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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도입을 위한 시론(試論)

김상용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I. 문제의 제기

최근 들어 정부의 낙태규제가 강화되면서 비혼모의 출산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사회의 현실을 돌아보면 비혼모가 아이를 낳은 경우, 스스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고 입양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2007년 전체입양아동 중 86.6%가 비혼모가 낳은 자녀였다).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로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일하는 동안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이러한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것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비혼모가 자녀를 출산한 경우 스스로 양육할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입양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부양을 청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비혼모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예컨대, 자녀가 너무 어려서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을 하러 나갈 수 없는 때에는 생부로부터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 받는다고 해도, 양육비만으로 비혼모와 자녀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경우 비혼모가 자녀의 생부에 대하여 부양을 청구하여 자녀의 양육비와 별도로 부양료를 받을 수 있다면, 비혼모 가정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이는 결국 자녀의 양육환경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비혼모가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비혼모 가정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책이 보완된다는 전제하에, 하나의 가능한 방안으로서 논의를 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II.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도입과 관련된 문제

1. 비혼모 부양청구권의 입법목적

역사적으로 볼 때 원래 외국에서는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에 대한 전남편(자녀의 父)의 부양의무가 먼저 인정되었으며, 그 후 이러한 법원칙이 비혼모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었다.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경우이든, 처음부터 혼인을 하지 않고 자녀를 출산하여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이든,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소득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만약 자녀의 父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다면,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양육비만으로 가계를 꾸려 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가족의 전반적 생활수준을 저하시키고, 결국 자녀의 복리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자녀의 父에 대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에 대한 부양료를 부담하게 하는 제도는 궁극적으로는 자녀의 복리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의 (자녀의 父에 대한) 부양청구권이 인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도입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의 경우에는 이혼 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지급 등을 통하여 비혼모에 비해서 생활기반이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이 일반화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 중에서도 비혼모와 다름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본다면, 비혼모의 부양청구권뿐만 아니라 이혼 후에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양청구권도 함께 논의에 포함시켜서 동시에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도입에 대해서 먼저 논의를 시작하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우리사회에서 입양되는 아동의 상당수는 비혼모가 낳은 아이들이며, 이러한 경향은 국외입양의 경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2007년에 국외로 입양된 아동 중 99%가 비혼모의 자녀였다). 비혼모가 자녀를 스스로 양육하게 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입양을 대기하는 아동의 수는 줄어들 것이며, 특히 국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지금도 해마다 1,000명이 넘는 아동이 국외로 입양되고 있는데(2007년에 국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1,264명이다), 정부에서 1년간 국외로 입양할 수 있는 아동의 수를 강제로 묶어서 국외입양아의 수를 억제하는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올해 정부가 허가한 국외입양아의 수는 1,250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므로, 입양기관은 이 수를 초과하여 국외입양을 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올해 국외입양이 되지 않은 아동은 내년이나 내후년에 결국 국외입양의 길을 걷게 된다. 즉 정부의 소위 '국외입양쿼터제'는 국외입양의 시기를 지연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국외로 입양되는 아동의 수는 자연히 감소될 것이다. 지금도 양육여건만 마련되면 스스로 자녀를 양육하려는 의지를 가진 비혼모가 적지 않다. 입양, 특히 국외입양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입양감축을 위한 본질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비혼모 가정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확대와 더불어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비혼모의 부양청구권을 먼저 입법화하고, 그 다음 단계로 이혼 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양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일의 진행에 있어서 효율적이며,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 국가에 의한 부양료 및 양육비의 선급

