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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미국의 투표자신원확인법(Voter ID law) 논란을 바라보며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Ⅰ. 서설
우리나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급 지방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하여 선거과정에서의 투표행위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절차로 투표자의 신분 내지 신원 확인절차를 두고 있다(공직선거법 제157조). 우리나라의 경우, 주민등록제 시행으로 모든 유권자가 사진이 부착된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있어,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이 선거의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투표자 신분확인절차가 비교적 정확하고 쉬운 편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미처 소지하지 못한 채 투표장으로 나온 경우 투표권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와 같은 엄격한 투표자 신분확인법제가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미국 여러 주에서의 투표자 신원확인법제 도입 내지 강화를 둘러싼 논란과 그 관련 연방대법원 판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즉, 미국은 우리와 달리,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소지하거나, 제시하는 제도적, 문화적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투표자신원확인법 시행은 큰 논란이 되었다.
 
Ⅱ. 미국의 투표자신원확인법 시행 현황
현재 미국에서 투표자신원확인법(voter ID law)을 시행하고 있는 주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당초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지 않았던 주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신원확인법을 새로 실시하려는 주와 기존에 시행하던 주에서 위 법제를 강화하여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려는 주가 그것이다. 투표자 신원확인 절차는 엄격한 정도(Strict, Non-strict)와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의 제시의무(Photo ID, Non-photo ID) 여부에 따라, ① 엄격한 사진부착 신분증 요구, ② 비엄격 사진부착 신분증 요구, ③ 엄격한 비사진 부착 신분증 요구, ④ 비엄격 비사진 부착 신분증 요구, 그리고 ⑤ 신분증 불필요로 나뉜다. 비엄격의 경우란, 본인확인 서약서에 사인하거나 선거 후 정부에서 발행한 일정한 증명 서식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송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신분증을 대신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30여개 주에서 투표소에서의 신분증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 중 조지아주와 인디아나주, 캔자스주와 위스콘신주, 사우스캐롤라이나·테네시·텍사스주 등 보수 성향이 강한 14개 주에서는 사진이 부착된 엄격한 신분증을 요구하고 있고, 16개 주에서는 사진이 없는 신분증도 허용하고 있다. 참고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으로는 운전면허증, 여권, 주정부 발행 신분증 등이 대표적이고, 텍사스 주의 경우 총기소지면허증을 추가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Ⅲ. 엄격한 투표자 신원확인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양론
 
1. 찬성론
찬성론은 엄격한 신원확인은 선거의 신뢰성과 유효성을 인정받기 위해 중요한 요소인 점을 강조한다. 즉, 투표자가 투표인명부에 등록되어 있는 바로 그 사람인지, 그래서 그 선거에 참여할 적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단계가 '투표자 신원확인'이며, 이를 통해 불법적인 투표, 유권자들에게 특정후보에게 표를 행사하도록 유인하는 행위, 부재자투표에서의 선거 사기 등의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반대론
반대론자들은 당초 위 법의 취지는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은 시민권자나, 시민권을 지니지 않은 허위 유권자를 가려내기 위한 수단으로 추진됐으나, 현재는 민주당 성향이 강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계 이민자들의 투표 참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 보통선거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보통선거 원칙은 일정 연령에 도달한 국민인 이상 누구든지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함에도, 선거결과나 공정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박탈하는 것은 보통선거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 무엇보다 유권자 등록을 한 이민자 중 상당수가 운전면허증이 없어 투표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여권은 해외여행의 사유가 있어야 발급하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없는 미국인 중 운전면허증이 없는 유권자는 사실상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3. 관련 연방대법원 판례(2014. 10. 18. 선고 Veasey v. Perry 사건, 574 U.S, No. 14A393)
 
가. 5인 다수 합헌의견 요지
다수 의견은 위 사건에서 연방정부의 주에 대한 감독권한을 인정하는 연방투표권법(Federal Voting Right Act) 제5조(주가 선거에 관한 법조항을 변경하려는 경우 연방대법원이나 법무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규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을 내렸으나, 실제 연방정부의 감독을 받는 사전심사 대상법률을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투표권법 제4조의 경우 1960년대 인권이 열악하고 백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흑인과 유색인종의 투표권 행사 방해 상황이 빈발하던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기준으로서 50여 년이 지난 현재 그 간의 인권신장 상황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현재 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심사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한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 내렸다. 다수의견을 집필한 로버트 대법관은, "투표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는 분명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의회는 1965년 투표권법 제정 당시 본래 5년 동안 적용하기로 했던 동법 제4조를 계속해서 연장해 왔는데 의회가 2006년 이 법을 25년 더 연장하기로 결의하면서 당시 자료가 아닌 1975년 자료에 기반해 결정내린 것과 관련하여 2006년 당시는 1976년과 비교할 때 흑인 등 유색인종의 인권이 크게 신장되었음에도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아니한 채 내려진 결정이다."고 판시하였다. 
 
나. 4인 소수 위헌의견 요지
미국에서 흑인 등 소수 인종이거나 영세민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과 가난한 서민은 자동차가 아예 없어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격전지였던 펜실베니아주는 정부가 발행한 사진이 들어 있는 신분증을 투표 전에 제시하도록 의무화한 법을 시행했는데 그 결과 이 주 전체 유권자의 5% 가량인 40여만 명이 원천적으로 투표권을 박탈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미 의회 전문지 CQ가 보도하기도 했다. 공화당 등은 대리투표 등을 막으려면 얼굴사진이 부착된 정부 발행 신분증으로 유권자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하나 이는 결국 국민의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스스로 발행한 신분증을 빌미로 사진부착 신분증이 없는 소수 인종 출신과 저소득층의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참정권(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Ⅳ. 결론 
결국, 투표권법 제4조가 위헌선언 됨으로서 새로운 심사기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투표권법 제5조의 적용대상이 사라지게 된 것이고, 현재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여 법제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화당의 염원대로 투표권법의 핵심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국가에서 누군가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그가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사회적 차원의 부정적 평가를 담고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선거권의 제한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거권 제한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심사기준이 50년 전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 엄격한 신분증 제시요구를 정당화하도록 한 것은 형식논리를 내세워 기본권 수범자인 정부에 의한 기본권 제한을 정당화한  판결로 보여 진다. 즉, 우리와 같은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선거과정에서의 투표는 물론이고, 학교 입학, 신용카드 발급, 운전면허증 발급, 도서관증 발급 등 사인의 행정행위 전반에서 개인의 신분증명은 본인의 이름과 주소지가 기재된 우편물을 확인하는 등으로 실제 매우 간단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런 제도에 익숙한 미국인들을 상대로 충분히 입증되지 아니한 부정선거 가능성 내지 심사기준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권 제한 입법을 정당화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편 위 논의는 우리 선거법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같은 엄격한 신원확인절차가 만연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주민증, 면허증 이외에도 본인을 증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바, 학생증, 의료보험증, 회사 사원증, 공공도서관 이용증 등과 같이 사진이 부착되어 있지 않더라도 본인임을 증명하는 특정한 수단을 제시하거나, 주민번호와 주소지 질문 등 간단한 본인확인 절차 및 추후 본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경우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본인확인 서약을 한 경우 등에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현행 공직선거법 제157조의 신원확인조항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엄격한 유권자 사전등록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제 하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론화시킬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