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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프랑스의 사전유죄인정 제안 刑 승인제도에 대한 고찰

김영기 검사(서울남부지검)

- 소위 프랑스의 ‘플리바게닝’ 제도에 대하여

Ⅰ. 서 설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는 검사제도가 없었던 영국에서도 제한된 형태로 존재하였다고 하는데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 국가에서 유죄협상제도 내지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2004년 3월9일자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미국식의 유죄협상제도를 모델로 한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Comparution sur Reconnai-ssance Prealable de Culpabilite. 직역하면 ‘사전유죄인정출두제도’이나 그 실질을 고려해 이와 같이 부른다)를 도입하였다. 동 제도는 일정한 사건에 한해 피의자의 자백을 전제로 검사가 형을 제안하고 피의자가 이를 수용하면 관할 법원장의 승인을 받아 사건을 종국처리하는 방식의 것인데 상설하면 다음과 같다.


Ⅱ.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의 도입 배경

프랑스 변호사협회(SAF) 등은 동 제도의 도입에 대해 “절차의 신속성만 강조한 나머지 형사재판의 모든 권한을 검사에게 내주어 변호인의 참여가 유명무실해지고 방어권이 형해화될 수 있다”는 등의 논거를 내세우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하원은 2003년 5월14일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의 도입을 의결하였는데 하원이 논의한 도입 배경은 첫째, 검찰이나 법원 등 사법기관의 사건폭주(l’emcombrement des juridictions judiciaires)로 말미암아 사건처리능력이 저하되고 있고 둘째, 형사명령제도(l’ordonn-ance penale. 우리의 약식기소제도에 해당한다)와 같은 기존의 절차만으로는 이에 대처하기 어려워 새로운 제도의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2003년 5월14일자 하원 의원 Jean-Luc WARSMANN, ‘범죄의 발전에 대한 사법의 대응에 관한 보고서’ 제856호 참조).

요컨대, 나날이 발전하며 증가하는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건처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고 그 대책으로 미국식의 유죄협상제도에 착안하여 동 제도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한편 헌법평의회(Conseil constutitionnel)는 동 법률안에 대한 일부 위헌비판과 관련하여, 2004년 3월2일 “변호인의 참여 아래 피의자가 자유로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으며 법관의 승인 재판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결정(2 mars 2004 N° 2004-492)함으로써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바 있다.


Ⅲ. 요건 및 절차(이하, 프랑스 형사소송법 제495-7조 내지 제495-16조 참조)

(1) 법정형의 제한


동 절차는 법정형이 벌금형, 5년 이하의 구금형(l’emprisonne-ment)에 해당하는 경죄(delit. 프랑스의 범죄는 법정형 및 형종에 따라 중죄, 경죄, 위경죄로 3분되고 각 죄마다 수사절차, 관할법원이 상이하다)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다만 피의자가 미성년자이거나 해당 경죄가 언론, 과실치사, 정치에 관한 것인 경우 또는 특별법에 별도의 기소절차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 적용이 제외된다. 검사는 직권으로 또는 피의자나 변호인의 요청에 의해 사건을 동 절차에 회부할 수 있다.

아울러, 벌금형 또는 5년 이하의 구금형 해당 경죄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도 예심수사판사(juge d’instruction)에 의해 지방법원 경죄재판부로 이송된 경우를 제외하고, 동 절차의 적용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제안형의 거부 또는 불승인 등 절차는 최초 기소가 이루어진 지방법원의 재판기일 10일 전까지 완료되어야 한다.

(2) 범죄사실의 인정

피의자가 범죄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변호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사선변호인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여야 한다. 동 절차의 적용에 있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피의자의 권리는 절대 포기될 수 없다.

(3) 검사의 형 제안과 피의자의 유예기간요청

검사는 ‘범죄정황과 범죄자의 인적 특성’(des circonstances de l’infraction et de la personnalite de son auteur)을 고려하여 피의자에게 제안할 형과 형기를 결정한다.

검사의 형 제안도 변호인의 참여 아래 이루어져야 하는데 검사는 피해자를 소환하여 의견을 청취할 수도 있다. 피의자는 형을 제안받은 때로부터 10일 내에 수용 또는 거부를 표명하여야 하고 그 결정을 위해 10일의 유예기간을 요청할 수 있다.

피의자가 10일간의 유예를 요청한 반면 유예기간동안 피의자에 대해 일정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사는 피의자를 석방구금판사(juge des libertes et de la detention. 우리의 영장전담판사에 해당한다)에게 인계할 수 있고 석방구금판사는 검사의 요청에 따라 결정시까지 피의자에게 사법통제의무(controle judiciaire, ‘불구속사법감독조건의무‘로 부르는 견해도 있다)를 부과하거나 검사가 제안한 형이 ‘2개월 이상의 구금형 즉시 집행’에 해당하는 경우 피의자에 대해 구속(detention provisoire. 프랑스의 구속제도는 우리의 것과 매우 다르다) 결정을 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검사가 제안할 수 있는 형은 한계가 있어, 구금형의 경우 그 기간은 1년 내지 법정형의 반을 초과할 수 없고(sa duree ne peut etre superieure a un an ni exceder la moitie de la peine d’emprisonnement encourue) 벌금형의 경우 법정형을 초과할 수 없다.