비혼모의 부양청구권이 도입된다고 해도, 국가에 의한 선급제도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이 점은 자녀의 양육비청구권도 마찬가지다). 비혼모의 경우에는 임신기간 동안에도 부양을 받을 필요가 있을 수 있는데, 설령 비혼모의 부양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해도, 이 기간 동안에 비혼모가 자녀(태아)의 생부에 대해서 부양을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혼모가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부양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녀가 출생한 후 인지를 거쳐 생부와 자녀 사이에 부자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부에게 자녀의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서도 역시 인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자녀가 출생한 후 생부가 스스로 인지를 하지 않는다면, 재판상 인지청구를 하여야 하는데, 인지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임신기간과 출산 후의 가장 힘든 기간 동안에 비혼모와 자녀가 생부에 대해서 부양료나 양육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보통 비혼모는 이 기간에 입양을 시킬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출산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부양료와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설령 비혼모의 부양청구권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임신기간과 출산 후에 우선 국가가 비혼모의 부양료와 자녀의 양육비를 선급하고 나서, 나중에 국가가 생부에게 구상권을 행사하여 선급된 비용을 회수하는 제도가 함께 도입되지 않는다면, 비혼모의 부양청구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곧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가가 병행하여 동시에 책임을 부담하는 정책을 취할 때에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개인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

현행법에 의하더라도 혼인외의 출생자가 생부에 대해서 양육비를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다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인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녀의 양육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있으므로, 생부에 대해서 양육의 책임을 분담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부와 비혼모에게 수입도 재산도 없는 경우에는 자녀의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의 부담은 결국 국가의 책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가는 부모가 부양할 수 없는 아동을 보호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비혼모가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부양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비혼모 자녀의 복리실현을 위한 것이다.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받는다고 해도 양육자인 어머니의 생활비가 없다면 비혼모 가정의 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그 피해는 직접적으로 자녀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의 생부에게 양육비에 더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부양료까지 부담시키는 것은 자녀복리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양육비에 관하여 언급한 바와 같은 논리로, 이 경우에도 자녀의 생부가 비혼모의 부양료를 부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그 비용의 부담은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받고 있다고 해도 비혼모 가정의 생활은 안정될 수 없으며, 결국 자녀의 복리실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비혼모의 부양청구권 및 자녀의 양육비청구권이 국가에 의한 선급제도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부양료와 양육비를 선급하고 나서 나중에 생부로부터 그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생부에게 수입도 재산도 없는 경우). 그러나 일차적으로 생부에게 부양료와 양육비에 대한 책임을 묻더라도, 생부가 책임을 질 수 없는 경우에는 이차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국가가 선급한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제도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생부에게 상환의 자력이 없는 때에는 양육비 부분에 관하여는 그 부모, 즉 자녀의 조부모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녀와 생부의 부모, 즉 조부모 사이에는 직계혈족으로서 부양의무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급한 비용의 일부를 회수하지 못하는 것은 선급제도를 도입할 때 국가가 당연히 예상하고 감당해야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III. 맺음말 - 생부 개인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으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비혼모가 자녀를 출산하여 스스로 양육할 수 있으려면, 비혼모의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가 체계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우선 임신 중에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출산겲瑛컖입양 등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와 상담을 제공받을 수 있는 비혼모 시설이 정비되어야 한다. 비혼모 쉼터는 국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야 하며, 어떤 부당한 영향도 받지 않고 비혼모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기본적으로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것인지 입양시킬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비혼모 쉼터를 떠나는 경우에 당장 비혼모가 자녀를 데리고 갈 곳이 없다면 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하며, 자녀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비혼모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비혼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언제든지 전문적인 상담기관을 찾아가 필요한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비혼모 가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목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자녀의 생부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이와 같이 다양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병행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자녀의 父에 대해서 자녀의 양육비와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에 대한 부양료를 부담시킨다면(물론 자녀의 父에 대해서 부양료를 부담시키는 것은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경우에 한정된다), 비혼모 가정의 생활기반이 안정될 수 있고, 이는 결국 자녀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와 같이 자녀의 父에 대해서 강하게 책임을 묻는 법률이 제정, 시행된다면, 잠재적인 '미래의 생부들'에게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메시지로서 작용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비혼모에 대한 사회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그 외의 양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단기간 내에도 가능하다. 비혼모가 스스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반세기 넘게 이어져온 국외입양의 부끄러운 역사도 자연스럽게 막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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