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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도로교통법상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의 성립요건

지창구 판사(춘천지법)

1. 서론
 
  도로교통법 제148조, 제54조 제1항의 죄는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하였음에도 그 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이 즉시 정차하여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할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
  위 죄는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①사람을 사상하였음에도 즉시 정차하여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와 ②물건을 손괴하였음에도 즉시 정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를 모두 포함하나, 위 ①의 경우는 흔히 '뺑소니'라고 부르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제1항, 형법 제268조에 의해 처벌되기 때문에 실무상 도로교통법 제148조, 제54조 제1항이 적용되는 경우는 위 ②의 경우(이하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라 한다)이다.
  위 ②의 경우는 손괴의 대상에 따라 ㉮다른 자동차를 손괴한 경우와 ㉯방호벽 등 기타의 물건을 손괴한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글은 위 ㉮의 경우로 논의를 한정한다.
  
2.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의 성립요건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의 입법취지에 관해 대법원은 "도로교통법 제148조, 제54조 제1항은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물건을 손괴한 경우에는 운전자 등으로 하여금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게 함으로써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물적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규정은 아니(다.)"라고 판시(대법원 2013. 8. 23. 선고 2013도4936 판결 등)하고 있다.
  이는 도로교통법이 제1조에서 "이 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물건을 손괴하였음에도 즉시 정차하여 필요한 조치(여기서 필요한 조치는 사고의 내용, 피해의 태양과 정도 등 사고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나,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것은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에게 자신의 인적사항, 연락처 등을 알려주는 신원확인조치일 것이다)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다른 자동차를 충격하여 손괴하였음에도 정차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여기 해당하게 된다)에 모두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손괴로 인해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위 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이른바 '목적론적 축소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3. 추격운전과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 발생
 
  가. 문제의 제기
 
  그렇다면, 자동차의 손괴로 인해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가 실제로 발생하여야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되는가 아니면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가 발생할 가능성만 있어도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되는가가 문제된다.
  실무상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 발생이 문제되는 경우는 대부분 ①가해 자동차나 피해 자동차의 손괴로 인해 파편물이 도로에 떨어진 경우 또는 ②가해 자동차의 도주운전과 피해 자동차의 추격운전이 있는 경우이다. 
  이 중 위 ①의 경우, 즉 자동차의 범퍼나 쇳조각, 유리조각 등 파편이 도로에 떨어져 다른 자동차의 통행에 위험과 장해를 초래한 경우에는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됨에 의문이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파편물이 떨어져 있지 않거나 파편물이 극히 미미하여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면 위 ②의 경우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는데, 여기서 피해 자동차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하여야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되는지 아니면 그와 같은 추격운전의 가능성만 있어도 위 죄가 성립되는지가 이 글의 논제이다.
 
  나. 판례의 검토
 
  이에 관해 대법원판례는 다소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1) 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11057 판결의 경우 피해자가 추격운전을 하지 않은 사안에서 "교통사고를 야기한 운전자가 피해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적사항이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아니한 채 사고 후 즉시 차량을 운전하여 현장을 이탈하는 경우에는 위 도주의 운전 자체는 물론, 이를 제지하거나 뒤쫓아 갈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자의 추격 운전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 법에서 정한 필요한 조치를 다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중략)…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사고 후 새로운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초래하였거나 이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서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시(강조는 필자. 이하 같다)함으로써 추격운전의 가능성만 있어도 위 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반면, 대법원 2013. 8. 23. 선고 2013도4936 판결의 경우 피해 승용차의 운전자인 최○○이 피고인 승용차의 차량번호를 촬영해 둔 데다가 퇴근 시간에 비까지 겹쳐 차량이 정체 중이고 전방의 신호마저 바뀌어 피고인에 대한 추격을 단념하고 곧바로 경찰에 사고신고를 한 점 등의 사정을 들어, "피고인이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이유로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의 성립을 부정함으로써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하여야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도14114 판결도 마찬가지이다).
  위 판결의 원심판결은 "피고인이 인적사항도 밝히지 않은 채 도주함에 따라 최○○이 피고인을 뒤쫓아 감으로써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추가로 야기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던 점" 등의 사정을 들어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를 인정하였는데, 이를 파기한 것이다.
 
  다. 사견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하여야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사상 자기책임원칙에 반한다고 생각된다.
  자기책임원칙이라 함은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한다(헌법재판소 2004. 6. 24. 선고 2002헌가27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할 것인가는 그의 판단에 달린 문제로 가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우연적 사정에 따라 가해 자동차 운전자의 형사책임 성립 여부를 달리 보는 것은 형사상 자기책임원칙에 반한다.
  위 2013도4936 판결, 2012도14114 판결에서는 위와 같은 비판을 우려해서인지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추격운전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피고인이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재물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가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태양 및 정도 등 사고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 사고 이후에 도주하는 가해 자동차를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추격하였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위와 같은 조치 필요성 유무의 판단요소가 될 수 없다.
 
4. 결론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기 위해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다른 자동차를 충격하여 손괴하였는데, 파편물이 도로에 떨어지지는 않았고, ①피해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어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던 경우, ②피해 자동차에 운전자가 있었으나 추격운전을 하지 않은 경우, ③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추격운전을 한 경우이다.
  위 ①의 경우는 추격운전의 가능성도 없으므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 발생의 추상적 위험도 없다고 할 것이어서 어떤 입장에 의하더라도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위 ②의 경우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 발생의 추상적 위험은 있었으나 그와 같은 위험이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이 경우 위 2009도11057 판결 등 추격운전의 가능성만 있어도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된다는 취지의 판결에 의하면 위 죄가 성립되나, 위 2013도4936 판결 등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하여야 위 죄가 성립된다는 취지의 판결에 의하면 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위 ③의 경우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가 실제로 발생하였으므로, 어떤 입장에 의하더라도 물건손괴 후 미조치죄가 성립된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피해 자동차의 운전자가 실제로 추격운전을 하였는가 아닌가에 따라 위 죄의 성립 여부를 달리 보는 것은 형사상 자기책임원칙에 반하므로, 추격운전의 가능성만 있어도 위 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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