판단하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될 수 있다. 
 
2. 판례의 "사회통념설" 비판
 
(1) '자의성'에 대한 해석지침의 불제시 
판례는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이 없으면 중지미수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85도2002; 93도1851; 97도957; 99도640). 그러나 '사회통념'은 구체적 판단을 위한 의미 있는 척도가 되기 힘들다. 사회통념은 사회적·문화적으로 일반보통 평균인이 아닌 법관이 일반보통 평균인을 스스로 상정하면서 해석될 수밖에 없기에, '자의성'이라는 법문(法文)의 한계를 넘는 법관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추상적 개념 제시만으로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고, 학계와 실무계에서 판결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2) '자의성' 인정 후 '사회통념'에 의한 재심사―대법원ㅤ1985.11.12.ㅤ선고ㅤ85도2002ㅤ판결
대법원ㅤ85도2002ㅤ판결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다. "중지미수와 장애미수를 구분하는데 있어서는 범죄의 미수가 자의에 의한 중지이냐 또는 어떤 장애에 의한 미수이냐에 따라 가려야 하고 특히 자의에 의한 중지중에서도 일반사회통념상 장애에 의한 미수라고 보여지는 경우를 제외한 것을 중지미수라고 풀이함이 일반이다." 이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i) '자의에 의한 중지'인지 '장애에 의한 중지'인지를 검토하고, (ii) '자의에 의한 중지'가 인정되더라도 사회통념 기준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문제가 있다. 첫째, 상술하였듯이 (i)에 대한 판단도 '사회통념'에 따라 이루어질 것인 바, 이 판결의 논리는 순환논리다. 더 중요하게는 이 논리에 따르면 자의성을 인정받기가 매우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동 판결은 '자의에 의한 중지'와 '중지미수'를 구별하고, 전자 중에서도 후자가 아닌 것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형법 제26조의 적용범위를 대폭 축소시키는 피고인에 불리한 해석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3. 사례별 검토
'자율적 동기설'을 지지하는 필자는 상술한 93도1851 판결의 결론에 동의하지만, 92도917 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전자에서 피고인이 친해지면 응할 테니 강간을 하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에 응하여 범행을 중단했고, 후자에서 피고인은 수술로 인해 피해자가 배가 아프다는 '애원'을 받아들여 범행을 중단하였는바 양자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후자에서 피해자의 신체적 조건 때문에 강간에 지장이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오히려 포착해야 할 점은 두 사건 모두 피해자의 '부탁', '애원'을 접한 피고인이 자율적으로 중지하였다는 점이다. 
 
한편, 대법원은 두려움에 따른 중지의 경우 중지미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두려움으로 인한 중단을 일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예컨대, 대법원은 피고인이 경찰관의 탐문 소식을 듣고 범행을 중지한 사건(84도1381), 피고인이 세관원의 잠복근무 소식을 듣고 '범행의 발각을 두려워한 나머지' 범행을 중지한 사건(85도2339) 등에서 피고인에게 범행 발각 또는 체포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 두려움은 예상되는 국가형벌권 행사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에 자율적 동기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장롱 안에 있는 옷가지에 불을 놓아 건물을 소훼하려 하였으나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물을 부어 불을 끈 경우(97도957),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그의 목 부위와 왼쪽 가슴 부위를 칼로 수 회 찔렀으나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겁을 먹고 그만 두는 바람에 미수에 그친 경우(99도640)도 중지미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자의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불길이 치솟거나 피해자의 가슴에 피가 흘러나오는 것은 '범행의 순조로운 진행'이며(오영근, '중지미수의 자의성', 『형사판례의 연구: 지송 이재상교수 화갑기념논문집』 제1권(2004), 562-563면), "행위자는 여전히 외부적 상황을 지배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의사결정을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하태훈, '중지미수의 성립요건', 한국형사판례연구회, 『형사판례연구』 제7호(1999), 80면].
 
IV. 맺음말
 
형법 제26조 형법상 세 종류의 미수 중 가장 관대한 필요적 감면을 규정하지만, 이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형법의 태도인 불벌과는 다르다. 또한 동조는 독일 형법 제24조나 미국 '모범형법전' 제5.01조처럼 '포기'(aufgeben 또는 renunciation)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의성'은 피고인이 형사정책적 '은교'를 건너올 기회가 많이 부여되는 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