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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특허의 유효 추정을 번복하기 위한 입증의 정도

김성기 변리사(한국국제지적재산보호협회 회장)

- 미국 연방대법원 최근 판결(Microsoft v. i4i) 내용

I.  미국 대법원의 특허 유효 추정 판결

2011년 6월 9일, 미국 대법원은 특허 심사과정에서 참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가 제출된 특허무효소송에서도 특허법 제282조의 특허 유효 추정 규정은 유효하다고 판결하였다.

 A.  사건의 개요

본 사건의 원고인 특허권자 i4i Limited Partnership 이라는 회사는 컴퓨터 문서를 편집하는 개선된 방법 발명에 관하여 특허를 받았다. 특허권자인 원고는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의 MS Word 제품이 i4i의 특허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텍사스 동부지방 연방법원에 제소하였다. 이에 피고는 원고 특허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1심 법원에서의 원고 회사가 특허출원 1년 전에 판매하였던 'S4'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품이 특허 받은 발명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원고 i4i사는 S4의 출원 1년 전 판매사실은 인정하였으나, S4에는 특허된 발명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S4 제품의 컴퓨터 프로그램 소스코드가 보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증인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하에서 원고측 2명의 발명자들은 증인으로 출석하여, 특허출원 전 출하된 제품인 S4에는 문제의 특허 발명의 기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증언하였다. 이에 비하여 피고(MS)측 감정 증인은 S4 제품의 사용자 설명서(user manual)에 기초하여 S4 소프트웨어가 특허발명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이에 대해 원고측 감정인은, 특허 방법이 S4에 구현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소스코드(소송 개시 전에 이미 파쇄된)를 확인해 보아야 알 수 있고, 사용설명서 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증언하였다.

B.  추정의 적용범위와 번복의 입증

이러한 상황 하에서 MS사는 특허법 282조의 유효추정 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 i4i의 특허출원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심사관은 S4 제품의 존재를 알거나 이를 특허성 심사에 참고하지 않았으므로, 적어도 새로이 제출된 증거에 관해서는 유효 추정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특허권자는 특허법 282조가 아무런 제한 없이 특허 유효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음을 들어, 특허 심사과정에서 특정의 증거가 심사관에게 제시되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심사, 등록된 특허는 유효하며, 이에 더하여 유효 추정을 번복하기 위하여는 보통법 하에서 발전되고 현재까지 인정되고 있는 법리에 따라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증거법에 관해 정면으로 반대 되는 원·피고 간의 법리 주장에 대하여, 1심 법원은 특허권자의 주장을 채택한 배심원 說示(instruction)를 행하였다. 배심원들은 양측 증언에 기초하여 판단하기를, S4 제품이 특허된 발명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피고의 주장은'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 뒷받침 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손해액을 2억 달러로 인정하였다. 또한 배심원들은 MS사가 특허의 존재를 알면서 의도적으로 침해(willful infringement)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배심원의 評決(verdict)에 기초하여 1심 법원은 특허의 유효를 인정함과 동시에, 피고에게는 2억 달러의 실손해액에 추가하여 4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 그리고 침해금지 명령을 내렸다.

C.  항소심

항소심에서 2심 법원인 연방지구 항소법원(Federal Circuit)은 특허 유효성 추정에 관한 1심 법원의 설시를 지지함과 동시에, 추정의 번복을 위한 입증의 정도에 대해서도 1심 판결을 지지하였다. MS사는 S4 제품에 i4i사의 특허 청구범위에 기재되어 있는 '메타코드 맵'(metacode map)이 실현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특허권자 측의 2명의 발명자 겸 S4 제품 개발자의 증언은 보강증거(corroboration)가 없는 것으로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2심 법원은 사실심 법원(1심 법원)의 배심원들의 사실 판단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II.  판시 사항

A.  특허 무효의 항변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입증을 필요로 함

법원은 이 문제를 특허법 제282조에 대한 법규해석(statutory construction)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모든 경우에서 그렇듯이 법규 해석의은 法文에 사용된 용어의 '평범한 의미'(plain meaning)에서 출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특허법 제282조 제1단락: '특허는 유효한 것으로 추정된다. … 특허 또는 특허 청구범위의 무효를 입증하는 책임은 무효를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있다.(A patent is presumed valid. … The burden of establishing invalidity of a patent or any claim thereof shall rest on the party asserting such invalidity)'