(4) 제안 형의 수용

피의자는 검사가 퇴실한 상태에서 자유로이 변호인과 제안 형의 수용여부를 상의할 수 있다.
피의자가 제안 형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경우 검사는 즉시 승인서를 작성하여 관할 지방법원 법원장 또는 그 위임을 받은 판사에게 승인을 청구한다.

(5) 승인재판

승인재판은 관할 지방법원장 또는 그 위임을 받은 판사가 담당한다. 법원장 등은 검사의 승인 청구 후 지체없이 승인재판을 개최하여야 하는데 우선 피의자와 변호인의 의견을 청취하고 범죄사실 및 죄명을 확인한 후 범죄사실에 비춰 제안 형의 정당 여부를 판단한다. 이유를 붙여 결정서를 작성한 뒤 당일 법정에서 이를 낭독한다. 승인재판에 검사의 참석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인적사항이 파악된 피해자에게는 필히 승인재판기일을 통보하여야 하고 피해자는 사소당사자구성이나 피해배상청구 등을 위해 직접 또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승인재판기일에 출석할 수 있다.

승인결정은 ‘피의자가 변호인이 입회한 가운데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검사에 의해 제안된 형을 수용하며 범죄상황과 피의자의 특성에 비춰 동 제안 형이 정당함을 확인한다’는 내용으로 설시된다(d’une part, que la person-ne, en presence de son avocat, reconnait les faits qui lui sont reproches et accepte la ou les peines proposees par le procureur de la Republique, d’autre part, que cette ou ces peines sont justifiees au regard des circonstances de l’infraction et de la personnalite de son auteur).

Ⅳ. 효력 및 불복

(1) 승인결정의 효력


승인결정은 유죄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즉시 집행된다. 따라서 승인된 형이 구금형인 경우 대상자는 바로 구치소에 입감되거나 형벌적용판사(juge de l’application des peines) 앞에 소환된다.

(2) 승인결정에 대한 불복

유죄판결과 마찬가지로 승인결정에 대해서는 항고(appel. 결정에 대한 불복이므로 편의상 항고로 부른다)가 가능하다. 사소당사자도 항고를 제기할 수 있다.

항고법원은 항고재판을 열어 항고를 기각하거나 승인된 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파기자판한다. 다만 이 경우, 원칙적으로 승인된 형보다 더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지만 검사가 부대항고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제안 형의 거부나 불승인시 효과

피의자가 검사의 제안 형을 거부하거나 승인재판에서 불승인결정이 이루어졌다면 검사는 통상의 기소절차 및 방법에 따라 피의자를 지방법원 경죄재판부에 기소한다.

주의할 것은, 종전 기록이나 이미 이루어진 자백은 판결법원에 제공될 수 없고 판결법원은 이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


Ⅴ.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 제도의 운영 현황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는 2004년 10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프랑스 법무부의 인터넷 홈페이지 자료(Chiffres cles de la Justice, Annuaires statistiques de la Justice 참조)에 의하면 2004년의 경우 경죄법원에 대한 총 기소사건 46만4,848건 중 2,187건만 동 제도에 의해 처리되어 이용이 미비하였으나 이후 그 수가 급격히 늘어 2005년에는 2만7,200건이, 2006년에는 3만6,261건이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에 의해 종국처리되었다. 이는 총 경죄법원 기소사건 수 대비 5.27% 내지 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한편 2005년의 경우 2만4,035명의 피의자가 검사로부터 형을 제안받아 그 중 2만192명에 대해, 2006년도에는 4만5,374명이 형을 제안받아 그 중 3만5,524명에 대해 각 승인이 이루어져 승인비율은 약 84% 내지 78%에 이르고 2005년도에 비해 2006년도의 승인율은 약 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사법관들(magistrats. 판사와 검사는 통칭하여 ‘사법관’으로 불리운다)은 향후 수년간 동 제도의 활용도가 현저히 증가할 것이고 노동법이나 소비법 분야 등 좀 더 복잡하고 중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Ⅵ. 결 어

대륙법계의 사법선진국들이 유죄협상 내지 유죄협상과 유사한 제도를 수용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모든 사건을 통상적인 재판절차에 따라 법정에서 다루기 어렵게 된 현실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형사사법 관련 예산과 인력 배정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므로 한정된 형사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간이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전유죄인정 제안 형 승인제도를 도입하였는바, 그 내용 면에서 미국식 제도와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나 ‘사건 처리의 선택과 집중’이란 도입 목적에 부합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발전하는 범죄에 적절히 대응하고 증가일로의 사건 수, 복잡다양해지는 사건 내용 등 변화하는 사법환경을 고려할 때 이제는 우리도 유죄협상 내지 유죄협상에 준하는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것도 참고가 될 것이다. 

미국변호사