특허법에서 '유효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기 위하여, 대법원은 1934년의 RCA 판결을 인용하였다. RCA 판결에서 대법원은 카르도조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을 통하여 '특허에 대한 유효성이 추정되며, 이 추정은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가 아니면 번복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하였다. 카르도조 판사는 이에 더하여 '특허의 유효성을 공격하는 침해자는 이를 설득하여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며, 그의 증거가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을 넘는 것이 아니면 패소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또한 특허 전속 관할 항소법원인 Federal Circuit의 American Hoist 판결을 이용하였다. 1952년 당시 특허청 법무관으로 재직하면서 특허법을 기초하는데 깊이 관여하였던 Federal Circuit의 Rich 판사는 American Hoist 판결에서 '특허법 제282조는 특허 유효성에 관한 추정과 이 추정 번복의 입증 책임에 대해 규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증명 책임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고 법원이 계속해서 해석해 온 점에 있어서 (1952년 입법 이래)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B.  심사과정에서 참조되지 않는 무효 증거라 하여도 같은 기준적용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주장하기를, 유효로 추정되는 특허를 무효시키기 위해 '증거의 우월' 보다 더 높은 정도의 증명인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 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심사과정에서 심사관이 참조하였던 증거에 기초하여 무효를 주장하는 경우에 한정될 것이고, 본 사건에서처럼 심사관이 특허 허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참조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경우에까지 이 원칙을 적용할 이유는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대법원은 새로운 선행기술 증거의 경우에 같은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를 적용하는 사실 판단자(배심재판에서는 배심원, 배심재판이 아닌 경우에는 사실심 법원 판사)가 심증을 형성하는 데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가 낮아질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유효 추정 번복에 관한 법률적 기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1952년 현행법 제정 이전의 RCA 사건을 포함한 판결에서 심사과정에서 고려되었던 선행기술과 다른 증거가 제출된 경우에도 유효 추정 번복에 동일한 법리가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음을 지적하였다. 대법원은 이 경우를 위한 새로운 심증의 정도를 제시하거나, MS 주장대로 '증거의 우월' 기준을 채택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즉, 유효추정을 번복하기 위해 한가지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사실 판단을 맡은 사람(배심원, 또는 1심 법원의 판사)의 심증형성에 심사과정에서 참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감안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판단자의 미묘한 심리적 대응이 그러한 차이를 담아낼 만한 그릇이라고 본 것이고, 이는 미국식 배심 재판제도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셈이다.
 
III.   평가

A.  증거법의 관점

실제 소송에 있어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證明度에 관한 것임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우리 민사소송법은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을 뿐, 어느 정도의 심증을 얻어야 판사가 심증을 얻을 수 있는지 아무런 규정이 없다. 교과서들은 '의심에 침묵을 명할 정도의 정확성' '십중팔구까지는 확실하다는 확신' '고도의 개연성' '상당한 개연성의 확신' '통상인 이라면 의심을 품지 아니할 정도의 확신' 등, 여러 기준이 제시되고 있고, 그 각각의 기준들간의 차이를 알기도 어렵다. 더군다나 그러한 기준을 적용하였다고 자처하는 판결들이 다른 사건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지 의문이다. 우리 민사소송법에서 증명의 정도에 관해 자유심증주의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고 있는 데서 비롯되는 혼란인 듯 하다.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용어의 의미로 해석해 보았을 때, 우리 사법제도는 민사재판의 원고에게 너무 가혹한 부담을 요구하여서, 결과적으로 민사적 권리 구제를 상당부분 거절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B.  특허법의 관점

미국에서 1982년 특허 사건항소심 전속 관할을 갖는 법원(Federal Circuit)이 창설된 이래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초기 25년간에는 특허 전문 항소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대부분의 특허 판결에 대한 상고 신청을 기각하면서 전문법원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간접적으로 표시해왔다. 이 기간 동안 미국 사법부는 친 특허정책(pro-patent)의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결과적으로 미국 산업의 기술 개발 투자를 장려하였고, 또한 특허권의 보호대상 범위를 생명체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확장한 1980년, 1981년 대법원 판례의 경향에 뒤이어, 1997년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금융상품 관리방법에 까지 특허성을 인정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특허제도를 서비스 산업으로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제도로 변모시켜 놓았다.

이러한 특허 확장의 25년을 지내고 2007년부터는 대법원이 특허사건에 대한 상고허가 건수를 크게 늘리면서, 그 대부분의 사건에서 특허권자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판결을 계속해 왔다. 특허 진보성 판단 시 2개 이상의 선행기술 증거를 결합할 때에는 그 결합을 위한 교시(Teaching), 제안(Suggestion) 또는 동기(Motivation) (소위 TSM)이 있어야 한다는 종전의 법리를 완화한 판결을 몇 년 전에 내린 바 있으며 특허권은 그 본질이 배타권이므로 침해가 확인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침해금지 처분(injunction)이 적합한 구제조치라는 종전의 법리를 부인한 e-Bay 판결 등은 pro-patent 시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이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져 왔다.

그러한 4-5년의 대법원의 판결 경향을 보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불안한 예측이 있었다. 더군다나 2003년 10월 공정거래 업무를 관장하는 미 연방 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에서 '경쟁과 특허 정책의 균형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특허 유효의 추정을 번복하기 위한 증명도를 '증거의 우월' 기준으로 낮추는 입법을 촉구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우려와 더불어, 최근 특허권 보호에 따르는 부작용을 극대화하여 보여준 '특허괴물' 논란이 일면서 특허권자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우려를 씻어버리고, 1930 이래 미국 대법원이 견지해온 특허 유효추정의 법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세계의 발명자들의 등을 두드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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